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기색도 없었다. 여름휴가 내내 비바람을 쏟아붓던 하늘은, 출근 첫째 날엔 아예 천둥 번개까지 데려왔다. 젖은 반바지에 슬리퍼를 찌걱거리며 직원과 함께 비 피해는 없었는지 작업창고를 둘러보곤 사무실로 들어왔다. 허름한 공장을 얻어 사업장을 이전한 지 두 달도 채 안 됐던 그곳은 내게도 아직 낯설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직원이 똥그란 눈으로 빼꼼히 말했다. “어디서 야옹~ 소리가 들려요.”
함께 나가 소리를 따라갔다. 재고 상자들 사이 깊숙한 어둠 속에서 작은 두 개의 별빛이 깜빡였다. 욘석 참 연출도 절묘했다. 수천 개의 빗방울이 야멸치게 지붕을 후려치는 소리에다, 깊은 동굴이 입술을 오므리고 부는 듯 음산한 휘~파람 소리, 그리고 우르릉 쾅쾅대는 천둥소리를 뒤섞은 음향을 배경으로, 쉼 없이 내지르는 몇 개월 안 된 듯한 아가의 울음소리. 게다가 번쩍이는 번개의 시각효과 팀까지 불렀으니, 그 소리가 ‘살려 주세요!’라는 절박한 구원요청 아니면 뭐로 들렸겠는가. 이제는 안다. 당시 내 번역이 틀렸다는 걸. 본뜻은 이것이었다는 것을. ‘키워’ (네?) ‘키우라고.’ 개와 함께 자랐고 개를 훨씬 더 좋아했던 난 이렇게 ‘간택’되었다.
오든 가든 가두지 않는다. 사료와 물은 주되, 별미는 자급자족하도록. 종이박스 하나 주겠지만, 창고 어디에서 자든 상관없다. 발톱 깎기는 금한다. (장미에겐 뾰족한 가시가, 녀석에겐 날카로운 발톱이 정체성이다.) 굳이 내 앞에 다가오면 몇 번 쓰다듬어 주겠지만, 내가 일삼아 챙겨줄 일은 없다… 등의 ‘단호한’ 원칙을 세우고 ‘소미’를 위한 사료와 밥그릇을 준비했다.
며칠 후 노는 토요일 밤, 난 하릴없이 회사 씨씨티비 앱을 열고 채널을 하나씩 돌려봤다. ‘찾았다!’ 내 눈동자는 까만 폰 화면에 나타난 두 개의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다녔다. 벌레를 잡으려는지 엉덩이를 뒤로 쭉 내밀고 씰룩씰룩 도사리다가 펄쩍 뛰곤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검지로 화면을 쓰다듬고 폰에 말을 걸다가 잠들었다. 다음날, 파란 뭉게구름 하늘을 바라보며 휴일임에도 출근하는 나를 발견했다. 밥을 배불리 먹이고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반쯤 누워, 내 배 위에 동그마니 엎드려 잠든 골골이, 그 따스하고 포실한 녀석의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하염없이 쓰다듬었던 나른한 일요일 오후였다. (‘단호함’은 어느새 멍멍이의 몫이 됐다. 개나 줘버렸거든.)
소미는 공장 철문의 터진 밑으로 언제나 마음껏 드나들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대신, 밤마다 자기 영역을 제멋대로 침범하고 제 밥을 훔쳐먹는 동네 모리배들을 상대해야 했다. (실로 내 손발에 ‘피를 흘리며’ 지켜줬던) 녀석의 날카로운 발톱이 그들을 무찌르는 데 얼마나 유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따금 얻어터졌다는 건 안다. 한동안 왼쪽 볼이 탁구공을 물고 있는 듯 빵빵하기도 했고, 앞발이 헐크 다리처럼 부어 있기도 했다. 가끔 혼자 야근할 때면 밖에서 피차 치열하고 앙칼진 교전 소리가 들리곤 했다. 하지만 내가 나서서 침입자를 쫓아내거나 하지 않았다. 그 고난은 그녀 몫이었고,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더 깊은 사랑이었다.
그저 숙식만 도와줄 뿐, 자기의 영역까지도 홀로 지키게 했던 건, 그녀 자신의 본질과 숙명에 인위(人爲)를 최소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유전자의 궁극적 목표인 ‘종족 번식’이 임박했다는 신호가 포착되면서 내 고민은 깊어졌다. 내가 책임져야 할 녀석이 하나, 둘도 아닌 다섯이 돼 버린다면? 그 다섯이 자라서 금세 곱하기 n이 된다면? 예방을 위해 그녀의 중성화수술을 결정할 권리가 과연 내게 있는가? 당사자와 합의는 가능한가? 어미가 된다는 그 소중한 경험의 기회를 내가 앗아간다면, 그 빈 자리가 그녀의 삶에 끼칠 영향은 과연 얼마큼일까?
나는 심사숙고 후에 갖가지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만들었고 얼마 후, 목에 깔때기를 두른 채 퇴원하여 내 배 위에서 골골 자는 그녀를 쓰다듬으며 지껄였다. “넌 이제 한살이지? 마! 난 너보다 마흔 배 더 살았어. 너, 40 알아? 뭐? 그렇게 많은 사료를 먹어놓고도 사료 알도 안 세어 봤다고? 하긴, 나도 밥알 세면서 먹지는 않지. 아무튼, 마흔 넘은 나도 여전히 너처럼 싱글에다 무자식이다. 뭐? 못한 거 아니거든? 안 한 거거든? 하여간, …… 내 맘대로 결정해서 미안하다, 소미야.” 그녀는 눈 감은 채 짧게 응수했고, 그 뜻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벌써 9년 됐구나. 널 천둥 번개와 함께 만났던 게. 어느 날, 뜻밖의 사고로 그녀는 허망하게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는 이야기로 독자의 눈시울을 붉히기에 좋은 시점이기는 하나, 그 돼지는 여전히 꿀꿀하다. 직원들이 나 몰래 간식도 츄르도 주고 예뻐하니, 녀석은 되려 나를 본 체도 않고, 이쪽으로 오다가도 날 보면 돌아가곤 한다. 밥도 간식도 츄르도 다 내 지갑에서 나온다는 걸 알려주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뭐, 몰라도 된다. 네가 나오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서곡, 그 음산하면서도 의뭉스럽고, 날카로우면서도 뭉툭하며, 제멋대로이면서도 귀여운 불협화음의 뒤죽박죽이 얼마나 너를 잘 그려낸 명곡인지 깨닫게 해준 것, 그걸로 됐다.
그 뮤지컬 서곡 https://youtu.be/us0o1eq5WCg
2022-08-01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