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조름한 지우개와 게맛살

부모와 함께 처음으로 킹크랩 맛보기

by 단빛

정시에 도착한 음식점엔 이미 부모님이 예약석에 앉아 계셨고 식탁엔 밑반찬도 차려져 있었다. 바로 주문했고 이내 점원은 명세서를 가져왔다.

“킹크랩 1.6kg, 대게 1.3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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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떻게 먹는 거냐?”

“그냥 껍질째 씹어먹는 거 아녜요?”

간장새우가 모친 입에 들어갔고 손가락은 꼬리를 뗐다. 부친의 숟가락은 옥수수 마요네즈 샐러드에 먼저 갔고 내 젓가락은 양상추샐러드를 집었다. 문어숙회, 전복, 연어회, 낙지 무침 대신에.


“예전에 식당에서 어느 네 식구분이 전부 아무 말 없이 간장게장을 폭풍 흡입하는 거예요. 게 눈 감추듯 먹고는 추가 주문하더라고. 난 그게 무슨 맛인가 싶어.”

“어릴 때부터 안 먹어봐서 그렇겠지. 그런 것도 못 멕이고….” 모친의 응수에 내가 가로챘다.

“아니, 난 여전히 해산물이 무슨 맛인지 모르겠더라…. 어? 아버지는 벌써 만들어 보셨어요?”


지난주 부모 댁에 가니, 부친이 ‘지인에게 줄 건강에 좋은 게 뭘까 하다가 들깨강정을 만들겠다.’라며 들깨를 보이셨다. 요즘 사람들은 당에 민감하니 물엿 양을 줄여보시라 했었는데, 벌써 시제품을 만들어서 일회용 용기에 담아오신 것이다. 이런 건 또, 품평해 드려야 한다.

“이것도 제 입맛에는 달지만, 보통은 안 달다고 할 것 같아요. 고소하고 맛있네요. 근데 소금은 안 넣으셨어요?”

“처음이라 물엿만 조금 넣었지.”

“소금을 안 넣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모친도 가방을 뒤적이더니 뭔가 꺼내셨다.

“이거, 휴대용 쪽가위인데, 집에 많아. 흰색, 검은색이 있는데 뭘로 줄까?”

“집에 가위 많은데…. 검은색으로 주세요.”

이런 거 안 받으면 또 서운해하신다.


“아들, 이 전복도 먹어봐.”

“난 전복도 맛있는 줄 모르겠네. 지금 다시 맛을 봤는데, 나한텐 짭조름한 지우개 똥 뭉친 맛이야. 여기에 전복 똥도 들었겠지?”

“엄마가 할 때는 깨끗하게 다 씻지만, 식당에서는 그냥 하겠지.”

“에이~ 그렇다고 어머니가 전복 하나하나 장 청소할 수도 없고… 똥 맛이지 뭐.”


이윽고 빨갛게 찐 킹크랩과 대게가 나왔다.

“아들, 잘 먹을게~”

“아뇨? 오늘은 아버지가 쏘신다고 했는데? 아버지, 잘 먹을게요~. 잠깐! 사진 찍어야지. 안 그럼 어머니 나중에 딴소리해.”


백내장 수술했다는 친구분의 자랑에 혹해서 수술을 논의하시는 부친께, 김안과 의사분의 진료 결과를 떠올려 드렸다. 왼쪽은 완전 실명이라 남은 하나라도 아껴야 하는데, 만일 수술이 잘못되면 아예 못 볼 수 있다는 조언. 다행히, 남은 눈은 아들 맨눈보다 먼 곳을 더 잘 보시니, 신문 보거나 블로그 하실 때 쓰실 안경을 새로 맞춰 드리겠다고. 안경원에 함께 갈 약속을 하고 혹시 드시고 싶은 게 있냐는 가벼운 질문에 돌아온 답변이 킹크랩이었다. 아차, 그 부근에 그 식당이 있지. 버스 타고 지나가시면서 한 눈으로도 눈여겨보셨구나….


“테레비에 킹크랩이 나오면, 맛이 궁금하기도 하고 평생 가족끼리 킹크랩 한 번 못 먹어보고 가나 싶었는데, 마침 잘됐네. 이건 내가 살게. 어차피 다 자네가 주는 돈이지만.”

“그러시죠. 저도 킹크랩 맛이 궁금하기도 했으니…. 맛있게 먹고 안경 맞추러 가시죠.”

이렇게 성사된 식사 자리에 팔순 넘은 부모와 사십 대 끝자락인 아들이 생전 처음 킹크랩을 맛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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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아무리 맛봐도 게맛살인데?”

“아들은 나 닮아서 혀가 둔하지. 할아버지는 어때요?”

“오빠라고 부르랬죠? 서방님이라고 하든지. 나도 할머니라고 부를까?”

“오빠는 어떠시우?”


부친은 기대가 컸나 보다. 궁금했던 킹크랩 맛이 이미 알았던 대게 맛과 비슷할 뿐 아니라 되려 대게보다도 맛이 떨어진다고 실망스레 말씀하셨다. 기대했던 “킹”크랩 맛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충분히 무거운 “왕”이 아닌 “쫄병”크랩을 주문해서일지 모른다고 답했지만, 미각이 둔한 내 입맛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파먹다 보니 부친은 아까 내가 맛봤던 들깨강정을 잡숫고 계신 게 아닌가?

“아니, 이걸 드세요. 여기까지 와서 왜 들깨를 드세요. 술이 들깨?”

아재 개그가 제대로 먹혔다. 부모님 모두 한참을 끼룩끼룩 웃으시더니 다시 드셨다. 대게와 “쫄병”크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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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여기 쪽가위 있는데 줄까?”

“흰색 주세요.”

가방을 뒤적이시는 모친께 말했다.

“농담이에요. 아까 검은 거 받았어요.”


그렇게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부친 시력에 맞춰 안경도 주문하니, 부친은 뭔 공원에서 단오 행사가 있다고 바로 거기에 가신단다. 하여간 부친은 참으로 부지런하다. 6년 전 뇌졸중으로 절름발이가 되고서도 지팡이 짚고 전국을 누비시기 바쁘다. 그렇게 뇌 병변 절름발이 애꾸눈 장애인인 부친께서 치매 전 단계인 인지기능 저하로 깜빡깜빡하는 모친의 손을 꼭 잡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바삐 걸어가시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뇌까렸다.

“그래. 걸으실 수 있을 때까지는 걷게 해야 해. 강하게 키워(?)야지.”


나는 돌아서서 왕왕거리던 양쪽 보청기를 끄고, 안경을 치켜올린 후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쫄병 크랩이어서인지 배가 금방 꺼졌다. 주린 배를 부여잡다 저녁엔 짜장면을 먹었다. 곱빼기. 맛있다. 배부르다. 이게, 더, 판타스틱, 성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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