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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키옥 Nov 03. 2020

호언장담

프롤로그

“난 다른 건 다 용서할 수 있어도, 여자 문제는 절대 용서 못 해!”


내가 호언장담 하던 말이었다. 입버릇처럼 입에 달고 살던 이 말은 이제는 입 밖으로 절대 내지 않는 아니 내지 못하는 말이 되었다.


그를 만나기 전 혼자일 때부터, 그와의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서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말하며 고집한 나의 사상과도 같은 말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도 잘 안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람에게 당할 수 있는 배신, 실망과 같은 일 중에 가장 견딜 수 없는 게 무얼까 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다 내린 결론이었다. 남편이 도박이나 주식으로 전 재산을 날려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는다 하더라도 난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여성문제만큼은 절대 용서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생각만 해도 진저리 처질만큼 싫었다.


스무 살 무더운 여름이 막 시작하려 할 즈음, 난 지금의 남편을 만나 내 생애 첫 연애를 시작했다. 그와의 연애를 하면서부터 이성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은 더욱더 확고해졌다. 이성 간에 있어서는 다소 보수적인 나와는 달리 그는 자유로웠다. 내 앞에서 다른 여자와 아무렇지도 않게 연락을 주고받는다거나, 여사친과 단둘이 밥을 먹는다거나, 여자 사람 친구와 스킨십(안녕 인사하며 이마를 툭 때리는 등)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내가 누누이 말했지. 난 다른 건 다 용서할 수 있어도 여자 문제는 절대 용서 못해! 안 해! 명심해 둬.”


그럴 때마다 난 어김없이 그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처음엔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 대답하던 그가 오랜 시간이 흐르니 알았어, 그만 해, 넌 지겹지도 않니에서 어느 새인가부터는


“만약 안 들키면? 네가 평생 모르게 할 수 있다면? 그럼 괜찮아?”


순간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매를 부르는 말이었다. 그리고 난 그 말이 늘 마음에 걸리곤 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의 대답이 바뀐 순간에 그는 나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걸. 그가 외도를 한 시기에 내게 했던 말, 행동 중 나를 서운하게 한 말과 행동들은 잊힌 게 아니었다. 그가 진실을 말하던 날 내 심장에 박힌 그 칼날들은 이번에는 심장을 헤집어대기 시작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여자 문제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용서 못한다고 한 나에게, 그는 다른 것도 아닌 딱 그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평소의 나였다면 당장을 이혼을 했어야 했지만(아니 그때에는 그와의 이혼을 결심하고 변호사를 만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이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가 믿을 진 모르겠지만, 난 그 위기를 극복하고 꾀나 잘 살아가고 있다.


배우자의 외도를 겪으면서 난 세상에는 나와 같은 아내(남편)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았다. 그때에 나는 매일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일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무기력한 날들을 보냈다. 나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자신을 배신한 배우자에 대한 극한 혐오와 분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사람들, 슬픔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의 글을 보며 공감하고 같이 분노하고 같이 슬퍼하는 일이 유일한 하루 일과였다. 이런 말로도 못할 끔찍한 고통을 겪은 이가 나 하나뿐이 아니란 사실에 위로를 받으면서도 또 분노했다.


게 중에는 간혹 이런 글들이 올라왔다.


‘정말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닌가요?’, ‘이 위기를 잘 이겨내고 다시 예전처럼 사는 부부는 없나요?’


이런 글 댓글에는 대부분 ‘저는 아이들도 어리고 그래서 그냥 ATM기로 여기고 살아요. 아이들 다 크고 필요 없어지면 버릴 거예요.’, ‘쓰레기가 어디 가나요? 재활용도 아닌 쓰레기 중에 쓰레기예요.’, ‘님, 앞으론 희생하지 말고 님 하고 싶은 거 다하면서 살아요.’ 등의 댓글만 달렸다. 정말 가망이 없는 걸까. 가뜩이나 힘든 나를 더욱더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댓글 사이에서도 ‘정말 부부 관계 다시 회복되고 잘 사는 분 없으신가요? 글 좀 남겨주셨으면 좋겠네요.’ 란 간절한 마음도 보였다. 그때 누군가가 이런 댓글을 달았던 게 기억난다. ‘만약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여기에 오겠어요? 부부 관계가 개선되었다면 다신 이런 카페에 올 일이 없겠죠. 하지만, 한 번은 다시 오게 된다면 글 하나 남겨주었으면 좋겠네요.’ 사실 나도 이 사람들처럼 여기서 같이 분노하고 슬퍼하기보단, 이 안에서도 희망적인 글을 찾았던 것 같다. 당장 이혼하자고 부르짖고 있으면서도 실은 그와 이혼하기는 싫었던 것이다.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배우자의 외도를 겪으면 이혼 만이 답인지. 경제적인 문제, 아이들 문제 때문에 이혼을 하지 않더라도 불행할 수밖에 없는지. 잘 이혼하는 법, 혼자 사는 법, 혼자 아이 키우는 법에 대한 책, 심리학자가 부부상담을 하면서 부부심리를 적은 책들은 많았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잘 사는 법에 대한 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 같은 평범한 주부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현실적 조언이 필요했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도 읽고 싶어요.)


이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이후에 나는 다짐 하나를 했다. 나중에 나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글을 쓰겠다고. 지금이 바로 그때가 된 것이다.


배우자의 외도를 겪고 이혼을 했다고 해서 그게 틀린 선택이란 건 아니다. 사람마다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혼이 정말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남편이란 작자는 자신의 외도를 죄 없는 아내 탓으로 돌리며 끊임없이 외도를 반복하고 반성에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면 그런 부부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남편이 그 일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변화하길 바라고 자신 또한 이혼을 바라지 않고 용서를 바랄 때 그런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난 그 한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싶은 것이다.


이혼을 선택한 그대는 홀로서기를 멋지게 해낼 것이며, 나처럼 용서와 회복을 선택한 그대는 현명한 부부 관계를 위하여 노력하여 함께하는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혼이든 아니든 나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면, 그 끝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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