할아버지의 탁상시계와 책을 보면서......
1976년도 우수 새마을 지도자셨던 할아버지와의 추억 이야기
어린 시절, 나는 할아버지 댁의 다락방에 있는 큰 탁상시계를 봤다. 꼬마 시절이었기에 그 시계는 내게 엄청난 보물이자 신기한 귀중품으로 보였다. 그 시계는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나의 귀까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너무도 궁금했던 나,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저 탁상시계 뭐예요?"
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젊은 시절에 새마을 운동했을 때, 대표로 받은 기념품이란다. 신기하지?"
그때는 정말로 신기했다. 나는 꼬마 시절이니 새마을 운동이 뭔지도 몰랐고, 그냥 큰 탁상시계의 숫자와 소리 그리고 초침과 분침이 움직이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낡은 책이 있었다. 나는 또다시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이 책은 뭐예요?"
할아버지께서는 "응, 이 책은 새마을 운동 관련 책자란다. 전국의 모든 새마을 활동을 사진으로 찍은 건데, 지역별 보수 공사와 개선 사항 등을 찍어서 참석자들에게 나눠 준 거야." 이 책을 보니, 어린 시절임에도 새마을 운동이 무엇인지를 인식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초등학생이 된 나, 여전히 그 탁상시계는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책도 여전히 보관 중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나도 책을 많이 읽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당연히, 새마을 운동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근현대사의 큰 뿌리였고, 새로운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 일어났던 운동 중에 하나였다. 그런 역사적 사실을 이렇게 탁상시계와 책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감회가 남달랐다. 어찌 보면, 역사적인 보물을 내가 소유한 기분이라고 할까? 물론, 할아버지께서는 나의 이런 모습에 큰 관심을 두지 않으셨다. 과거에 받은 기념품 중 하나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시간이 더 흘러,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시계는 이제 멈추게 되었다. 또한, 책도 사라졌다. 할아버지께서 집안 정리를 하셨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탁상시계는 우리 집으로 가져왔다. 역사적 물품이라서 그런지 그 시계는 내 방에 보관되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 시계를 다시 보니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1976년이다. 1976년이면 2023년 기준으로 무려 47년 전이다. 다시 말해, 나는 연도도 모르고 그 시계의 모양만 생각했던 것이다. 왜 해당연도를 이제야 봤을까? 정말, 나는 시계의 외적인 모습과 시계의 소리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시계의 본질을 몰랐던 것일까?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새마을 운동만 기억할 뿐, 자세한 숫자까지 못 봤던 것은 그만큼 나도 시야가 좁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시야가 좁았던 나 자신은 다시 그 시계를 바라봤다. 다시 보니, 유리에 금이 있었다. 아마 옮기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생겼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시계는 오후 4시 34분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고, 현재 2023년까지 약 20년 가까이 내 방에서 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오후 4시 34분...... 왜 이 시간에 멈추었을까?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시계가 잘 움직이다가 갑자기 부서져서 그런 것일까? 여하튼, 그 탁상시계는 우리 집 가보이자 기념품이자 역사적 산물이 되었다.
몇 년 전, 할아버지께서는 새로운 세상으로 평화롭게 가셨다. 할아버지께서 새로운 세상을 가가 몇 시간 전, 나와 동생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평화로운 미소와 함께 약간의 눈물도 보이셨다. 마지막까지 할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할아버지에게 몇 마디를 하고, 꽤 오랜 시간 나와 동생은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밤에 그렇게 가셨다.
할아버지를 그렇게 보낸 후, 다시 돌아온 나. 내 방에 있는 탁상시계를 다시 봤다. 할아버지께서 애지중지하셨던 시계였지만, 내가 늘 그 시계를 보고 만지고 할 때마다 혼내지 않으셨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꼬마 시절부터 나에게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물건으로 보여서 미소를 지었는데 그 모습이 좋으셨나 보다. 그러니 책까지 내게 보여주고 설명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저 시계 말고도 할아버지께서 가장 중요시 한 물건이 있었다. 그 물건의 용도를 잘 모르겠지만, 할아버지께서 6. 25 참전 용사로서 받은 것으로 얼핏 들은 것 같았다. 그것만큼은 나도 본 적이 없다. 아마도 가장 아끼신 물건이 아니었을까? 할아버지께서는 아마도 전쟁에 대한 아픔 혹은 고생한 것에 대한 답답함을 그 물건을 통해 달래신 것 같았다. 그래서 차마 나는 그것에 대해 물어볼 수 없었다. 오로지 할아버지께서 탁상시계에 대해서만 내게 대답해 주신 것뿐이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께서는 늘 나와 동생을 아끼셨다. 그리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리고 늘 고마워했다. 무엇이 고마웠을까? 우리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그러신 걸까? 아니면 무엇일까? 아직 그 해답을 찾지 못한 것 같다. 탁상시계만 그 의미를 알고 있는 건지? 머리가 약간 복잡했다. 내가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었을 때 그 의미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할아버지께서 새로운 세상으로 가신 후, 우리 가족은 설과 추석에 차례를 지낸다. 차례를 지내면서 할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으실까? 그리고 애지중지하신 그 탁상시계를 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