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그대 또는 나

by 단빛

돌아오는 금요일에 친구들과 만남이 있어서 늦게 귀가할 것 같다고, 그래도 자정 전에는 오빠에게 전화하겠다던 사랑하는 그녀의 약속을 되뇌며, 그 전화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빠가 뚫어지게 바라보던 벽시계의 초침은 바로 그날 밤 열한 시 오십구 분을 지나 자정으로 달리고 있었다. 십, 구, 팔, 칠, …. 로켓 발사 관제팀처럼 그는 자신도 모르게 초읽기를 하다, 그 숫자가 빵이 되자 빵 터졌다. 그게 로켓이든 미사일이든 아님, 그의 머리 뚜껑이든.


당장 전화해 볼까? / 에이~ 넘 없어 보인다. / 뭐? 밤 열두 시가 넘었어. / 뭔가 사정이 있겠지. / 뭔 사정? /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 그럼 어쩌라구? / 좀만 기다려 보자. / 얼마나? / 십 분 정도? / 뭐? 십 분? 안돼, 오 분! / 사내가 오 분이 뭐냐? 쫌스럽게. 싸던 똥도 못 끊겠다. / 지금 변기에 앉아 있다고? / 아니, 그럴 수도 있다고. / 오케이! 십 분! 십 분 후에 전화한다. 시간 재. 얼마 지났어? / 십오 초. 십육, 십칠, 십팔…. / 에이 십팔! 넌 누구 편이냐? / 너나 내나 나니까 네 편이겠지, 인마! 언제 이렇게 대꾸해줄 친구라도 있었냐? 소심한 아싸 시키!


물속에서 숨 참듯 십 분하고도 넉넉하게 십여 초나 지난 후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받아라, 쫌….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이후 음성사서함으로…." 조금 전 십 분보다 두 배가 넘는 무려 오 분을 더 기다린 후 다시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삐 소리 이후…."


이토록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도 나이에 걸맞지 않게 차분하고 성숙하게 대응했던 당시 서른 살 내 모습을 보라! 방 조명이 딸깍 꺼지고 창 너머 스며드는 달빛에 사내의 실루엣이 보인다. 요 위에 곱게 누워 이불을 우아하게 당겨 가슴까지 덮고는 양손을 배 위에 가지런히 모아 잠들기는 개뿔, 어둠 속에서도 눈꺼풀에 덮인 두 눈동자가 좌우로 점점 빠르게 움직이면서 눈꺼풀마저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영사기에 불 들어왔으니 이제 필름이 돌아가야지.


여대생이니 여자 친구들끼리 술 한잔하며 수다를 떨고 있을 거라는 상상, 그 수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자정이 넘은 줄도 몰랐을 거라는 상상, 혹시나 어쩌면 여대라고 해서 친구들이 모두 동성은 아닐지 모른다는 상상, 그럼 장소가 술집이 아니라 나이트일지도 모른다는 상상, 그렇다면 동성 친구들과의 만남이 아닌 남녀 단체미팅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마침 매칭된 오빠가 연예인급이라 나 같은 오징어는 까맣게 잊을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상상, 자정까지 신나는 댄싱 타임을 가지다가 이윽고 바뀐 블루스 타임에 그 남자의 품에 안겨 흐느적거렸을 거라는 상상, 자리에 돌아와 보니 전화에 부재중 뜬 걸 보고 아차 싶었지만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전화기를 꺼 버렸을 거라는 상상, 그렇게 그렇게 술에 떡이 되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까운 숙소를 잡고 그 새끼와 따로 혹은 같이 샤워를 하고 있을 거라는 상상에까지 이르렀다. 만일 여기에서 내가 지쳐 곯아떨어지지 않고 남은 필름을 더 봤더라면 당시 숫총각이었던 나는 쌍코피에 뇌출혈로 뒷목 잡고 일일구 구급차를 탔을지도 몰랐다.


여지없이 동은 텄고 오전 열 시경,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게 전화한 그녀는 "전화기 배터리가 다 돼서 꺼지고 말았다"는 너무나 간명하고도 진부한 해명을 했다. 그것의 설득력 여부와 무관하게 나는 원빈으로부터 다시 오징어인 내게로 돌아온 그녀를 와락 안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수 시간 전까지 내 코앞에서 상영했던 그 영화의 감독을 쥐어패고 싶었다. 왜? 그것이 늘 더 사랑하는 자의 숙명이다. 늘 내가 잘못했고, 늘 내가 죄인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른 이유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슬프도록 아름답게 이별했다. 다시 얼마 안 지나 동네에서 내가 아는 남자의 팔짱을 끼고 해맑게 웃으며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목격했다. 그걸 보고도 그들이 당황해할까 얼른 자리를 피했던 건 되려 나였다. 활활 타오르며 집에 돌아와 방바닥에 무릎 꿇고 머리를 찧으며 울었던 것도 나였고,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그녀에게 전화하곤 내가 다 잘못했다고, 다시 돌아오라며 꺼이꺼이 울었던 것도 나였다.


그렇게 땅을 치며 오열하는 와중에 내 머릿속에 물음표 하나가 띵! 하고 떴다. ‘이 모든 아픔과 슬픔이 누구를 위해서지?’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났는데, 내가 이를 슬퍼한다면 과연 나는 누구의 행복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당시 내게 가장 큰 화두였던 “사랑”에 대한 좌충우돌 변증법적인 나만의 배움과 오랜 세월에 걸쳐 숙성된 생각이 있으나, 분량이 다 됐네. 궁금하면 오백 원.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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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Adrian Swanc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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