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수필 #3
글을 쓸 때 항상 필기구로 꾹꾹 눌러쓴다. 왠지 컴퓨터로 쓰면 내 얼굴을 뒤덮고 있는 글자들이 온몸을 콕콕 쑤셔대는 것 같다.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내 눈을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 때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리곤 한다. 눈이 산만하게 움직여 집중이 안 되는 것도 다른 이유 중 하나이다. 화면 속 커서가 깜빡거리며 나를 재촉하는 듯해서 더욱 답답해진다.
예전에는 내 글씨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 앙상하게 생긴 나뭇가지처럼 날카로우려고 부득부득 애를 쓰는 것 같다. 때로는 내 글씨를 보면 겨울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 모습이 꼭 내 마음 같아 보일 때면 왠지 모를 쓸쓸함이 밀려온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글씨를 잘 쓴다는 소리는 자주 들었다. 연필 잡는 법도 괴상하게 짝이 없었지만 초등학교의 바른 글씨 학습이 도움이 됐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내 특이한 연필 잡는 법을 보시고는 한참을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시고는 "글쎄, 잡는 법은 이상하지만 글씨는 참 예쁘구나"라고 하시며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활자체 중에서도 유들유들하면서 비범한 궁서체를 수백 번 연습했으니, 못 쓰면 이상할 수 없는 거다.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궁서체를 연습하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연필심이 닳아 무뎌질 때마다 연필깎이로 뾰족하게 깎아가며 글씨 연습에 몰두했던 그 열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초등학교보다 많이 날카로워진 끌시체에 섬뜩함을 넘어서 거부감을 느끼고 나서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였을까, 내 글씨가 점점 날카로워지는 걸 느꼈다. 마치 사춘기의 예민함이 글씨체에도 스며든 것만 같았다.
어린 시절의 영향이었을까. 유들유들하면서 동글동글한 글씨체를 부러워하곤 했다. 친구들의 공책을 볼 때마다 그들의 둥글둥글한 글씨에 눈길이 갔다. 마치 작은 구슬을 굴린 것 같은 그 글씨들은 내게는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어른들에게도 칭찬을 받았지만 아이들에겐 한 번도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중학 시절에 친구들이 글씨를 잘 쓴다고 해도 동글동글한 글씨체를 쓰는 아이들의 동정심으로 받아들이곤 했다. 그들의 말에 겉으로는 웃음 지었지만, 속으로는 '진짜 예쁜 건 너희 글씨인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내 필체를 혐오스러워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동글동글한 글씨는 여학생들의 전형적인 글씨였지 개성적이지 못했던 거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 날카로운 글씨체야말로 나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그 생각을 하니 묘한 자부심이 생겼다.
바른 글씨를 쓰기 위해 수백 개의 지우개 똥을 날리던 옛 동창들은 나와 같이 개성적 육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도 나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필체를 만들어갔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연필의 감각을 익히기도 전에 키보드에 익숙해져 버린 악습이 드러난다.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일상이 된 지금, 손글씨를 쓸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예 못 알아보는 경우도 종종 있고, 글씨에 대한 개념이 많이 약해진 것 같아서 아쉽다.
이제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도, 필기구를 잡을 때도 더 이상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려 한다. 둘 다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니까. 그리고 가끔은 필기구로 꾹꾹 눌러쓴 글자들 사이에서 나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그때마다 새삼 손글씨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결국, 글씨체든 무엇이든 나를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중요한 건 그것을 통해 나의 생각과 감정을 얼마나 진실되게 전달하느냐일 것이다.
앞으로도 내 방식대로, 내 글씨체로 세상과 소통해 나갈 것이다. 그것이 날카롭든, 부드럽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나다운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직도 일기를 쓰거나 손 편지를 종종 쓰는 경우가 있다. 이제는 안다. 내 글씨체는 독자적이고 누구보다 나는 글씨를 잘 쓴다. 적어도 암호나 괴기스러운 그림 같은 악필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내 글씨체는 나의 일부이며, 나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부드럽게. 그렇게 나의 감정과 생각을 종이 위에 새겨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