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 혹은 호리병 찾기

by 단빛

2022-06-27

오랜 가뭄 끝에, 밀렸던 이자와 원금을 한 번에 갚겠다는 듯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 작가님의 여름 강좌 강의실에 이르렀다. 작가님은 강의 시작 10분 전에 나타나셨다. 젖은 발, 젖은 바지, 젖은 가방과 축축해진 내 마음과는 달리, 뽀송한 운동화와 앙고라 고양이 같은 보드라운 하얀 티셔츠를 입고. 마치 ‘다들 덥고 축축한가봐? 난 차 에어컨이 너무 세서 오는 내내 살짝 춥기까지 했는걸?’이라고 속삭이듯.


그는 좌우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올려진 홍청흑 마커들이 잘 써지는지 하나씩 뚜껑을 열어 지리릭 그려보곤 닫으셨다. 다음엔 지우개의 성능까지 체크하셨다. 손목에 있는 애플워치의 페이스(기본 표시화면)가 피트니스 앱의 운동링으로 설정된 것으로 봐서는, 아이폰 사용자에다 건강과 몸 관리에도 신경 쓰시는 것 같았다. 이내 정확히 19시 정각이 되자 시계를 보시고는 바로 강의를 시작하셨다. 겉보기엔 귀여운 호빵맨 양 볼이 그저 재치와 웃음보따리인 듯 보이나, 어쩌면 거의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분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반가웠다. 그렇게 강의는 시작됐다.


어제 먹다 남은 핏자를 팬에 올린 후 깜빡하고 토핑까지 새까맣게 탄 숯검댕이를 보며 읊조리는 탄식소리인 줄 알았다. “후~마니타쓰.” (이젠 나도 저거 라틴어라는 것쯤은 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돈벌이를 위해 읽기와 쓰기를 멀리하며 살았다. 우연찮게 최근에야 알게 된 후마니타스 연구소와 ○○○ 소설가님. 그리고 그분의 강의를 신청하고는, 참으로 오랜만에 10대 시절 첫사랑을 만날 때의 심장의 떨림을 느꼈다. 그래, 이런 게 ‘설렘’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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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속 진주와도 같은 영화 “이층의 악당”. 골동품점을 운영하던 남편이 20억짜리 찻잔을 집안에 숨겨 놓고는 사고로 죽는다. 우울증에 빠진 아내 연주(김혜수 분)는 그것도 모른 채 골동품점을 근근히 운영한다. 어느 날 낯선 남자 창인(한석규 분)이 소설가라며 연주에게 접근하고, 우여곡절 끝에 찻잔의 비밀을 알게 된 연주는 딸과 함께 집 문짝과 마루를 뜯어가며 샅샅히 파헤쳐 마침내 그 보물을 찾아낸다는 코미디 영화다. 극 중에 이런 대사가 있다.


“실례지만 어떤 일을 하시는데요?”

“저, 글 씀~돠.”

“무슨 글…?”

“인터넷에서 악플 달고 있슴~돠.”


내 나이 서른 살, 전공 관련 일을 다 때려치고 반지하 단칸방에서 안성탕면으로 연명하던 시절이 있었다. 새벽에 종로 광장시장에서 했던 두어 시간의 우유배달이 생계의 전부였고 남은 시간은 대부분 글을 읽고 쓰며 놀았다. 회원도 몇 명 되지 않는 어느 작은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말이다. 악플까지는 아니었지만 시시껄렁한 잡담부터 해서 치열한 토론까지 그 가상공간에서 밤낮없이 살다시피 했다. 내 인생에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가 내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어떤 이의 글이 빛으로 내 눈의 수정체를 통과하여 망막에 이르러, 다시 그것이 전기신호로 바뀌어 뇌에서 ‘의미’로 해석되고 이해하는 과정도 놀랍거니와, 그렇게 해석된 의미의 조합이 어느 순간 내 머리를 터뜨리고 심장을 감전시켜 울고 웃으며 마침내 그 저자(著者)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 그리고 반대로 내가 그 필자(筆者)가 되어 내 답글 또한 그의 마음을 뒤흔들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이윽고 아주 짧지만, 그 둘의 정신 또는 영혼이 서로 꼬옥 끌어안고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의 그 찰나의 순간! 그것은 육체적 섹스의 오르가즘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매우 드문 사건이라는 것.


하지만, 글쓰기란 반드시 독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어느 게으른 주말, 씻지도 않고 밥도 대충 먹는둥 마는둥, 내내 바닥을 뒹구르며 하릴없이 보내다가도, 일요일 밤 문득 끼적이던 글이 탄력받아 마치 신내림 받은 듯 주루룩 한 편의 글을 써 내려간 후 그것을 읽고 또 읽을 때의 그 뿌듯함과 보람참! 이 글 하나로 빈 깡통 같았던 텅 빈 그 주말을 가득 채우고도 넘칠 때의 벅참! 아, 이렇게 나는 이번 주말도 알차게 보냈구나!


어쩌면 나는 오랫동안 우울증에 빠진 연주였는지도 모른다. 내 안에 그 귀한 찻잔이 숨겨져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저 생계를 위해 닭장 속의 암탉마냥 일용할 달걀만을 생산해 왔던. 하지만 이제 때가 되었다. 빠루와 곡괭이를 가지고 내 안의 마루를 뜯어보자. 쓸데없이 닫힌 문은 떼어내 버리자. 어딘가 숨어있을 그 찻잔을 찾아내는 작업을 시작해 보자. 아니, 이왕이면 찻잔이 아니라 호리병이면 더 좋겠다. 물을 담으면 포도주가 나오는 호리병. 그렇게 진부하고 싱거운 일상과 같은 맹물을 마시고는 오미자(五味子)와 같이 달콤쌉싸름시큼짭짤매콤한 와인을 한 번 내어 보자!


그래! 이제,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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