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면서 동시에 흐르는 시간처럼

(책 리뷰- 저지대 by 줌파 라히리)

by 써머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단 삼일만에 읽었다. 내가 이 책에 몰입한 이유를 고민했다. 첫째는 사건의 흐름이 이미지처럼 그려졌다는 점이고 둘째는 인물의 감정에 이입했다는 점이다. 인도의 지명이나 인물의 이름들은 귀에 익지 않아서 배경을 설명하는 1장을 읽을 때까지는 속도가 나지 않았지만 곧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수바시와 우다얀 두 형제의 이야기가 톨리건지라는 인도의 저지대 마을에서 시작된다. 형제는 상반된 성격이지만 끈끈한 형제애를 자랑한다. 그들의 어린 시절은 지극히 즐거웠고,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지극히 다른 삶으로 이어진다. 그들이 대학생인 1960년대 후반 인도는 정치적인 혼란을 경험했다. 동생 우다얀은 반정부 군사 조직에 가담하여 사회개혁을 실천하지만, 형 수바시는 안정된 삶을 꿈꾸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스물일곱의 우다얀은 죽고 사라지고, 남은 가족들은 삶을 견뎌낸다.


삶을 견뎌낸다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이미지다. 죽음 직전의 순간 우다얀은 경찰을 피해 연못 물속에 숨어 들어갔다. 그는 살기 위해 숨을 참아야 했다. 그러나, 호흡을 멈추는 행위는 죽음과 맞닿아 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고 한 몸이다.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으로 시작된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등장인물들을 나는 애처롭게 지켜보았다.


수바시는 동생 우다얀의 삶을 대체했다. 형제는 한 인물처럼 보였다. 15개월 터울로 태어났고, 한 몸인양 모든 생활과 생각을 공유하며 자랐다. 둘은 목소리도 똑같아서 남들에게 혼동을 일으키기도 했보면 한 인물의 분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둘이 성장하면서 사상이 달라졌지만 여차하면 끊어질 수도 있는 한계점까지 뻗어 있지만 동시에 여간해서는 끊어지지 않으려 하는관계였다. 우다얀은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고 죽었지만 수바시는 가우리의 남편, 딸 벨라의 아버지로서 훌륭한 역할을 해 내었다.


우다얀의 어머니인 비졸리의 삶은 매우 비통하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보았다. 이후 그녀의 삶은 참을 수 없는 것이 되어 마치 반송장처럼 산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절한 마음은 누구에게나 공감을 일으킨다. 그녀의 슬픔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벨라의 운명 역시 측은지심이 들었다. 나는 절대로 엄마를 사랑할 수 없어.라는 말은 그녀의 본능적인 깨달음일 것이다. 우다얀은 자신이 끔찍한 일을 저질렀기에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고, 가우리 역시 임신을 기대하지 않았다. 시댁 식구에게는 애물단지처럼 남겨진 미망인에, 죽은 남편의 형과 결혼한 가우리는 어머니로서 사랑을 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자신 또한 끔찍한 살인의 공범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녀의 심장은 더욱 차가워졌을 것이다.


우다얀이 죽고 가우리는 내내 죽음을 의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졌다. 처음에는 그녀 뱃속에 있는 아이가 그녀의 몸에서 산소를 빨아들이며 그녀는 살아있게 했고, 이후 현재라는 시간이 그녀에게 나타났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흥미롭게 읽은 것이 바로 시간에 대한 개념이다. 영어에서는 과거와 미래의시제를 나타내는 단어가 정해져 있지만 인도에서는 하나의 단어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나타내기도 한다고 한다. 수바시가 지은 딸 벨라라는 이름은 인도어로, 시간의 한 단위를 뜻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 벨라는 과거의 모든 시간을 어제 라는 말로 한정하고, 그저께를 어제 다음날로 말하기도 한다. 벨라에게 시간의 흐름이 반대방향으로 흘렀다.는 표현은 상징으로 보여진다. 가우리는 종종 우다얀과 자신이 젊은 모습으로 사랑을 나누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가우리에게 역시 시간은 가만히 있으면서 동시에 흐른’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의 결말에서 가우리는 우다얀이 몸담던 조직의 리더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인도를 찾아간다. 1971년 10월, 우다얀이 죽은 이후로는 처음이다. 그녀는 드디어 거기서 우다얀과 작별을 고한 것처럼 보인다. 아마 미국으로 돌아온 이후 가우리는 제대로 현재를 살아나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과거는 불행했고 극복해야 할 것으로 비춰졌지만 이야기의 마지막 장은 뒤집힌 동전의 뒷면을 보여준다. 수바시는 새로운 사랑을 찾고, 벨라 또한 안정된 가족을 꾸린다. 그녀는 어쩌면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 가우리를 용서하게 될 지도 모른다. 가우리는 생명을 버릴 뻔 했지만 다시 삶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우다얀이 죽는 순간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보여준다. 그는 인도 공산당의 미래를 꿈꾸지도, 남겨진 가족들의 불행한 삶을 걱정하지도, 지난 삶을 돌아보며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가우리가 그를 찾아온 날 처음으로 그녀의 손을 잡은, 자신의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떠올린다. 어쩌면 그는 죽는 순간 작은 미소를 지었는지 모른다. 삶은 역시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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