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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교양 수업에서 만나뵈었던 교수님과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벌써 19년이 되었다.
내 머릿속에 인문정신이라는 것이 한 줌이라도 있다면, 그것의 제대로 된 시작은 교수님의 수업 덕분이었다. 내가 들어갔던 수업은 '학술적 글쓰기'라는 신입생 필수 교양이었는데, 교수님은 본래의 커리큘럼과는 무관하게 한 학기를 운영하셨다. 수업 방식은 단순했다. '출간 100년 넘은 고전을 한 권 스스로 정하고, 그 고전의 내용을 요약하고, 선정 이유와 요약 내용을 수업에서 발표할 것'이었다. 그러면서 개강 첫 주에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수업 방식을 원치 않는 사람들은 이번주에 드롭 해도 괜찮다."
나는 수업을 따라갔다. 내가 처음 선정했던 책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중간에 포기했다. 다음으로 집어든 것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었다. 이건 그래도 스무살의 내가 꾸역꾸역 읽고 무슨 말인지 어렴풋하게나마 따라갈 수 있었다. 자유론으로 나는 발표를 했었다.
그 수업에서 여러 학생들이 돌아가며 자신이 선택한 고전과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발표했다. 누군가가 어느 동양 고전에 대해 발표를 하다가 자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고, 감정이 북받쳐올라 교실 앞에서 눈물까지 흘리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몇 년 만에 교수님을 다시 만나뵈었다. 그때 그 수업 이야기, 이후 몇 차례 독서 모임에서 해주셨던 이야기 등을 되새김질하며 교수님의 지혜를 다시 한 번 청취할 수 있었다. 교수님과 나눈 이야기를 오늘 밤 아내에게 전해 주었더니, 아내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오랜만에 오빠 눈이 반짝반짝 빛나네." 삶에서 이런 어른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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