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OOO 칼국수. 특이한 이름이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분명 내가 성인이 된 후에 우리 동네에 생긴 가게. 평소에는 많이 허름한 내 기억력을 믿는 이유는, 그때 분명 몇 번쯤 그 가게를 지나치며 한번 사 먹어보리라던 내 입맛의 다짐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외식한번 한 일이 없이 가난했었기에.. 대학생때만 해도 알바로 번 돈이라 할 지라도 친구와 고작 빵집에 가는 일만이 내 과소비의 일부였다. 직장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가게에서 밥을 사 먹는 일이 익숙해졌다.
아마 언젠가가게 앞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고 내가 엄마의 손을 이끌어 칼국수 한 그릇 먹고 가자 했을 것이다. 난 1OOO이라는 이름의 기본 칼국수를 먹고 매우 만족했다. 그로부터 수년 후, 아빠가 근처 종합병원에 폐결핵으로 입원하시던 날, 언니와 형부, 엄마와 나 넷이서 그 가게를 한번 더 간 일이 있다. 그 앞을 수십번 아니 수백번쯤 지나치면서 '응, 칼국수 맛있는 곳' 이라 생각하기만 했다. 난 그랬다.
오늘 그곳을 찾았다. 건너편 마트에 장을 보려고도 아니고, 병원에 들를 일도 아니고 순전히 칼국수를 먹으러 혼자 가게로 들어갔다.
평일1시반, 좁은 공간에 여남은 개의 테이블이 빽빽이 들어 서 있다. 바글대는 손님들이 더해져 공간은 거친 숨을 몰아 쉰다.
나는 아닌 체 하면서 얼른 손님들을 훔쳐 본다. 대부분 두꺼운 외투 없이 단벌 양복을 입은 넥타이쟁이들이다. 이 주변에 화이트컬러 직장인이 이리 많았나? 해봤자 은행원일테지. 그들의 정체에 괜히 관심을 가져 본다. 오늘은 비도 왔겠다. 칼국수란 메뉴가 직장인들의 점심 메뉴로는 딱이다 싶다. 육천원이라는 가격이 방문의 이유를 더해 줄것이다.
나같은 혼밥족들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될 작은 2인용 테이블이 눈에 띈다. 들어서자마자 정겨운 인사로 반겨주시니 벅적거려도 유쾌해진다.
큼지막하게 썰린 감자가 눈에 띄다. 그래, 분명 푹 익은 이 큰 감자 조각을 맛나게 먹었었지. 예전 미각을 떠올리며 그 맛이 과연 맞는지 음미해 본다. 짭쪼름한 국물 맛이 변함이 없는 듯 하고, 매콤한 겉절이의 식감도 만족스럽다. 한동안 그릇에 코를 박고 미각에 집중한다.
하지만, 식당에 혼자 오면 눈은 어두워지고 귀는 밝아진다. 내가 음식을 받을 즈음 일렬로 앉았던 직장인 테이블이 우르르 나간다..이제 나처럼 혼자 앉은 중년여성 한 분만 남았는데 잉? 또 한 그룹의 직장인들 입장하는 소리가 들린다.
일행은 네명인 듯 그중 젊고 늘씬한 양복쟁이 남자가 눈에 띈다.
"나는 닭"
중후한 느낌의 남자.
"하나 다 먹을 수 있어?"
여자의 목소리가 나긋하다.
"다 못먹죠~~."
끝이 물결타는 또 다른 여자의 목소리는 아이에 가깝다.
그냥 하나. 바지락 하나. 닭 하나. 칼국수 세 그릇을 주문하는 그들
그릇 소리만이 달그락대는 적막속이라 여자의 낭랑한 목소리가 유난히 튄다. 나도 모르게 다시한번 그들을 훔쳐본다. 여자는 가지런한 긴 생머리만을 보인채 뒤로 앉았고 대신 맞은 편에 또 하나의 여인이... 다 먹을 수 있냐고 물은 안 어린 여자다.
남자 둘, 여자 둘 넷이 와서 3인분을 주문하네.
하..나도 어렸.. 젊었.. 일년 .. 아니 이년 전만 해도 이 정도 그릇 다 못 먹는다 그랬는데... 그래 나이 먹어서가 아니라 내가 나이 먹어서 그런거야... 라고 의견을 수정한다.
쉴새없이 종알대는 여자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듣기 싫다고 생각할 때쯤 그들의 칼국수가 도착했나 보다.
"저기, 그릇 하나만 주세요."
처음으로 듣게 되는 그 젊은 남자의 목소리다. 잇따라 다급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
"아니에요. 여기에 덜어 먹으라도 주신 거고, 이 그릇은 바지락 담으라고 주신 거야."
"네~ 맞아요~ 근데 필요하시면 더 드릴게요."
상냥함이 넘치는 직원의 예쁜 목소리. 내가 들어서자 마자 반갑게 맞이한 바로 그녀다.
남자는 왜 그릇을 더 가져오지 못하게 서둘러서 말렸을까? 매번 당당하게 접시를 요구하는 나는 멋쩍어진다. 다시 한번,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희가 그릇 욕심이 좀 많아요.
중년 남자가 덧붙인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엷은 미소를 띈 채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그의 목소리에서 따뜻함과 품위를 느낀다.
혼밥 주제에 세월아 네월아 느릿느릿 먹는 일은 낯 뜨거운 짓이다. 안그래도 뜨끈한 국물에 매콤한 겉절이 김치에 속이 훈훈하다. 더이상 그들의 대화는 듣지 않고 먹는 일에 집중하기로 한다. 주인이 낮게 틀어놓은 TV소리는 정체를 가늠하기가 힘들고, 부엌에서 들리는 그릇 씻는 소리만이 명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