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달리기를 한다. 어제는 했고 오늘은 안 했다. 매일 꾸준히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은 지 수년 째인데 실천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박약한 의지를 다 잡고 노력하는 이유는 운동화 신은 뇌 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뇌가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 책의 요지이다. 이 가설에 정확히 들어맞는 사례 또한 접했다. 내가 흠모하는 두 소설가들께서는 마라톤을 취미로, 아니 글을 더 잘 쓰기 위해 매일 달린다고 한다. 이렇게 달리기란 실제로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 좋아하고픈,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신은 나의 편일까. 기가 막힌 우연으로 우리 집 동네에는 종합 운동 시설이 있다. 도에서 가장 큰 수영장과 야구장은 물론, 달리기 트랙이 있는 운동장도 두 개나 된다. 덕분에 일년 내내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보게 된다. 자연스러운 동기 부여랄까, 고개만 들어 주위를 살피면 ‘한번 달려보는 거 어때?’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꼬드기는 소리가 들린다. 건강한 신체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면 수십 년간 운동과는 담 쌓고 살아온 나의 게으른 본성을 탓하게 되고 운동화 끈을 동여매는 힘을 조금씩은 갖게 된다.
처음 달리기를 시도한 건 2023년 즈음 애향운동장이라고 부르는 축구장 시설에서였다. 애향운동장이라고 부르는 작은 축구장은 종합운동장의 많은 시설 중 단연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운동장의 가장자리에는 벚나무와 가로등이 서 있었고 기분 좋은 산책 코스가 되었다. 운동장 앞 풀밭에서는 다양한 운동 시설이 있었다. 사실 그때 내가 한 운동은 달리기라고 부르기가 뭣한데 채 한 바퀴도 채우지 못하고 종종 걸었기 때문이다. 일분 아니 삼십초만 뛰어도 숨이 헐떡거리고 심장이 못 견딜 것 같았다. 다리도 천근만근이 되자 나는 금세 뛰기를 걷기로 전환했다. 그러면서 ‘걷는 것도 운동이야!’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그러다 나는 새로운 코스로 달리기를 시도했다. 주 경기장 안의 운동장 트랙은 애향 운동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도민체전을 열면 거기서 성화봉송도 하는 곳이었다. 관중석과 트랙의 규모는 훨씬 웅장했고 거기서 뛰는 사람들은 훨씬 전문적으로 보였다. 제대로 된 운동복을 갖춰 입고 근육도 탄탄해 보였다. 나는 무리하지 말자를 외치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매일 운동하러 나가곤 했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쉬지 않고 15바퀴 뛰기에 성공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약 6개월이 지났고 달리기는 나에게 그렇게 낯설지 않은 것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곧 나의 달리기 인생에 내리막이 찾아 왔다. 겨울 동안 날씨가 추워 잠시 달리기를 등한시했는데 그새 손목을 다쳤고 운동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후 일년이 훌쩍 넘도록 나는 아픈 손목을 핑계로 거의 운동을 하지 않았다. 이러면 안될 노릇이 되었다. 다친 손목은 느리지만 거의 회복이 되었고 달리기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겁이 났다. 내안의 게으른 본성이 조금이라도 더 힘을 갖는다면 나는 또 뛰는 것을 멈추겠지. 그래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실내에서 러닝머신으로 뛰면 추운 날씨에도 쉽게 달린다. 달리기 앱을 활용하면 쉽게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이 불끈 불끈 솟는다.
돌아보면 나의 달리기는 제자리를 지키는 것 같았다. 몇 달 동안 달리기를 훈련해도 몇 달 쉬어 버리니 다시 처음인 것 같았다. 운동장을 뛸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바퀴 뛰든 열다섯 바퀴를 뛰든 나의 도착점은 처음의 출발점과 같다. 러닝머신 위에서는 삼십 분을, 한 시간을 뛰지만 나의 위치는 처음 그 자리다. 그렇다고 내가 달리지 않았던가. 내가 지나온 과정이 아무것도 아니었나. 이제 나는 출발이 꼭 다른 자리로 이동함을 의미하지 않음을 믿는다. 나는 달리기에서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의 희노애락을 묵묵히 즐겨왔다.
그 시간들은 충분히 소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