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 감상기 (1)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만드는 월드컵 이벤트가 이뤄지다.

by 글쓰는 동안남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치른 지도 20년이 지났다. 그리고 2022년에 카타르에서 월드컵을 개최했다. 필자는 개최된 지 20년 이상도 지나간 한일 월드컵을 통해 우리가 느끼고 경험한 사항을 적고자 한다. 총 4부작으로 구성할 예정이니 천천히 읽으시면 감사하겠다.


1996년, 피파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한국과 일본이 월드컵을 공동개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당시, 일본이 월드컵 유치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지만, 우리 국민들의 정성과 노력의 결실이 공동개최라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 이로써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공동개최라는 경사와 함께 유럽과 남미로 양분된 개최지가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라는 미지의 대륙에서 펼쳐지는 대회가 되었다.

(1970. 1986년 멕시코, 1994년 미국은 북중미에서 열림)


이렇게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시작되었다. 경기장 개최, 인프라 등 여러 사항을 구축해 나아가야 했고, 덩달아 축구 대표 선수들의 실력 향상도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은 아주 큰 위기가 왔었다.


1996년 아시안컵, 우리나라는 역사적인 치욕을 겪었고, 차범근 감독을 선임했고, 그는 한국 스타일을 재정비해서 조별 예선을 압도적으로 통과했다. 당시, 같은 조였던 일본도 조 2위로 통과해 제3 국에서 이란과 단판 승부에서 승리를 거둬 사상 첫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래서 외신들은 이 두나라가 2002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분석을 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한국은 네덜란드, 멕시코, 벨기에와 격돌에 1 무 2패라는 성적표를 받았고, 일본은 아르헨티나, 크로아티아, 자메이카와 만나 3패라는 성적표를 받으면서 2002년 월드컵은 사상 첫 개최국이 조별 예선 탈락이라는 오명을 받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게 된다. (2010년, 남아공이 정말 아깝게 희생양이 되었다. 그리고 2022년 카타르는 사상 3패로 예선 탈락하는 결과를 얻는다.)


프랑스 월드컵에서 처참한 성적을 거둔 한국과 일본은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에서 다시 재정비를 했다. 일본은 우승이라는 성적을 냈지만, 한국은 3위라는 성적을 받으면서 우려는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나라는 큰 결정을 내린다. 거스 히딩크 감독을 선임한 것이다. 그가 누구인가? 프랑스월드컵에서 우리나라를 5:0으로 무너뜨린 원수 같은 감독이다. 그 감독이 이제 우리나라 감독이 되었다는 소식에 국민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히딩크 감독은 우려 반 기대 반 속에 2002년 월드컵을 위한 출발을 했다. 하지만 컨페더레이션스컵 프랑스 5:0 패배, 체코와의 친선 경기 5:0 패배 등 졸전이 나오면서 오대영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체력 위주의 훈련과 사생활 문제, 언론과의 대처 문제, 선수 선발 및 기타 위계질서 문제 등 부정적인 시각이 나오면서 회의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 축구의 16강 목표를 위해 그가 추구하는 축구 전술과 훈련을 지속했다.


집중적인 체력 훈련과 강팀과의 수많은 경기를 치르면서 한국은 점점 성적이 향상되기 시작한다. 시간은 흘러, 2002년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 우리나라는 프랑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와 친선경기를 갖게 된다. 여기서 히딩크의 전술과 노력, 체력 훈련이 결실을 얻게 된다.


프랑스에게는 아깝게 3:2 패배, 잉글랜드와 1:1 무승부, 스코틀랜드와의 경기는 5:1 대승, 정말 박빙의 승부에서 우리나라 축구는 단기간에 발전한 것이다. 말 그대로 히딩크 식의 축구가 통한 것이다. 그래도 국민들은 과거 월드컵을 상기하며 불안 속에 기대감을 가지며 월드컵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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