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월 하고도 3일이다. 올해 사업은 죽 쒔다. 매출이 너무 낮아서 직원들 월급 외 내 몫은 안 나오는 수준이다. 아니, 숫자와 안 친한 나는 직원들 월급이나 나오는지도 잘 모른다.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머잖아 문 닫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에, 최근엔 잠 못 들며 회사의 체질 개선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그나마 손 놓고 있기보다 뭐라도 열심히 하니, 도리어 걱정은 줄었다. 갈 때 가더라도 후회 없이 할 건 다 해 본다는 느낌.
그렇게 기울어가는 와중에도 신제품을 수입했다. 판매 자료 준비도 안 됐는데 덜컥 어제 한 대가 팔렸다. 내일 납품키로 약속하고 어젯밤엔 밤새 한글판 사용설명서를 만들었다. 잠시 눈 붙였다 출근해서 사용설명 영상을 찍었다. 밤엔 집에서 영상 편집 후 유튜브에 올리기로 하고, 퇴근 시각이 돼서야 내 자리에 앉으니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귀하의 도서가 출고됐습니다.” 아, 정말? 혹시나 하고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검색했다.
“시랍시고”
마침내 내 첫 책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되고, 공식적인 ‘자까’가 되었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내일이면 ‘저자 증정본’도 내 손에 쥘 수 있겠지.
몽롱한 피로감 가운데서도 기분은 은근히 좋았다. 내가 직접 만든 표지 그림과 내 글들이 담긴 책을 유명 인터넷 서점에서 보는 기분은 묘했다. 유튜브 영상에 담긴 내 모습을 보는 것처럼 부끄럽지는 않으면서도, 가슴속엔 뿌듯함이 번졌다. 올 한 해 적자였어도, 그보다 귀한 뭔가를 하나 남긴 느낌. 그래. 20년째 장사하고 있지만, 언제나 돈은 내게 멈출 수 없는 발바닥에 박힌 모래알 같다.
막상 이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처자식도 친구도 없는 외톨이가 책을 익명으로 내고선, 주변은 고사하고 부모에게도 안 알렸기 때문이다. 실로 ‘단 한 권도 팔리지 않으리라.’라는 주문이라도 걸듯, 그동안 이 글모음의 존재를 알려준 곳은 출판사 뿐이었다.
이처럼 좋은 날, 바로 집으로 퇴근해서 지겨운 버터새우멸치계란볶음밥을 해 먹기엔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축하 잔치는 해야지 하고 맥도날드에 와서 ‘늘 먹던 거’로 주문했다. 빅맥, 쿼터파운더치즈 단품 2개, 그리고 얼음 뺀 제로콜라. 정식 출판일은 5일이므로, 모레도 여기로 퇴근하여 입을 앙다문 ‘나 홀로 북토크’를 열까 한다. 지금처럼 뱃속에 햄버거를 욱여넣고 자판 두드리며 혼자 주절대는 것도 즐거우니까.
올봄 어느 토요일, 서른 살부터 20년간 띄엄띄엄 흩어놨던 글들을 꺼내 읽어봤다. 문득, 여전히 예뻐 보이는 고슴도치들만 모아 책 한 권에 담고 싶다는 꿈을 마음에 들였다. 글을 고르고 다듬기부터 해서 출판사와 교정본, 최종본을 주고받는 과정 내내 끊임없이 내 심장을 쿡쿡 찌르는 건,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너, 정말 이걸 책으로 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서시를 쓰신 윤동주 시인님처럼 자기 검열과 성찰에 과하게 매여 자꾸만 가라앉을 때, 나를 끌어올려 줬던 건 안치환 님의 기타 선율과 목소리였다.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소.” 더 정확히는, 그 노랫말의 원작인 나희덕 시인님의 “귀뚜라미”라는 시였다.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다”
그래, 어쩌면 저 나무님이 고작 이 졸작을 담기 위해 그 숱한 땡볕과 벼락을 감내하지는 않았을지 몰라. 하지만, 내가 헤쳐왔던 비바람과 파도에 묻혔던 울음과 휘파람을 자기 죽은 몸에 새기는 걸 마다하지는 않을 거야. 그도 살아 봤으니까. 나도, 여전히, 이 좁은 틈에서, 살아 있다고, 귀뚜리고, 타전하고 싶었어.
이렇게 난 비로소, ‘자까’될 결심을 했다. 용기 내어 내 글을 세상에 공개하고 당당히 “자, 까!”라고 외친 것이다. 백만 독자들의 격려뿐 아니라 비판과 화살도 달게 맞으며 ‘자까’를 넘어서 ‘작가’가 되기 위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물론 가장 무섭다는 ‘무관심’을 감내하며 부단히 스스로 깔 다짐도 없어서는 아니됨을 모르지 아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