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마음 처럼 안되는게 골프인데
나는 필 미켈슨의 앞에 설 수 있을까
몇 년도였을까. 아마도 2003년 즈음일텐데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의 일이다.
베어링포인트라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할 때인데, 당시 베어링포인트에서는 각국에서 몇 명씩의 팀장 (PM, PM이란 컨설팅 프로젝트에서 팀장직을 수행하는 Project Manager 또는 Engagement Manager를 뜻한다)을 하와이로 초대해 수백명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행사를 열었고, 이에 참가 하게 되었다.
처음 가보는 하와이, 설레기도 하고, 어떤 행사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Hawaiian Hilton Hotel 대강당, 하와이의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살 그러나 호텔의 실내 조명 아래에 갇힌 300~400명의 전세계 팀장들을 대상으로 한 약 5일 간의 행사/교육이 시작 되었다.
교육 중 쉬는 시간 직전에 동영상을 하나 틀어주는데, 필 미켈슨 (미국 골프 선수)과 베어링포인트 글로벌 대표이사 (회장이라 칭한다)가 출연한다.
당시 베어링포인트는 필 미켈슨의 모자에 오랜 기간 동안 기업 브랜드를 노출 시키고 연간 3백만 달러를 필 미켈슨에 지급 한 것으로 알고 있다. 10년 넘게 오랜 기간 동안 스폰을 했던 것 같다. 베어링포인트의 전신이 KPMG Consulting인데, 어떤 분들은 옛날의 필 미켈슨의 모습을 보시면 KPMG라고 적힌 모자를 보신 분도 계실 것이다. 모자에 스폰비가 연 40억이라니, 옷과 골프백 까지 하면 얼마야? 나도 골프 선수 할 걸.
몇 가지 영상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의 짧은 기업 홍보 동영상의 내용은 이러했다.
푸른 잔디 위에 미켈슨과 회장이 있다. 회장이 서 있고, 미켈슨은 그 앞 1~1.5m 정도에 공을 놓는다. 그리고 각이 큰 웻지 채를 잡는다. 아마도 60도 웻지일 것 같다. (골프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60도 웻지란, 거리가 많이 나가는 채가 아니라 필요한 경우에 공을 아주 높게 (각이 크게, 60도 이상) 띄우는 채이다). 1m 앞에서 미켈슨은 회장을 정확히 겨냥 해 공을 날리고, 공은 회장을 맞추지 않고 하늘 높이 뜬다는 설정이다.
필 미켈슨이 영상에서 묻는다. “Do you trust me?”. 회장이 짧게 답한다 “Yes”.
잠시 후 미켈슨은 풀스윙을 하고 회장을 향해 공을 타격 한다. 두 사람의 거리는 손을 내밀면 악수를 할 수 있는 거리이다. 명치나 얼굴에 공이 박힐 경우 회장은 사망할 수 있다. 목숨을 건 촬영이다. 합성이 아니라 실제 촬영이라고 한다. 공이 솟구쳐 오른다. 이때부터 슬로우 모션이다. 공이 타격 되는 순간 회장은 눈을 질끈 감는다. 공은 하체와 상체를 지나 턱과 코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이때 회장의 감은 눈을 목격하고 많은 팀장들이 깔깔 대고 웃는다 he’s scared!-쫄았어!) 공은 무사히 파란 하늘에 박힌다. BearingPoint라고 쓴 모자를 쓴 필 미켈슨의 웃는 얼굴이 클로즈업 되며 영상은 끝난다.
20년전 그때는 설정이 재미 있었고, 연간 3백만불을 받는 필 미켈슨이 부러웠고, 겁이 나 눈을 감은 회장이 재미있었다. 지금도 생각이 나는 영상인데, 지금의 생각은 조금 달라졌다.
나는 내 일을 함에 있어서 이토록 자신 있게 할 수 있을 까, 그리고 난 누군가를 이토록 (목숨을 걸 만큼) 믿어 본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