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때는 바로 오래전 담아 두었던 옷과 재회하는 순간이다. 스산한 날씨에 처음으로 긴 재킷을 입은 날. 세제 향이 아직 남아있는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집을 나서는 장면 등.
오늘처럼 남색 줄무늬 바지를 꺼내 입은 날은 아침부터 마음이 설렌다. 녀석의 적당한 두께와 무게감을 느끼며 나는 경쾌한 발걸음을 행한다. 다리를 내딛을 때마다 허벅지의 맨살이 보드라운 안감과 만날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남색 줄무늬 바지는 나에게 허리가 꽤 크지만 벨트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종종 허리춤을 곧추세우며 매무새를 고쳐야 한다. 아가씨라기보단 아저씨 바지군! 나는 혼자서 키득거리며 뱃살을 토닥거린다. 가을을 대하는 나만의 의식이다. 이 순간은 찰나로 스칠 테고 나는 이 장면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가을은 그 짧음이 아쉽다. 가을이 왔나 싶은데 여름이 발목을 잡고, 이제 가을인가 하면 벌써 겨울로 흘러가 버린다. 그래서 가을의 이름이 가을인가보다.
아쉬워서 천천히 가라고
곧 갈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