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궁상이 나의 에피소드다

이무진, "에피소드"를 듣고

by 단빛
이무진, "에피소드"


주절주절 두서없는 글이 될 듯하니, 한 줄 요약으로 시작하겠다.

한 줄 요약: 늦게나마 이무진 님의 “에피소드”라는 노래에 푹 빠졌다.


○ 이무진, 에피소드(가사) https://youtu.be/MjXeOAouF3w


이후에는, 참으로 우연히 아슬아슬하게 이 노래를 알게 된 계기부터, 이 노래를 literally 백 번 넘게 들으며 떠올랐던 단상을 편하게 끄적일 것이다. 읽기 싫다면, 떠나기 전에 위 노래 한 번만 들어주면 좋겠다. 내겐 음악도 가사도 참 좋은 노래더라.


그저 찰나에 스쳐 지나갔을 뻔한 이 노래를 만나게 된 계기는 참 절묘했다. 2주 전 수원에서 하프마라톤을 완주하고 경기장 바닥에 주저앉아 나눠 받은 물과 빵을 허겁지겁 먹고는 인증샷 하나 남기려고 엉기적엉기적 걸어 출발선에 갔을 때였다. 출발선 부근엔 검은 곰마냥 큰 스피커에서 노래가 꿍꿍 흘러나왔고, 나는 아랑곳 없이 받은 메달을 치켜들고 이 각도 저 각도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귓등으로 튕겨내던 그 노래가 신기하게도 점점 귓구멍으로 들어오더란 말이지. 급기야 ‘이 노랜 제목이 뭐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이폰의 네이버 앱을 열고 ‘음악 검색’ 기능을 켰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오류로 앱은 꺼졌고, 다시 켜는 동안 그 음악은 거의 끝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게 아닌가. 서둘러 “음악 인식”을 켰을 땐 음악이 다 끝나고 소리마저 점점 줄어드는 마지막 몇 초간이었다. 이걸로 인식될 리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띡’ 하고 나온 검색 결과가 바로 이 노래였다. “이무진, 에피소드.” 긴가민가 싶었지만, 그 화면만 갈무리하고 집에 돌아왔다. 맡겼던 짐도 아직 못 찾았을 때였으니까.


그때부터 틈만 나면 나는 이무진 님을 소환하여 이 노래를 시켰다. 출근할 때도, 퇴근할 때도 그는 내 귓가에서 이 노래를 불러줬고, 달릴 때도 함께 뛰어야 했으며, 청소하거나 설거지할 때도, 심지어 샤워할 때나 볼일 볼 때마저 미안한 기색도 없이 소환하여 마이크를 쥐어줬다. (고마워요. 당신은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했지요.)


나 같은 놈도 한 번쯤은 겪어봤을 풋풋한 ‘사랑의 기승전결’에 더해 ‘그리움’까지 3분 안에 압축해 그리는 노련함, 그것을 일상 언어와 유머, 자조, 다양한 맛의 감정을 적절히 섞어 눈물 나는 장면마저 빠른 템포에 경쾌하게 녹여내는 걸 보며 감탄에 마지않았다.


이후에는, 노래의 가사를 따라서 장면 장면 내게 떠올랐던 생각 조각들을 늘어놓겠다.


노래가 시작될 때 연주되는 유일한 악기인 피아노 소리가 밝고 청량하다.

“꼬꼬무”라는 단어를 자유롭게 노래 가사에 넣는 걸 보고, 그리고 단순한 “꼬꼬무”가 아니라 “꼬꼬무우우우~”라며 귀엽게 끌어내리는 귀여움과 디테일까지 두 번 놀랐다.

튜블러 벨(Tubular Bell)과 슬레이벨(Sleigh Bells) 악기들이 나오면서 벌써부터 12월의 “향”이 물씬 풍긴다.

“자작자작”은 바로 직전 “시작”의 각운 맞추기 의도였을까? 국어사전의 1, 2, 3번 뜻을 봐도 의미가 착 달라붙지는 않는다. 다만 4번 뜻으로, 고려대 한국어사전에서는 “재잘재잘”의 제주 방언이라고 설명한다. 이게 맞다면, 이 노랫말 가사에는 제주 방언까지 들어있다.

“그새 늦은 시간”으로 끝나는 연은 전부 “ㅏ”로 끝나는 각운을 보여준다

“좋은 뜻일 뿐인 굿바이”라는 가사에, 작가의 섬세한 언어 감수성이 느껴진다. 물론 후반 “너무 아픈 이별의 굿바이”의 복선이기도 하고.

“사랑이란 걸 끝도 없이 주고받고 나눴어”: 이 또한 아주 적확한 표현이다. 그 누가 “사랑”을 주고받는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대부분 그저 “사랑 비스무레한 걸” “사랑”이라 착각하며 던지고 받는 게 “우리의 에피소드” 아니던가.

“나는 말야”, “아무튼 뭐”, “그치?”, “소용없다?” 등 너무나 편안한 일상어들을 노래에 기막히게 잘 녹여냈다. 특히 “그치?”나 “소용없다?”는 악보에 음표가 있을까 싶다.

“넌 오아시스 내겐 마치”로 끝나는 연은 전부 “ㅣ”로 끝나는 각운을 보여준다.

“웃으며 안녕”에서 “안녕” 또한 일렁이는 눈물을 누르고 내뱉는 듯한 발음의 디테일...

“웃으며 안녕”과 “눈 뜨면 에필로그다” 사이에는 음악적 공백이 있다. MR을 틀고 이걸 라이브 무대에서 정확히 타이밍을 맞춰 부르는 것 또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잠시 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기존에 흐르던 박자를 계속 세고 있을 것이다.

“눈 뜨면 에필로그다”로 시작하는 장면은, 실로 눈시울이 붉어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그 밤의 향을 잊음과”의 셋잇단음표 부분은 이 노래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 노래에서 가장 아쉽게 느끼는 부분이 맨 끝이다. “우리의 에피소드다”라고 끝나며 질질 끌리며 잦아드는 현악기 연주는, 아무리 들어도 뭔가 억지로 끝내려고 가져다 붙인 느낌이다. 차라리 “우리의 에피소드다!”로 에코와 함께 연주 없이 끝내는 방법은 어땠을까? 또는 곡의 처음처럼 경쾌한 피아노만으로 4비트로 연주하며 잦아드는 방법은? 아이유, “좋은 날”의 마지막 부분을 복붙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나 뿐일까?


이후는, “에필로그”다.


이 노래가 내 평소 발걸음에 딱 맞다는 걸 느끼면서 내 발걸음이 1분에 약 120보임을 알았다. (이 노래는 118BPM인 듯.) 출퇴근이나 평소 큰 걸음으로 걸을 때 이 노래의 박자를 맞춰서 걸으면 경쾌하고 좋다.

노래가 너무 좋아서 한 번 따라 불러봤다. ‘어? 왜 이렇게 키가 낮아?’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응? 한 옥타브 위라고???’ 잠자코 듣기만 하기로 했다.

솔직히 뮤직비디오 https://youtu.be/PVIf531Dt8E 는 노래에 비해 많이 실망스러웠다. 이 또한 아이유의 “너랑 나” 뮤직비디오 “향”이 많이 났다. 특히 스마트폰 수리를 하며 저 큰 리미트스위치를 핀셋으로 집는 장면 등은 음...

KBS 240503 라이브 https://youtu.be/_NtjpUatyjU 도 봤다. 노래는 참 잘 부르는데, 편집이 잘못된 건지, 가장 슬픈 장면에서도 밝게 웃으며 응원봉을 흔드는 관중들이 신기해 보였다.

“이무진”이라는 이름은 예전부터 들어는 봤다. 특히 “신호등”이라는 노래는 몇 번 지나가다 들어보기는 했고, 톡톡 튄다는 느낌은 있었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라는 노래를 알게 된 건 내게 “이무진의 재발견”이었다. 내게 이 작품은 “명작”이다.

이후에 “신호등”을 포함한 다른 그의 작품들도 귀 기울여 들어봤으나, 아직은 이 “에피소드”에 준하는 작품은 아니었다.

아무튼, 이렇게 "거래를 텄으니", 이무진 님의 다음 작품을 응원합니다.


2025-03-16



아래는 가사


이무진, "에피소드"


나는 말야

버릇이 하나

있어 그건 매일 잠에 들 시간마다

잘 모아둔 기억 조각들 중

잡히는 걸 집은 후

혼자 조용히 꼬꼬무


이걸 난

궁상이란

이름으로 지었어 고민 고민하다가

아무튼 뭐, 오늘은 하필이면

너가 스쳐버렸어

우리였을 때로

우리 정말 좋았던 그때로


우리의 에피소드가

찬란하게 막을 연다

배경은 너의 집 앞

첫 데이트가 끝난

둘만의 에피소드가

참 예쁜 얘기로 시작

자작자작 조심스런 대화

그새 늦은 시간


굿바이

좋은 뜻일 뿐인 굿바이

With a happy smile

이게 이 스토리의 서막

눈 내리던 그 밤

겨울 향이 배어서

더 눈부신

우리의 에피소드다


매일이 마지막인 듯이

함께라면 어디든지

사랑이란 걸 끝도 없이

주고받고 나눴어, 그치?

서로만 있음 마음이

시릴 날이 없던 우리

넌 오아시스 내겐 마치


근데 있잖아

별 소용없다?

생각만 해도 행복한 순간들은 말야

모른 척해도 결국엔 이건

끝을 봤던 에피소드

점점 점점 점점


우리의 에피소드가

결말에 가까워져 가

곧 새드 엔딩이다

크레딧엔 너와 나

둘만의 에피소드가

참 쓸쓸한 끝을 맞아

두 주인공의 서글픈 마지막

결국 건넨 인사


굿바이

너무 아픈 이별의 굿바이

눈물이 뺨을 스쳐

도착한 입가엔 미소

애써 웃고 있어

우린 서로를 보며

첨 같던 미소로 안녕

웃으며 안녕


눈 뜨면 에필로그다

침대에 기대어 혼자

펑펑 울고 있는 나

이 궁상 밖의 난

둘만의 에피소드완

전혀 다른 모습 난 그날

돌아서지 말았어야 했다

널 안았어야 했다


그 밤

눈꽃이 널 덮은 그 밤의

향을 잊음과

함께 잃었던 따스함

춥게 눈을 뜬다

겨울밤이 되어서

맞이한 향이

우리의 에피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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