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프란츠 카프카

by 파선

문득 깨닫게 된 변화는 갑자기 온 것일까, 아니면 이미 오래전부터 정체화된 것일까. 사람은 매일 다르고 같은 순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각의 순간이 오면 그 이전의 인과를 궁금해하게 된다.

그럴 때 유일한 실마리처럼 떠오르는 꿈은, 과연 불변하는 존재일까. 혹은 회복된다면 그 회복된 상태는 어떤 것일까. 확신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불안은, 그렇게 잠시나마 잠재워질 뿐이다. 그 과정을 거치며 나는 ‘나’라는 인간의 동일성에 대해 회고하게 되었다.

처음 그 작품을 접했을 때, 나는 인간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이라는 고등생물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내가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부재가 존재를 증명한다는 역설이다. 존재조차 확인받지 못한 사람은, 오직 부재를 통해서야 비로소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한다. 결국 사람은 인식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의 부재로 인해 회사와 가족에 큰 지장이 생겼지만, 그조차도 질책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지배인의 말과 그의 솔직한 생각을 우리는 처음 듣게 된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들을 생각도, 이해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으나, 이상하게도 그런 말을 듣고 마음이 한결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확인받지 못하는 사람은, 생사를 알 수 없는 완벽한 타인과도 같다. 그렇게 비인간화됨을 느낀 소외된 존재는, 결국 그 비인간화를 스스로 내면화하게 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역설적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며 내면과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몸일 때는 도달할 수 없었던 종류의 존재 확인이었다.

아버지가 가장 먼저 폭력을 휘두른 이유는,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자신의 본질을 아들의 모습에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후에 아들의 죽음을 마주하고 불안을 느끼는데, 이는 사업 실패로 인해 자신이 효용을 잃었다고 느끼고 무기력하게 지냈던 과거의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그레고르를 매개로 가족 구성원들이 점차 회복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자신 또한 또다시 비인간화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여동생과 그레고르는 서로만이 유일하게 진가를 알아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 진가조차도, 돈이라는 냉정한 현실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결국 퇴색되고, 그는 골칫덩어리로 전락하게 된다.

직장을 잃고 나면 가족들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가장이었던 주인공은 늘 걱정했다. 자신이 아니면 돈을 벌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이 가족은 이미 위기를 겪은 적이 있었다. 당시를 떠올려 보면, 어머니도, 의지를 잃은 아버지도, 아직 어렸던 여동생도, 그리고 돈을 얼마 벌지 못했던 점원 시절의 그레고르 자신도—냉정하게 바라보면 그 누구도 위기를 돌파할 힘이 없었다. 만약 그레고르가 진즉에 포기했더라면, 가족은 그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효용성 있는 인간이었을 때 받게 된 애정은 그레고르의 원동력이 되었다. 만약 그런 가족적인 면모가 있었다면, 그것은 그저 오해였을까. 혹은 상황이 나빠져 변한 것일까. 아니면 이미 소멸한 것일까. 그레고르가 가족을 위했던 과거의 상황은 알 수 없지만, 괜히 그레고르가 너무 불쌍할까 싶어, 겉으로라도 가족적인 면모가 있었기를 믿고 싶어진다.

그레고르의 죽음 이후, 가족들은 비로소 서로 소통하며 각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게 된다. 모두가 돈을 벌 수 있음이 밝혀진다. 심지어 돈을 벌지 않더라도, 충분히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음에도, 그들은 그레고르를 외면했다. 이는 결국, 소통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노력의 부재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해충에도 사람에도 속하지 못하는, 무가치하고 인식되지 않은 존재는 결국 소멸한 존재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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