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여행의 이유)
‘여행을 좋아하시나요?’ 저자 김영하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생각이 길어지고, 미적지근한 대답을 내놓게 된다고 하였다. 이 질문을 스스로 나에게 던진다면? 나 역시도 깊이 고민하게 되는 질문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서 틈만 나면 여행을 다녔다. 덕분에 내 2~30대의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은 주로 여행과 관련이 깊다. 직장에서 얻은 기회로 한 달 이상 해외에서 체류한 경험도 몇 번 있다. 책에 나온 표현대로 나는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가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점점 여행이 주는 설렘과 일탈, 그리고 불안 사이에서 시소 싸움을 하게 됨을 느꼈다. 여행을 상상하는 설렘이 훨씬 큰 중량을 차지하다가도 돌연, 불안이 큰 무게로 다가와버리는 그런 종류의 것 말이다. 작년 한 해는 나에게 조금 특별했는데, 그것은 나의 마지막 30대였기 때문이다. 이제 나 스스로를 청춘이라고 부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새해가 되어 나이 마흔이 된다면, 나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내 30대 마지막 겨울, 혼자 하는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3년 전 다녀왔던 스페인, 그리고 미처 그때 가지 못해 아쉬웠던 포르투갈 3주간의 여행이었다. 그 여행에서 유일하게 챙겨 간 책이 <여행의 이유>였다. 사실, 작년 이맘 즈음 지인으로부터 이미 선물을 받아, 한번 읽어두었던 터였다. 그리고 마드리드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완독하고야 말았다. 덕분에 그때의 마드리드행 탑승권은, 이 책의 책갈피가 되었다.
나는 내 청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기념행사로 왜 하필 여자 혼자 하는 여행을 선택했을까? 사실 나는 한창 여행을 다녔던 내 청춘의 시절, 이미 나만의 ‘여행의 이유’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비일상으로의 탈주’였다. 그것은 ‘상처받은 것들로부터 도망가기’와는 다른 맥락이다. 일상이 나에게 상처인 적은 없었다. 나는 그저 변화된 환경을 즐겼을 뿐이다. 나에게 그 탈주가 의미 있었던 것은 ‘오직 현재’였기 때문이다. 여행에서는 쉼 조차도 죄책감을 받지 않고 행할 수 있었다. 여행지 코스를 정하고, 해야 할 일들을 정하는 일들은 꽤나 고단한 행군이었다. 그럼에도 그 일들이 즐거웠던 건 몰입의 순간을 경험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행하는 동안 만이 아니라, 준비하는 동안도 그 정신적 과정은 희열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불안 또한 즐겨왔다. 실은 3년 전 겨울, 스페인을 9일 동안 여행하다가 이 책 첫 장에서 다루는 ‘추방과 멀미’라는 일화와 비슷한 경험도 한 적이 있다. 스페인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던 나는 과감하게도 단독 여행을 감행했다. 스페인이 위험한 여행지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마드리드에서 세비야로, 그리고 코르도바, 마지막 그라나다로 이어지는 여행을 마치고 나는 체류지였던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돌아와야 했다. 나의 티켓은 그라나다 발 런던행 이베리아 항공권이었고, 거기서 다시 영국 항공사를 이용하여 그라나다로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안개가 짙게 끼어, 오전 11시에 출발했어야 할 비행기가 몇 시간째 지연이었다. 스페인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을 재촉하면 큰 실례라고 미리 공부하고 갔는데도 위기의 순간이라 나는 해오던 버릇을 저지르고 말았다. 항공사 직원에게 가서 ‘나는 영국에서 다시 더블린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어쩌면 좋냐’ 발을 동동 굴렀다. 다소 퉁명스레 나를 대한 그 남자 직원 옆에는 청원경찰이 한 명 서 있었는데, 자기 집무실로 나를 따라오라고 손짓하였다. 항공사 직원과는 영어로 소통할 수 있었지만, 어쩐지 그 경찰은 단 한 마디도 영어를 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내 여권과 탑승권을 맡긴 채 집무실에서 한 시간 넘도록 잡혀 있었다. 그는 내가 정말 한국인이 맞는지 의심하는 낌새였는데 나는 구글번역으로나마 그와 소통하려 했지만, 그는 내가 휴대폰을 만지려 할 때마다 ‘노! 노!’를 외쳤다. 나는 그에게 계속 통사정을 했지만, 그는 나를 보내줄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고 방송에서는 내 비행 수속을 마감하겠다는 안내가 계속 흘러나왔다. 초조함의 극한을 경험한 나는 울면서 로비로 뛰쳐 나왔고, 나와 영어로 소통할만한 여자 항공사 직원을 찾았다. 여직원은 매우 의아한 눈빛으로 ‘그냥 이 경찰은 당신이 언제 스페인에 입국했는지 알고 싶어했을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그 경찰의 태도를 180도 돌변했다. 나는 그제서야 그들 눈에 비친 나의 무례한 태도 때문에 내가 이들에게 농락당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여행지에서 만나는 인연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편이지만 낯선 곳에서 일탈을 즐기겠다고 행동해 본 적은 없다. 그리고 여자 혼자의 여행에 대한 어느 정도의 경각심은 늘 유지했다. 하지만 이 역시 시소 싸움이었다. 여행에서 나는 노바디가 될 것이냐, 섬바디가 될 것이냐. 현지인이든 혹은 같은 여행객이든 수많은 낯선 이들을 만났고 그 들 중에는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고 위험한 사람들도 있을 법이었다. 그 중에서 누구를 신뢰할 것이냐. 그런데도 이런 긴장감은 오히려 나에게 즐거운 것이었다. 그라나다 공항에서의 사건 때만 해도, 나는 스페인 사람들은 인종차별적이고, 거만하기 이를 데가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 기억은 내 인생의 매우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바로 그런 위기의 순간들이 나 자신을 깨닫게 해 주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우리의 정신은 무의식화 되는 경향이 있다. 일상은 편안하다. 그리고, 반복된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행동의 이유를 찾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지가 주는 낯선 환경에서 내 정신이 촉수가 곤두서고, 무의식을 탈피하게 되는 과정을 사랑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상상을 통한 집단적 신념으로 번성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비추어 볼 때, 내가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는 매우 원시적인 형태가 아닐까 싶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살았던 호모 사피엔스 인종이 험난한 길을 건너 다른 대륙으로 이주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이 생존을 위한 목적인지 그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말이다. 나는 감히, 초기 인류의 그 장대하고 험난했던 여정이 인간 정신의 고유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오늘도 일상과 여행의 시소 싸움을 한다. 그 시소 싸움이 갖는 긴장감을 즐긴다. 여행이냐 일상이냐, 그래서 나의 인생 모토는 예전 어느 책에서 읽었던 이것이다. 여행은 일상처럼, 일상은 여행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