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가 해 주지 못하는 것

by 써머

일주일에 한 번은 도서관을 간다. 차를 운전하면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가서는 최대 대출 권수인 다섯 권을 꽉 채워 책을 빌려 온다. 하지만 늘 실천보다는 마음이 앞서, 빌려온 책을 기한 내에 다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열람실에서는 그렇게 재미있어 보였는데 막상 집에 와서 책장을 넘기면 흥미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관심은 금세 움직여 새로운 책이 읽고 싶어지기도 한다.


인공지능 인문학 추천도서로 포스트휴먼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아동 추천 도서인 로봇 동화도 읽어 보고 싶어졌다. 제목은 와일드로봇. 추천도서 답게 이미 도서관에 소장중. 아 843브292o 청구번호를 보고 책장을 찾아간다. 그런데 있어야 할 자리에 보이지 않는다. 맨 아래 칸이니 고개를 숙이고 다시 한번 훑는다. 이번에는 무릎을 굽히고 앉은 자세로 더 열심히 찾아본다. 못 찾겠다. 다시 검색대로 가서 청구 번호를 출력하고 사서들이 앉은 자리를 쳐다본다. 열람실 입구에 나란히 놓인 책상에 네 명의 사서 선생님이 앉아 있다. 그들은 조금의 움직임 없이 자신들 앞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시선이 고정된 채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가장 바깥 자리에 앉은 안경 쓴 사서 선생님에게 다가가 말한다.


"저기, 이 책 좀 찾아 주시겠어요?"


그녀의 무거운 몸이 먼저, 그리고 눈이 천천히 나를 향한다. 내가 내민 쪽지에는 시선을 두지 않은 채 그녀가 하는 말


"처음 오신 건가요?"


나의 청을 반기지 않을 거란 짐작은 이미 한 터였다. 그럼에도 내가 예상한 그녀의 반응이란 조금 뜸을 들였다가 일어나는 뜨뜻미지근한 정도였다.


"처음은 아니고요. 찾아봤는데 안 보여서요."


나도 모르게 지지 않겠다는 듯 대거리를 뱉는다. 지난 여름, 다른 도서관에서도 있었던 비슷한 일화가 떠오른 까닭이다.


찾는 책을 찾아 집에서 좀 떨어진 도서관에 갔다. 고등학생 때는 주말마다 공부하러 자주 다니던 곳이었다. 세월이 흘러 동네에 번듯한 도서관이 새로 생기니 멀고 오래된 그곳을 굳이 찾아가지 않게 되었다.


오랜만에 본 열람실은 원형은 그대로에 낡긴 했지만 나름 새단장을 한 터였다. 책장은 한결 키가 커졌고 테이블에는 1인 칸막이가 생겼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는 보지 못한 큰 글자책들도 꽤나 많았다. 복도 한 가운데에는 큼지막한 자가대출기 두 개가 자리 잡았다. 우리 동네 도서관의 기계와는 닮은 듯 조금 달랐다. 키가 나만하고 커다란 스크린이 압도적이었다. 생소한 외관과는 달리 조작은 동일했다. 투명한 아크릴판 위에 책을 놓고 대출 버튼을 누르고 회원증을 읽혔다.


'대출 불가. 부록 자료가 있는 도서이니 대출이 불가합니다.'


안내 데스크에는 두 명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가까운 쪽에 앉은 분은 파란 바탕에 소매가 나팔처럼 퍼지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염색한 긴 머리를 반으로 묶고 날씬한 몸매가 여성스러웠다.


"저기요. 이 책 대출 좀 해 주실래요?"


"키오스크 이용하실래요?"


"아니요. 저기서 안되서요."


"다시 가서 해 보시겠어요?"


뭐 바쁜 일이라도 있는 건가? 내가 키오스크를 이용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나? '넘어졌니? 그래 혼자 일어서는 것쯤은 알아서 해야지.' 라고 다그치는 엄마의 모습이다. 왠지 어린 아이가 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그게 아니라요. 부록 자료가 있어서 키오스크에서 대출이 안된다고 나와요."


그제서야 그녀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책을 건네주는 그녀의 얇은 손목에 보이지 않는 레이저를 쏘았다. 도서관에 있던 큰 글자책들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나는 직업의 미래를 생각했다.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것의 80~90%는 아이들이 40대가 됐을 때 별로 필요 없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부분의 내용은 2050년엔 쓸모가 없어진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기계는 무서운 속도로 사람의 일을 대신하고 있다. 나는 점원이 없는 무인 카페를 상상해 본다. 키오스크가 주문을 받고, 로봇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들면 서빙 로봇이 음료를 배달한다. 세계경제포럼은 2025년까지 8700만개의 일자리가 자동화에 의해 대체되고 95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나는 사서가 하는 일을 전부 다 알지는 못한다. 처리해야 할 행정 절차나 서류 작업이 많을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많은 일 중, 책의 청구 번호를 스캔하고 대출 버튼을 누르는 일을 기계가 대신해 주어 만족해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용자의 마음을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은 기계가 대체하지 못하는 일이다. 내가 직접 다가가 말을 걸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두 명의 사서가 보인 반응은 차가웠다. 마치 기계의 온도처럼. 오로지 사람만이 온기를 가질 수 있다. 기계는 뜨거울 수 없다.


인공지능 시대는 포스트휴먼 사회가 될 것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인간 이후라는 뜻이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사피엔스의 시대가 지나면 지금까지의 인간과는 전혀 다른 호모데우스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미래의 새로운 인류는 지금의 나처럼 기계가 갖지 못한 인간의 온기를 그리워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시절, 매번 책을 대출해 주던 사서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 선명하다.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고 까만 단발머리의 그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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