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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키옥 Nov 03. 2020

1. 판도라의 상자

4년 전, 이른 여름휴가를 앞둔 오월의 어느 날이었다. 여자라면 흔히들 겪는 질염 증상이었다. 둘째를 출산 한 지 육 개월도 채 안된 시기였는데, 그 증상은 휴가로 들떠 있어야 할 나를 괴롭혔다.


‘가서 물놀이도 해야 하고 하는데, 후아. 어쩌지?’


급한 마음에 동네 병원으로 달려갔다. 증상을 얘기하고 치료를 받았다. 균에 대한 검사는 하루에서 이틀 정도 걸릴 수 있다고 하셨다. 여자들이 겪는 흔한 질병 중에 하나였기에 난 대수롭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도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내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최근 휴가 준비로 스트레스가 많아 그럴 수 있다고 하셨기에 더욱더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저 사흘 후면 시작될 휴가까지 이 증상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트렁크에 옷가지와 둘째 아이 분유, 기저귀 등 이것저것을 챙기는 중에 한 통에 전화가 걸려왔다. 얼마 전 내가 갔던 병원이었다. 병원에서는 검사 결과를 들으러 한번 내원해 달라는 것이었다.


“네? 지금요? 그냥 전화로 들으면 안 될까요?”


“아, 그게 저... 오늘이 안 되시면 그럼 내일이라도...”


“아뇨, 내일은 비행기를 타야 해서요.”


“비행기요? 아, 어디 멀리 가시는 거예요?”


“네. 괌으로 휴가를 가거든요.”


“아... 그럼 언제쯤 돌아오시나요?”


“음... 일주일 후요.”


“일주일... 그럼 그때까지 처방해드린 약 잘 드시고요, 휴가 다녀오셔서 꼭 내원 부탁드려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통화를 하면서 머뭇거리는 듯한 간호사 말투에 이상한 기분은 들었지만, 치료받은 후 죽을 것 같던 간지럼증도 많이 완화되었고 아직 4일 치의 약도 더 남았기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혹시 자궁에 다른 문제가 생긴 거라 할 지라도 이렇게 내 휴가를 망칠 수는 없었다. 둘째 아이 임신 후,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기에 그때의 난 어떻게든 다음날 비행기를 꼭 타야 했다. 그것도 아주 기분 좋은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난 즐거운 휴가를 마치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엔 증상이 많이 호전되는 듯해 보였으나, 집에 돌아올 즈음엔 다시 처음 그 증상처럼 간지럼증이 시작되었다.


‘아차, 병원에서 오랬지. 내일 가야겠다.’


하지만 휴가 후, 회사에서 밀린 업무를 하느라 난 병원을 바로 가지 않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렇게 지내길 며칠 후 병원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내원해달란 말이었다.


“저... 무슨 심각한 병에 걸렸나요?”


“그건 저... 직접 오셔서 의사 선생님과 말씀 나누셔야 할 것 같아요.”


맙소사. 젊은 나이에 설마 암이라도 걸린 걸까, 그때부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외출증을 끊고 한걸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도착하기 까지, 아니 진료실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 나는 자궁암이나 자궁경부암이나, 뭐 그런 큰 질병이 걸린 건 아닐까 오로지 그런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 입으로 들은 이야기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충격적인 일이었다.


“뭐... 뭐라고요? 성병이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스무 살 지금에 남편을 만나 첫사랑과 결혼한 나에게 지금 이 의사가 뭐라고 말하는 건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니요. 뭔가 잘못 아신 것 같아요. 제가 성병일 리가 없어요.”


“혹시 남편 분 외에 관계를 가진 분이 계실까요?”


“아뇨! 그런 일은 절대 없어요!”


“그렇담 남편분과의 마지막 관계는 언제셨을까요?”


“그게... 제가 둘째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서요. 두 달? 아니, 한 달 전쯤? 암튼 두어 번이 다예요. 그동안 임신 중이라 전혀 관계를 갖지 않았거든요.”


“아, 네에.”


의사는 한참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우선 당분간 남편과의 관계는 금지하고 남편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부부가 같이 치료를 받아야 나을 수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 나와 회사에 돌아가는 길 내내 울었다. 쉴 새 없이 눈물만 주르륵 흘러내렸다. 의사 선생님은 이 질병은 오롯이 성관계로만 전염된다고 하였다. 내 면역력이 약해져서이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자연적으로 생길 수 있는 그런 질병이 아니었다.


‘내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이 병은.... 남편이 내게...’


차라리 암이 낫겠다 싶었다. 내가 성병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싶었다. 검체가 다른 사람과 바뀌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병원에 가기는 꺼려졌다. 아까와 같은 수모를 또 당하긴 싫었기에...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라니 나를 뭘로 보고 그런 질문을....... 회사에 돌아와 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었다. 신랑에게 퇴근 후 밖에서 단 둘이 보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집에선 나의 어린 두 딸과 친정엄마가 계셨기에 아무래도 밖이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먼저 상의해보고 남편 쪽 문제가 아니라면, 아니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남편과 이야기를 해보고 다른 병원을 가든지 선택하려 했다. 퇴근 후 남편을 기다리는 데 불현듯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둘째를 임신하기 전, 남편은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갔다. 회사와 공부를 병행하면서 나날이 바쁜 날들을 보냈다. 대학원에 들어가서 룸살롱 같은 데서 신입생 환영회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울고불고 난리를 친 적이 있었다. 남편은 자신은 술만 마시기만 했지 아무 일도 없었다고 우는 나를 달래주었고, 다시는 그런 곳엔 가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절대 아닐 거라는 내 확신은 그럴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으로 변하였다.


“여보, 미안해. 내가 정말 잘못했어.”


내가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다. 남편은 거의 울상인 표정을 지으며 불안해했다. 하지만, 자신은 성병 같은 증상은 전혀 없으며 그건 아닐 거라고 했다. 내일 당장에라도 병원에 가겠다고 했다. 난 거의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사람들이 있건 없건 상관없었다. 그때의 내 감정은 그 어떠한 말로도 표현하지 못할 고통과 분노, 슬픔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다른 가족들이 모두 잠든 새벽까지도 난 잠 한숨 잘 수가 없었다.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그의 모습에 더욱더 화가 났다. 자는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힘껏 내리쳤다.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자다 놀라 남편은 흥분한 날 진정시키려 미쳐 날뛰는 날 꼭 껴안았다. 그에게 화가 났으면서도 그가 주는 따스한 체온은 그런 나를 조금이나마 진정시켰다. 그 사실이 나를 더 미치게 했다. 그를 원망하면서도 그를 간절히 원하는 이상한 마음 때문에... 그를 있는 힘껏 때리고 싶으면서도 있는 힘껏 껴안고 싶고, 그와 헤어지고 싶으면서도 헤어지기 싫은 배반적인 감정에 휩싸였다.


그 날 이후로 우린 매일 밤낮을 싸웠다. 아니 싸웠다기 보단 나의 일방적 화풀이에 가까웠고 그는 그런 내게 미안하다며 울기만 했다. 그는 내가 원하는 대로 질 나쁜 대학원 사람들과 연을 끊었다. 졸업해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던 사람들이었다. 기업 투자나 사업 아이템 등을 이야기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온다는 그 모임은 거짓이었다. 그들이 모였다 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룸살롱에 가서 여자들과 뒤엉켜 노는 것이 다였다.


둘째를 임신하고 추운 겨울에 극심한 감기에 걸려 약도 먹지 못하고 앓아누워있을 때 새벽까지 오지 않은 남편에게 나 정말 아프다며 오늘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던 그 날...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조리원에 있을 때도 그런 날 두고 추잡한 농담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그의 행동들... 지나고 보니 그 어느 것 하나 상처가 되지 않은 일이 없었다.


여자의 촉은 무섭다고 했던가. 지금까지의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두 번째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렇게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두 번이나 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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