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프랑스월드컵 감상기
현실에 눈뜨고 세계 축구를 분석한 월드컵
1994년 월드컵은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월드컵이었다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은 면밀하고 분석적으로 보며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던 월드컵이었다. 1996년 잉글랜드에서 열린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하이라이트로 봤었고, 많은 국제 경기를 보며 축구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쌓았기 때문이었다. 신문도 봤었고, 뉴스도 보는 등 축구에 대한 어느 정도의 깜냥이 있었을 때, 프랑스 월드컵은 시작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IMF가 터져 우리나라가 절망에 빠진 무렵이었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압도적인 성적으로 프랑스 월드컵에 진출했다. 하지만 월드컵에 진출하고도 외국 친선 경기를 직접 우리가 TV로 볼 수 없을 정도의 현실, 황선홍의 부상 등 여러 악재가 있었다. 또한, 참가국 수가 24개국에서 32개국으로 늘어나 와일드카드가 없어져 경쟁률은 더 높아졌고, 강호들이 더 많이 참가함으로써 우리나라의 1승은 정말 절망적이었다. 그런데도 언론과 국민들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필자는 이미, 위에서 말했듯이 축구 경기를 많이 봤고, 선수들을 많이 알고 있었기에 1승은커녕 1골이라도 제대로 넣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으로 월드컵을 기다렸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그런 속담은 필자에겐 어림도 없던 냉정한 현실이었다.
프랑스 월드컵은 프랑스가 예술과 문화의 성지 국가답게 개막 행사부터 정말 휘황 찬란했다. 또한, 프랑스의 유명 도시들에서 치르는 경기만큼 인프라는 아주 훌륭했고, 선수들이 경기에만 치중할 수 있는 아주 멋진 환경 속에서 월드컵은 시작되었다.
필자는 월드컵 시청을 통해서 장 짜르 미첼의 랑데부 98 인트로 음악을 알게 되었는데, 지금도 필자가 듣는 멋진 음악이다. 그렇게 행사와 노래, 시설이 멋지게 갖추어진 월드컵이니 얼마나 재미가 많았겠는가? 게다가,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경기를 할 때마다 나오는 자막에 국가들의 표기가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였다는 것이다. 물론, 시작부터 월드컵 홍보 할 때, 월드컵이 아닌 쿠브 드 몽드로 표기했으니 월드컵을 어떻게든 자국 중심화로 표현하고 싶은 프랑스의 열망이었을 수도....
그러한 분위기 속에, 필자는 우리나라의 경기력으로는 어렵다는 분명한 판단 아래, 한국 조별 경기들은 편안하게 감상하고, 다른 조들의 국가들 경기를 모두 다 봤다. 역시, 이변은 딱 1팀만 나오고 나머지는 예상대로 착착 들어맞았다. 스페인이 나이지리아에게 발목이 잡혀 결국 16강에 가지 못한 것이다. 물론, 루마니아가 잉글랜드에게 이기고, 브라질이 노르웨이에게 패하고, 5:0 경기가 2번씩 나오는 등 골 잔치도 있긴 했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역시, 유럽에 열리는 만큼 집안 근처 국가들의 선전은 당연했으니 말이다.
그 후, 16강 전부터 결승 전까지 올라올 팀은 모두 다 올라왔다. 이변이 있었다면 덴마크가 8강에 진출해서 아깝게 브라질에게 3:2로 패한 것, 파라과이가 프랑스를 골든 골 직전까지 틀어막은 것, 크로아티아가 8강에서 독일을 3:0으로 누른 것이다. 물론 크로아티아의 실력은 유고슬라비아에서 파생된 선수들의 조직력과 기술이 이미 검증된 거라 이변이라기보다는 우리들의 무지로 인한 착각이었다. 필자는 1996년에 열린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보고 크로아티아의 실력을 간파했지만 이 정도의 대박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4강과 결승까지 가서 최종 승부는 생드니 구장에서 브라질과 프랑스의 대결로 압축되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 3:0 프랑스의 완승이었다.
누가 그런 결과를 맞추었을까?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다시 경기를 보면, 브라질은 결승에서 제대로 경기력을 펼치지 못해 망신을 당했고, 프랑스는 모든 것을 유리하게 적용해서 우승할 수 있는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었다. 그러니 시야가 좁은 상황에서 필자가 본 것과 세월이 흘러 다시 보는 관점은 이렇게 크다는 것을 또 깨달았다.
그렇게 프랑스 월드컵은 프랑스의 첫 우승으로 끝이 나면서 마무리되었다. 필자는 프랑스 월드컵을 시청하면서 많은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우선, 경기 수가 52경기에서 64경기로 늘어난 만큼, 골도 많이 터지고 참가국도 늘어나면서 경쟁력이 아주 높아졌다는 것을 인식했다. 우리나라의 실력으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고, 아시아 대륙의 몰락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는 상향평준화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남미와 유럽의 양분화 속에 아프리카 축구가 굉장히 선전한 것이다. 물론 모로코는 아깝게 탈락했고, 나이지리아는 보너스 문제로 조직력 와해가 되었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충분히 위협적인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실력을 충분히 보여줬다. 이로써 월드컵은 정말 월드컵화되어가는 출발점이 된 것이다. 그 밖에도 첫 진출팀들의 성적이 꽤 좋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2 무 1패, 자메이카는 1승 2패, 크로아티아는 3위 등... 그만큼 월드컵 신생 출전팀들도 얼마든지 다크호스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러한 경기력뿐 아니라 사건 사고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훌리건 난동으로 경찰이 장애인이 되었고, 우리나라의 하석주 선수가 가린샤 클럽에 가입되었으며, 이란과 미국과의 경기는 외교 위기로 인한 아주 초긴장 속에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축구 외적으로도 이슈가 많았었다.
이렇게 다양한 플레이와 사건 사고를 보면서 프랑스 월드컵은 필자에게 축구에 대한 지식과 시야를 더욱 넓히게 한 계기가 되었고, 이렇게 감상평을 쓸 수 있는 기억력까지 제공하게 되었다. 그 후, 4년 뒤에는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대박적 월드컵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