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을 이용해 추억 기록하기
방금 스타벅스에서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티를 주문했다. 별생각 없이 한 모금 마신 순간, 아부다비로 와버렸다. 아부다비 호텔에서 나 혼자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티를 타 마시면서 조식뷔페도 즐기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여행 계획을 짰던 기억들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에어컨이 빵빵하던 그 온도, 이불의 촉감,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있던 호텔 풍경, 나에게 친절하게 인사해 주던 직원들, 같이 농담하며 깔깔 웃었던 택시기사 아저씨, 사람들의 캐리어 움직이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갑작스럽게 떠오른 기억은 내 마음을 다시 설레게 만들며,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만의 여행 철학이 있다. 바로 오감에 여행의 기억을 남게 하는 것. 여행을 내 몸에 깊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한국에 돌아와 있어도 일상 속에서 여행의 조각들을 느낄 수 있다. 따스한 햇살을 받을 때면 세비야의 따뜻하고 강렬한 뜨거운 태양이 생각난다. 내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이 태양이 다시금 떠오를 때, 나의 근심과 걱정은 강렬한 온기에 다 타서 없어져버린다. 태국 길거리에서 찾았던 노래, Sweet Caroline을 들으면 카오산로드의 낮에 만났던 순수한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러한 여행의 조각들은 일상생활에 활력을 더해주는 것은 물론, 삶의 이유가 되어버리기까지 한다.
여행의 조각을 얻기 위해서는, 여행 중 여유와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여행 조각의 재료는 여행 당시 오감으로부터 느껴지는 감각들이다. 우리는 그 감각들로부터 생산된 감정과, 감정으로 부터 만들어진 행동을 기억하게 된다. 그렇기에 여행 중 느낀 것들을 음미하는 시간은 필수이다. 그래야 그때의 정확한 느낌을 알고, 나중에도 기억할 수 있다. 여행 중 혼자 있는 시간이 있어야 여행을 더 효과적으로 기억할 수 있다. 정말 사랑하고 편안한 누군가와 같이 그 느낌을 나누는 방법도 좋지만, 서로가 같이 있는 상황에서는 타인에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감각을 느끼는 깊이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리고 내가 이후에 말할 여행 조각을 수집하는 방법도 행하기 힘든 환경이 된다.
개인적으로 바쁘디 바쁜 패키지여행이나 풀계획 여행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의 조각을 얻기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투어가이드를 동반한 바쁜 여행은 신경 쓸 것이 많다. 나는 나중에 여행을 돌아봤을 때 별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언제 다시 버스로 돌아와야 할지, 내가 투어가이드를 잘 따라가고 있는지를 생각하느라 내 오감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나만의 단독행동도 제약이 되어있다는 것도 한몫한다. 가이드 설명을 듣느라, 노래들을 시간조차 확보하기 쉽지 않다.
특정한 곡들에 특정한 추억들이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Man on a wire'라는 노래에는 고3시절 독서실에서 집에 오던 추억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여행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계획하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라면, 여행 가기 전 그 나라와 관련되거나 그 나라 느낌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들으면서 여행을 해보아라. 당신의 추억들이 플레이리스트에 낱낱이 기록되며, 노래들을 한국에서 들을 때마다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들것이다.
평소에 자주 듣는 노래는 추천하지 않는다. 그 노래에는 그 여행만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노래가 다른 기억으로 덮여버려 기억이 흐려질 수 있다. 우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길거리에서나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아 수집해 보아라! 나는 이런 방식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여행마다 운명처럼 들어맞는 새로운 노래들을 찾게 된다. 나의 경우,
'Chocolate - 1975'에는 세비야에서 러닝 하며 느낀 새벽공기가, 'Casita - Goth Babe'에는 테네리페에서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려 하염없이 태양 밑에서 걸었던 추억이 담겨있다.
우리 뇌는 시각정보를 가장 많이 얻는다. 사진으로 추억하는 것은 이미 모든 사람들이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방법은, 여행지에서 옷을 사거나, 여행을 가기 전 그 여행에서 처음으로 입을 예쁜 옷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옷마다 이름을 붙여보자. 내 옷장에는 포르투갈 할머니 원피스, 태국의 러블리한 유니콘 잠옷, 세비야의 간지나는 루피 선글라스가 있다. 나는 옷장을 열 때, '오늘은 포르투갈룩으로 가볼까?' 하며 코디를 하게 된다. 그리고 여행의 조각이 담긴 옷들을 입을 때마다 그때의 추억과 설렘이 느껴진다.
어떤 여행자는 여행지마다 향수를 달리한다고 한다. 나중에 그 향을 뿌렸을 때, 여행의 추억이 한 번에 떠오른다고 한다. 내가 해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낭만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여행지에서 향신료를 사거나 그 나라 식재료를 직접 사서 요리해 보자. 아니면 한국에 돌아와서 그 나라 음식점을 돌아다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스페인이 너무 그리운 나머지 스페인 음식점에서 일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일하는 게 행복해져 버렸다.
감정과 촉감은 다시 느끼기 어려운 감각들이다. 이런 경우에는, 글로 기록하면 된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여행 조각은 바로 여행 일기이다. 1달 동안 한 여행의 일기는 구글닥스로 210p의 분량을 가졌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의 감각과 감정을 깊게 자세히 기록하자니, 하루에 2시간이나 3시간은 일기로 정리하는 시간으로 투자해야 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좋았다. 나는 경황이 없어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해 버렸지만, 그때의 상황의 키워드나 중요한 문장을 적고, 한국이나 이동하는 버스에서 정리하는 더 효율적인 방법도 있다.
여행의 조각은 오직 나만을 위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기념품이다. 어디에서 사지도 못하고 내가 직접 만들어야 하기에 더 소중한 무형의 자산이다. 이는 여행의 가치를 훨씬 높여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내 스페인 - 포르투갈 여행은 500만 원이었지만, 내 여행일기와 여행의 조각들은 그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같은 돈 내고 여행을 가는 것이라면, 훨씬 많은 추억을 얻어가는 것이 좋지 아니한가? 나는 모든 여행자들이 각자만의 여행의 조각을 가지고 오랫동안 소중함을 간직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이 조각들은 따스하고, 소중하고, 여행자들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모든 여행자들을 응원한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