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대 사회

(책리뷰-1984 by 조지오웰)

by 써머

1984는 조지오웰이 1949년 발표한 작품으로 그가 살았던 시기의 35년 후의 가상 세계를 그렸다. 세계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그 결과로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 세 국가만이 남는다. 오세아니아에서 외부당원으로 살아가는 윈스턴이 이야기의 핵심인물이다.

윈스턴이 일하는 곳은 진리성이라는 곳이다. 이 곳은 과거와 기록을 담당하는 부처이다. 당의 슬로건 중 하나는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이다. 진리성은 당의 지시에 의해 과거를 날조한다.

진리성은 다른 차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므로, 사람들의 언어를 통제하여 사고 또한 통제하려 한다. 구어의 대부분은 사어화되고 언어 체계는 단순화한다. 사람들의 생각하는 힘을 잃어간다. 그래서, 개인의 사색 행위는 감시받아 마땅했다.

그 외에도 당이 추구하는 목표는 매우 충격적이다. ‘전쟁이 평화요, 자유는 구속, 무지는 힘’. 이 사회를 살아가는 다수의 인물들은 이러한 논리에 순응하지만, 주인공 윈스턴은 외부당원임에도 이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갖고 있다. 기록하는 일, 일기를 쓰는 일, 과거에 대한 기억을 찾는 일, 텔레스크린의 감시를 벗어나는 일 등, 사회가 금지하는 것들을 소망하며 살아간다. 윈스턴은 이 사회에서 위험한 자이다. 윈스턴은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까봐 불안해하지만, 동시에 자신과 생각을 함께 하는 동지와 만나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줄리아가 다가온 순간 바로 사랑에 빠져버렸던 건 그러한 이유였다. 그녀와 함께하기 시작하면서 윈스턴은 점점 용기를 갖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살아남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1984>에서는 개인의 존재 의미는 사라졌고, 오직 사회구성원으로서 필요한 인간만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사회는 왜 인간을 필요로 하는가? 조지 오웰은 권력이라는 화두를 꺼낸다. 권력이란 타인에게 힘을 행사하는 것이고 그래서 피지배층인 군중이 필요한 것이다. 빅브라더랑 절대 권력의 상징이요, 당은 권력을 행사하는 실체이다. 개인의 존재란 사회 속에서 얼마나 작아지는가. 부조리한 세계에서 인간으로서 살아남고자 했던 윈스턴은 끝내 인간성을 지키지도 살아남지도 못했다. 그가 말하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이며, 왜 지키지 못하였는가?

당에서 금기시했던 행위들에 주목해 보며, 그 해답을 찾아본다. 첫째, 기록하는 일이다. 일기를 쓰는 행위는 금기시되고, 윈스턴은 심지어 자신의 나이마저 헷갈려하고,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추억을 회상하는데 심각한 장애를 느낀다. 상실한 인간의 첫 번째 면모는 개인의 추억일까.

둘째, 감정의 표현이다. 표정을 드러내는 것이 존재가 제거될 수 있는 위험한 행위라는 것. 더불어 성교의 행위, 사랑이라는 감정도 철저히 배제된다. 감정이란 것은 가장 인간다움의 또 한 이름이리라.

사상통제가 일반 노동자 계층에게는 열외라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한다는 뜻이 아닌가. 어찌보면, 1984의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계층은 권력의 핵심에 가까운 내부당원이나, 권력 밖의 프롤이 아닌 외부당원 계층일 것이다. 특히, 나이가 어려서 과거에 대한 추억을 거의 갖고 있지 않은 줄리아보다 사라져가는 인간성을 몸소 겪은 윈스턴이 가장 괴로워하는 인물로 설정된 점은 매우 타당하다.

윈스턴의 비극적인 결말은 불가피했고 그조차도 알고 있었다. 1984는 그와 같은 인간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였다. 텔레스크린만이 아니다. 사상경찰의 감시는 비밀리에 진행되기에 더욱 무섭다. 인간의 감정은 부정되고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혼이란 자식을 생산하기 위한 절차에 불과하고, 자식은 부모를 사상범으로 고발한다. 윈스턴이 오브라이언을 친숙하게 느끼고 자신의 동지라고 믿었던 것은, 예전에 자신을 고문하던 목소리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그 목소리를 온전히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7년간이나 자신을 감시해 온 오브라이언을 아군으로 착각하고는 먼저 속내를 털어놓는다. 체포되었고 끔찍한 고문을 견디지만 결국에는 오브라이언에게 굴복한다.

사랑을 배신하는 인간이란 그리 놀랍지 않았다. 고통에 무력해지는 것이 인간 본성이니까. 하지만, 빅브라더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마지막 장면은 의문이었다. 윈스턴이 개조되는 모습은 쉽게 이해되지 않아 상당한 시간을 고민했다. 그가 자신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때가 언제인지 줄곧 생각했다. 줄리아를 배신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을까? 자신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때가……. 아니면, 그 참을 수 없는 무엇이 인간의 정신을 바꿔놓았던 걸까? 이 모든 것들이 답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확신을 얻은 글귀는 바로 이것이었다.

“윈스턴 자네가 아직도 인간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이 세상 마지막 인간이겠지.”

그가 자신의 추악한 몰골을 목도했을 때다. 갖은 고문을 견뎌냈고 줄리아를 배신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그의 육체와 정신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인간으로서의 품위가 없었다. 그때 자신이 인간답지 못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내가 가장 주의를 기울였던 점은 ‘사회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아질 수 있느냐’ 였다. 이 소설은 스탈린 시절의 러시아 전체주의를 풍자한 이야기라고 한다. 빅브라더와 당은 공산당을, 골드스타인은 스탈린을 비판하다고 망명했고 결국은 암살당하 트론츠키라는 인물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상황에서는 말 그대로 허구로서 상상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지만, 그렇기에 이 소설이 갖는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수십년간 되뇌어 오던 글귀를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 정신적 무위와 둔감에 대해 경계할 것. 나란 존재의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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