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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조교 Mar 17. 2024

무대라는 성전, 아름다움의 한계

뮤지컬 <일 테노레> 퇴근길 리뷰

본 후기는 2023.12.19 뮤지컬 <일 테노레>를 관람한 뒤 작성한 퇴근길 리뷰를 재구성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뺨에는 여전히 눈물이 흘러간 길이 선명하게 남아있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도 감동을 토해내고 싶은 마음과 삼켜내야 한다는 마음이 내리는 눈과 함께 뒤섞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속 일렁이는 문장들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나의 작고 아늑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머무를 수 있는

작고 안전한 집이 있다는 것.


뮤지컬 <일 테노레>는 일제 강점기, 꿈을 어깨에 들춰매고 예술로 억압에 맞서 싸워온 젊은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희생이라는 그늘 아래 꿈과 함께 늙어가고, 이제는 늙어버린 꿈을 빛바랜 선율 속에 실어 보내게 된다.


어쩌면 이 공연을 통해 공연 예술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음악과 오페라를 마주하고 사랑하게 되는 이선의 마음과 동기화될 것 같았다. 인물들이 만들어 둔 ‘무대’라는 공간은 꿈이 실현되는 공간인 동시에, 그들이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이었다. 무대 위에서 그들은 얼마든지 ‘크게’ 소리 낼 수 있었으니까.


삶보다 죽음을, 꿈보다 희생을 가까이 품고 살아가던 인물들이 무대라는 성전 위에서 만큼은 편히 꿈을 꾼다. 그리고 다시 살아낸다. 음악 속에서 성장하고, 치열하게 싸우고, 사랑을 발견하고, 희생할 용기를 부여잡은 인물들의 외침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들은 꿈이라는 도화선을 통해 활활 타오르는 순수하고 안타까운 시대정신을 마주하게 된다. 


오랜만에 본 창작 초연이 이토록 완성도가 높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공연을 둘러싼 잡음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무한한 아름다움 아래 넘어설 수 없는 상한선이 그어진 느낌이랄까.


그것은 더욱이 <일 테노레>가 꿈꾸는 자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고, 덧없는 죽음이 없듯 덧없는 희생도 없다고 말하는 작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공연을 통해 느낀 환희가 누군가 느꼈을 고통을 짓밟고 올라가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울린 근사한 공연을 보고서도 개운하지 못한 마음이 한편에 남아있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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