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

by 써머

할머니가 유일하게 좋았던 건 세뱃돈을 잘 챙겨주셨기 때문이다.

처음엔 삼천원, 언제부터는 오천원. 액수가 가장 적었기에 잘 기억이 난다. 세종대왕 무리 속에서 이황이나 이이가 섞여 있으니 항상 눈에 띄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니 세뱃돈의 기쁨이 사라졌다. 어른들에게 세배는 했지만 돌아오는 건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만큼은 늘 세뱃돈을 주셨다.


할머니에게는 이제 손주만이 아니라 증손자, 증손녀까지 생겼다.

리고 나는 더이상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지 않았다. 내내 부엌에 있었다. 제사상을 차리고 손님 접대하기, 설거지하는 일. 어른들 사이에서 어른 역할을 하게 되자 설날은 그냥 재미없는 날이 되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용돈을 주셨다. 얼마였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손주든, 증손자들이든, 몇 명으로 늘어났든 모두 같은 양의 돈을 주셨다는 것. 할머니한테 나는 여전히 어린 아이였다.


그리고 이젠 정말 어른이구나 싶은 때가 되었다.

할머니에게 더이상 돈을 안 받겠다고 말씀드렸지만 할머니의 고집은 대단했다. 거절하려는 나의 노력은 항상 무참히 패배했다. 나는 마음속으로만 내가 용돈을 드려야 하는데 라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장례식 마지막 날, 큰아들인 아버지가 모두를 불러 세웠다. 사촌 동생은 물론이고 아버지의 형제, 남매들까지. 수고했다며 오만원 한 장씩을 나눠 주셨다. 다들 의외의 돈이라고 생각한 듯 겸연쩍어 보였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주는 용돈이라며 활짝 웃었다.


나는 혼자 눈물을 삼켰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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