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미국 월드컵 감상기
순수하고, 동그란 눈으로 처음 본 첫 월드컵
필자가 한글을 겨우 떼고 한글에 대한 이해력을 겨우 익힐 무렵이었다. 그때 필자는 스포츠에 매료되기 시작되었고, 각종 스포츠 경기를 시청하면서 재미를 느꼈다.
1994년, 뜨거운 여름이 오기 전, 미국에서 아주 위대한 행사가 열렸다. 바로 월드컵이었다. 당시, 필자는 월드컵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단지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24개 국가들이 모여서 총 52경기를 미국 대도시 여러 곳에서 멋진 승부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렇게 짧게만 알고 있었던 월드컵... 시카고 솔저 필드에서 독일과 볼리비아의 개막전부터 결승전 패서데나 로즈볼 스타디움 브라질과 이탈리아 경기까지의 감상평을 쭉 적어보겠다. 물론, 결과나 득점자 그런 정보가 아닌 필자의 감상을 위주로 작성할 것이다.
미국 월드컵은 그렇게 24개국이 경쟁을 해서 우승컵을 다투는 15번째 월드컵 대회였다. 필자는 전 경기를 다 볼 수 없었기에 생중계와 녹화 중계, 하이라이트 등을 번갈아보며 월드컵의 흥미를 쌓았다. 당시, 개막전 행사에서 우리나라의 부채춤과 전통 무용이 기억났고, 해당 국가들의 전통 의상과 그에 맞는 무대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행사가 끝나고 우리가 알고 있는 페어플레이 공식 인트로 음악이 흐르며 월드컵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필자는 월드컵 52경기를 치르면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최다 관중 수를 볼 때마다 얼마나 미국 월드컵이 대단한 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사실, 미국이 축구를 한다는 것에 당시 회의감이 팽배했다. 야구, 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에 치중한 프로스포츠에서 축구가 과연 성공할까에 대한 의문점은 가득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대박이 터진 것이다. SOC(사회간접자본)이 잘 갖추어졌고(항만, 철도, 고속도로, 공항), 워낙 인구도 많았으며, 다양한 인종들이 모였기에 관중들을 끌어모으는 데 제격이었다. 그리고 미국 경제가 최고조 시기였기에 자본 투입은 역대 최강이었다. 다만, 경기장이 분지형태 즉. 개방화 상태라서 대부분 한낮에 열린 탓에 관중들과 선수들이 더위에 애먹은 건 옥에 티였다. 그러나 이것도 피파가 유럽 대륙의 프라임 시간대를 맞추기 위한 전략이었으니.... 어찌 보면 상업화 속에 월드컵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월드컵은 제3국에 열리는 대회답게 이변이 많이 나왔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콜롬비아 선수 에스코바르의 자책골로 인한 보복성 살해였다. 미국 전에서 어쩔 수 없이 자책골을 허용한 뒤 조국에서 그만 총에 맞아 사망한 것이었다. 현재까지도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아있을 만큼 슬프고, 어이없는 역사로 남아있다. 그 밖에도 이탈리아의 아슬아슬한 조별 예선 통과, 2승 1패가 3팀씩 2개의 조에서 나오는 물고 물리는 접전, 사우디아라비아의 16강 진출로 인한 왕족에서의 모든 선수들에게 고급 자동차 보너스 지급, 마라도나의 약물로 인한 몰락 등등 예선전부터 아주 이슈를 물고 다닐 만큼의 경기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볼리비아, 독일, 스페인과의 죽음의 조에서 무려 2 무 1패라는 엄청난 결과를 냈다. 스페인과 극적으로 비겨서 전 국민이 난리가 났었고, 볼리비아와의 경기에서 최초로 클린 시트를 기록했음에도 아깝게 비긴 점, 독일과 치열한 승부로 3:2까지 따라붙으며 당시 랭킹 1위였던 독일을 혼쭐 낸 인상적인 결과 등등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가장 자부심 많은 월드컵이었다.
그렇게 이변과 재미와 흥미와 호기심과 유명 선수들의 맹활약 속에 16강전 경기부터 결과가 다양했다. 발칸의 마라도나였던 게오르게 하지가 이끈 루마니아가 아르헨티나를 이겼고, 이탈리아는 나이지리아를 겨우 꺾고, 독일은 벨기에로부터 혼쭐나서 이겼고, 불가리아가 처음으로 8강에 진출했으며, 브라질은 미국에 겨우 승리하는 등 명승부가 많았다.
8강, 4강, 결승까지 오면서 최종 브라질과 이탈리아가 24년 만에 격돌하게 되었다. 1970년 4:1로 가볍게 이긴 브라질이 과연 이번에도 쉽게 이길 수 있을지 주목되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끈질긴 수비 앞에 맹공을 퍼붓고도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이었다. 월드컵 사상 결승 승부차기....
브라질이 앞서고 있었을 때, 이탈리아의 영웅 로베르토 바조가 킥을 준비했다. 슛... 그러나 공은 홈런이 되어 공중으로 솟았고, 그 순간 그는 고개를 떨구었고, 브라질 선수들은 환호와 눈물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당시, 필자의 기억으로는 1994년 F1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은 아일톤 세나를 기리고자 플래카드로 선수들이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앨 고어 전 총리가 둥가 선수에게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주면서 즐거워하는 표정이 남아있다.
그렇게 필자가 처음 본 1994년 미국 월드컵은 재미와 감동과 슬픔과 아쉬움 등 즉, 희로애락의 모든 것을 느낀 스포츠 빅 이벤트였다. 당시 KBS와 MBC를 번갈아보면서 졸린 눈을 비벼가며 축구의 재미를 느꼈고, 영어를 몰라 물어가며 발음을 익히고, 선수들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하게 된 월드컵이었다. 어찌 보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알베르빌 올림픽 시청 이후, 가장 뇌리 속에 남아있는 경기들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유튜브 채널에서 1994년 미국 월드컵 전 경기를 볼 수 있는 미디어의 발달을 보면서 필자는 잠시 눈물을 흘렸다. 아..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너무 그립고, 아쉽고, 추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1994년 월드컵은 마음속에 아련히 남아있는 첫 축구 대회였다. 그리고 4년 뒤, 20세기의 마지막 월드컵인 프랑스에서 우리는 아주 안타까운 현실을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