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랍시고

거미집 철거꾼

by 단빛


동틀 녘 오르는 동네 산길엔

곳곳에 세워진 거미줄 요새

간단히 얼굴로 헤치고 오르며

뜻밖에 그들의 원수가 된다


밤새 잠 안 자고 한 줄 또 한 줄

자아내고 엮은 줄만 백 리가 넘고

이 가지 저 기둥을 수천 번 오가며

이제 겨우 다 지었다 땀 식혔을 터


순식간에 뜯겨 나간 집이자 일터

한 건 해서 포식하려던 꿈은 산산조각

이쯤 하면 녀석들도 포기할 법한데

오늘 아침도 난 거미집 철거꾼


다른 데 지으라고 말 건넬 수도

허리 숙여 엉금엉금 산행할 수도

날마다 허물어질 모래성 쌓는 녀석들

어쩌면 그들의 삶이 더 진득한 지도



---- 2024-05-20


사진: UnsplashDavid J. Booz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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