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결국, 희망

(책 리뷰-사피엔스)

by 써머

내가 읽은 중 가장 두꺼운 책인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가 정리한 인류사의 방대한 지식과 주요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낸 혜안이 놀랍기만 하다. 오백 장이 넘는 이야기를 읽는 동안 몰입하여 단숨에 책장을 넘길 때도 같은 장을 몇 번이나 반복할 때도 있었지만 책을 덮은 마지막 순간 내 마음에 회색 무지개가 떠올랐다. 그러나 … 결국 희망에 대한 이야기란 소감 때문이다.

이 책은 현생 인류인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등장하고 오늘날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된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인지혁명, 농업혁명, 인류의 통합, 과학혁명 네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인지혁명은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는데, 학교에서 배운 고대사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1장의 제목은 호모 사피엔스,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이다. 처음 지구상에 등장했을 때, 사피엔스는 먹이 사슬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신체적으로 열악한 종이었다. 약 7만 년 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인지 체계에 변화가 왔고 사피엔스 고유의 문화가 생겨났다. 즉, 상상의 질서를 가진 것이다. 집단은 함께 무언가를 믿게 되었고 거대 조직의 협동력을 가졌다. 사피엔스는 우세 집단이 되었고 크게 번성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사피엔스의 활약이 지구상의 다른 종의 멸망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이다. 네안데르탈인등의 인간 종들과 수많은 거대 포식자들이 같은 시기에 멸종한다. 사피엔스는 생물학적 열등함을 뛰어난 인지 체계로 대체하였고, 유발 하라리는 이를 두고 사피엔스가 진화의 법칙을 초월한 인지혁명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얼마 전 읽은 최재천님의 <호모 심비우스>라는 책을 떠올렸다. 마지막 장에 나온 두 가족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먼 옛날 동굴에 두 가족이 살았다. 한 가족은 대단히 까다롭고 엄격한 어르신을 모시고 살고 다른 가족은 대체로 마음이 편안한 사람들이었다. 까다로운 어르신은 동굴을 깨끗하게 하도록 했고, 용변을 늘 동굴 밖에서 보고 청소도 매일같이 하며 동굴을 깨끗하게 유지했다. 반면에 다른 동굴의 가족은 그 안에서 마음대로 용변도 보고 편안하게 살았다. 시간이 지나 동굴이 더러워지고 악취와 병균으로 살기 어려워지면 깨끗한 새 동굴로 이사를 갔다. 최재천 박사의 질문은 해학적이면서도 경종을 울린다. ‘두 가족 중, 우리의 조상은 어느 쪽일까?’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며 인간만의 뛰어난 문화를 발달시켜왔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사실인 동시에 착각이었다. <사피엔스>는 인간 본성에 대한 솔직한 고발이며 진지한 성찰을 요구한다. 우리는 냉정함을 갖고 인간 본성의 잔인함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태초에 형제 살해범이라는 오명이 있다. 아프리카 대륙 한구석 변방의 존재였던 사피엔스가 이동할 때마다 그 지역의 토착 인류가 속속 멸종했다. 농경 이후 가축을 기르며 시작된 야만적인 행위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고 갈수록 잔인함을 더해간다. 인간의 잔인한 본성은 동족에게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하라리의 용어를 빌자면, ‘역사에 정의는 없다’. 성차별의 역사는 수천 이어왔고, 출생에 따라 신분을 분류하기도 한다. 돈, 학력, 외모 등등 사회에 따라 정도의 차이나 기준이 다를 뿐 어느 사회나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근대 유럽과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보면 인간의 이기성과 잔인함은 떠올리기 싫을 정도다. 제2차 세계대전 핵무기의 사용은 스스로의 잔인성에 대해 무관심했던 인류가 처음으로 경각심을 갖게 된 계기로 보였다. 인류는 역사의 진로를 변화시킬 능력뿐 아니라 역사를 끝장낼 능력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인간이 써 내려갈 역사는 위험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현재 인간이 쓰고 있는 역사는 가히 매해가 혁명적이다. 신체의 일부를 사이보그로 대체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유전자 조작과 복제, 복원 기술이 쏟아져 나온다. 하라리의 말대로 현대 이데올로기는 인간이 신이 되고자 하는데 정신을 쏟지, 정작 중요한 질문인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고 충고한다. 그러면서도 하라리가 직접 행복에 대한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고민은 우리의 몫으로 두고 질문을 던질 뿐이다. 마치, ‘우리는 모르고 나도 모른다’라는 인간이 이룬 과학혁명의 무지에 대한 신념을 실천하는 듯한 인상이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다양한 견해 중 전통철학과 불교의 입장은 눈여겨 볼만하다.

행복을 얻는 비결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 자신이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에 대한 탐구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파악하는 데서 출발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는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훌륭한 이유 중 하나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인간의 본성이 과연 잔인하고 이기적일 따름이라면? 두 가족 이야기에 나오는 두 번째 가족에게 더 이상 이사 갈 동굴이 없는 날이 온다면? 지구를 스스로 파괴해서 살 터전이 없어지든, 스스로의 기술로 감정과 욕망을 변화시킨 존재가 될지 어두운 결말이 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 능력의 성장은 매일 경신중이고, 미래를 가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대신에 다만 ‘From one Sapiens to another’ 라는 저자 유발 하라리의 손글씨를 가만히 들여다 보며 인간은 믿음으로 사는 존재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농업혁명 이후 인간이 살아온 모습을 떠올린다. 종교, 정치, 이데올로기 등 인간이 기대어 온 것은 집단 신념이니까.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한 사피엔스의 생각을 공유하는 수 많은 사피엔스들이 그려진다.

하지만,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인간의 자랑스럽지 못한 업적들을 적나라게 고발하는데 일관됐고 마지막까지 인간에 대한 그의 시선은 비판적이기만 하다.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고 친구인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면서는 아무에게도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등의 중요한 고민들은 하지 않는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후기의 마지막 문장은 냉소적이지만 나는 그에게서 희망을 꿈꾸는 냉정한 현실주의자의 모습을 본다. 하라리는 정작 답을 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런 질문들에 대해 고민하는 자체로 인간은 조금 더 행복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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