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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키옥 Nov 04. 2020

2. 의부증(두 번째 판도라의 상자)

불길한 예감은 현실로 다가온다.


수년 전 일이 떠올랐다. 결혼 후 3년이 지났을 무렵 남편이 직장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린 첫 아이를 가졌다. 뱃속에 예쁜 공주님이 자라고 있었다. 남편은 들떠 있었다. 처음엔 아빠가 될 생각에 들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회사를 옮긴 후 그의 퇴근이 점점 늦어지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이 잦아졌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 수개월 월급이 밀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불안과 걱정하는 모습 없이 늘 신이나 보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남편의 모습은 꼭 설렘 가득한 사춘기 소년의 모습 같았다.


남편은 회사 이야기 중 유독 한 여직원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늘어놓았다. 이름이 무척 특이하였다. 성격도 특이하였다. 남편이 늘 그 여직원 이야기를 해도 나도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퇴근 후 집에서도 그 여직원과 통화하는 일이 잦아졌다. 몇 번 주의를 주었다. 왜냐하면 그 여직원은 밤 열두 시가 지난 새벽 시간에도 거리낌 없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참다못한 난 결국 화가 터졌다.


“그 여자는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임신한 아내가 있는 거 뻔히 다 알 거 아니야.”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래. 내가 늦더라도 꼭 전화 달라고 부탁했어. 여직원이 사장 비서잖아. 나에게 정보를 많이 줘.”


“회사에서 말하면 되지, 이 새벽에 전화해서 꼭 전해야 하는 정보가 뭔데? 나만 이상한 거야?”


남편을 다그치고 화를 낼 때마다 그는 아주 중요한 회사 일이라며 나를 의부증 취급을 했다. 그리고 그 여직원 편을 들었다. 나는 그런 남편이 너무도 못마땅했다. 첫 아이를 임신한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 편을 들다니... 그러다 사단이 발생했다. 어느 날인가 남편은 술에 잔뜩 취해 늦은 귀가를 했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임신으로 밤 잠을 자주 설쳤던 난 새벽에 그의 핸드폰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그 여직원이었다.


‘오빠, 자?’


‘오빠...?!’


순간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술에 취해 자는 남편을 깨워 다그쳤다. 회사에서 직급도 아닌 오빠라니. 나도 직장생활을 하는 터라 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둘 사이에 분명 무언가 있었다. 남편은 잠을 깨워 그런지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내게 화를 냈고 친하다 보니 오빠, 동생이 되었다고 했다. 회사에서 선 넘지 말고 호칭 정리 똑바로 하라며 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알았다며 그다음 날인가 그 여직원이 대리님이라고 보낸 메시지를 나에게 보여줬다.


“됐지?”


“암튼 앞으로 당신 조심해. 두고 볼 거야.”


남편은 임신한 내가 호르몬의 영향으로 예민해진 것 같다고 자기가 더 잘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 여직원에게서 늦은 밤 전화가 오지 않길 시작했고 난 또 그렇게 그 일을 잊고 지내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너무도 바쁜 생활을 이어갔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주말엔 자격증 공부로 다시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임신까지 한 터라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다. 남편은 회사 일로 늦은 퇴근이 잦았고, 주말에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이에겐 미안하지만 몸이 너무 힘들어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대충 때운 적도 많았다. 그러다 결정적 사건이 벌어졌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그날도 술에 취한 채 남편이 늦은 귀가를 했다. 같이 잠을 자고 있는데 그가 잠꼬대를 했다. 잠결에 그냥 피곤해서 잠꼬대를 하나보다 했다. 하지만 두 눈이 번쩍 떠졌다. 그가 그 여직원의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닌가.


“우리 00아...”


우리. 우리라는 말은 남에게 함부로 쓰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우리 남편, 우리 아빠, 우리 엄마, 우리 딸, 우리 남자 친구....... 그 여직원의 이름을 그렇게 다정스레 부르다니. 그날 밤 난 잠 한숨도 못 잔 채 아침을 맞았다. 나는 학교에 그는 회사에 가야 한다며 함께 집을 나섰다. 평소와 다른 나를 눈치챘는지 남편이 밤새 무슨 일이 있었냐며 물었다.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하지 못했다. 입 밖으로 내는 순간 길거리에서 울음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날은 대학교 마지막 종강일이었다. 종강파티를 막 시작할 무렵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끝나면 연락 줘. 데리러 갈게. 만나서 밖에서 저녁 먹고 같이 들어가자.’


식사가 끝나갈 무렵 난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곤 곧 시간과 만날 장소를 정했다. 사람들과의 인사를 끝마치고 무거운 마음을 들고 그를 만나기로 한 전철역에서 그를 기다렸다. 약속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그는 오지 않았다. 전화를 했다. 20분 정도 늦을 것 같다면서 힘들면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20분 정도야 안에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면 되니까 그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20분이 지났는데도 그는 오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더 늦을 것 같다고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순간 어젯밤 일에서부터 지금까지 서운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며 그에게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다.


난 그대로 전철을 타고 집이 아닌 아무 곳에나 갔다. 사람들이 보든 말든 전철 안에서 난 펑펑 울었다. 이 모든 것이 서러웠다. 이건 분명 뭔가가 잘못되었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가장 행복해야 할 이 시기에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화를 내고 울기를 반복했다. 내 뱃속에 아이에게 가장 미안했다.


‘아가야,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무슨 일 있어도 너는 꼭 지켜줄게.’


그렇게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어두컴컴해진 밤이 될 때까지 난 하염없이 걸었다. 아이 생각에 참으려 해도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핸드폰이 울렸다. 남편이었지만, 난 받지 않았다. 아마 집에 도착하여 내가 없자 전화를 한 것 같았다.


‘여보, 어디야? 내가 잘못했어. 걱정되니까 잘 있는지 연락 좀 줘.’


메시지와 전화가 수없이 반복됐다. 남편이 내게 그랬듯 난 그의 전화를 받지 않고 전원을 꺼 버렸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배터리가 없었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아주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남편이 없었다. 식탁 위엔 선물용 상자에 포장된 초록 넥타이 하나가 보였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 여직원이 준 것이다. 가위로 잘라내 버리고 싶었지만 그 당시에 나는 그럴 만큼 독하지가 않았다. 그 사이 그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를 찾으러 전철역, 버스정류장을 헤매다 온 거라 했다. 난 무미건조한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


“이 넥타이 뭐야?”


“아, 그거. 회사 부장님이 주셨어. 고생했다고...”


“핸드폰 줘 봐.”


“핸드폰? 갑자기 왜...”


“줘. 빨리...”


그는 순순히 내주었다. 그의 핸드폰을 뒤져보니 미쳐 지우지 못한 그 여직원의 메시지를 발견했다. 역시 임신한 아내를 만나기로 한 시간에 그 여직원을 만나 넥타이를 선물 받은 것이다.


“이거 뭐야. 이 여자가 부장님이야? 당신 내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임신한 날 길바닥에 세워두고.. 흐으윽.”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를 달래기는커녕 그는 내게 되려 화를 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들어가라고 했잖아! 누가 기다리래? 그럼 고맙다고 넥타이 선물 해준 사람을 그냥 돌려보내? 밥이라도 사줘야지.”


“우리 이혼해. 당장!”


더는 말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난 늘 그에게 당부해왔다. 여자 문제만큼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나는 트렁크를 꺼내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제야 남편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그런 나를 말렸다. 짐을 쌀 수 없게 되자 난 지갑과 핸드폰만 들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180센티가 넘는 거구의 남성 힘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그에게 붙잡히다시피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흥분한 내게 무조건 잘못했다며 싹싹 빌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며 넥타이도 버리겠다고 했다. 내가 신경 쓸 조차 없는 그런 존재라고 했다. 나의 발끝만큼도 따라올 수 없는 그 여자랑 자신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만나냐는 둥 절대 그런 일이 없다며 뱃속에 아이를 걸고 맹세하겠다고 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로 남편은 정말 다시 그 여직원의 일로 나를 신경 쓰이게 하는 일이 더는 없었다. 그렇게 첫 아이를 낳고 그 일은 잊히고 있었다.


룸살롱 사건으로 나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는 그 앞에서 그때 그 여직원이 생각났다. 난 사실을 알아야만 했다.


“우리 첫 아이 임신했을 때, 그 여직원하고 잤어?”


“응. 미안해.”


두 번째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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