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퇴근길 리뷰
2005년 오리지널팀 내한 공연 이후 한국에서 프랑스 뮤지컬의 흥행을 견인한 상징적인 작품 <노트르담 드 파리>. 격동의 15세기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음악과 몸이 부서질 듯 춤을 추는 댄서들의 폭발하는 에너지만으로 공연은 그만한 값어치를 하죠.
동시에 <노트르담 드 파리>는 (주변 지인들의 반응만 봐도) 관객들의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리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대게 작품의 치밀한 서사와 웅장한 무대 기술을 기대하는 관객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노담은 개인적으로 제가 정말 사랑하는 작품이기에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가 뭔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취향의 차이’입니다.
☝�작품 속 모든 장면은 직관적이며, 상징과 여백으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한 편의 완성된 드라마를 보고 온 느낌보다 한 편의 시를 읽거나 명화로 가득 찬 갤러리를 거닐다 온 기분이 들 때가 많습니다. 걸려있는 그림은 답을 내려주거나 설명을 해주지 않습니다. 그림이 그려진 시대와 화풍을 통해 숨겨진 의미를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짐작하며 감상하는 관객이 있을 뿐입니다.
친절한 서사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그저 놓여있는 장면’들이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관객들을 15세기 파리로 초대하는 인물인 그랭구와르의 직업이 ‘음유시인’인 것도 이러한 작품의 컨셉을 담고 있는 요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물들은 ‘숙명’이라는 거대한 키워드 속에 하나의 ‘오브제’처럼 놓여있습니다.
거대한 역사의 물결 속에 휩쓸려가는 인물들이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토해내고 그 중심에는 에스메랄다라는 ‘시대의 희생자’가 놓여있습니다. 인물들은 제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해보지만 시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합니다.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선택한 모든 것들이 결말이 정해져 있는 역사의 장난질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허무합니다.
작품을 거닐다 보면 이윽고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라는 마지막 종착지에 다다르는데요. 시대의 급류에 휩쓸려온 인물들의 최후를 바라보며 ‘욕망함’의 부질없음과 인물에 대한 ‘연민’에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매 시즌마다 <노트르담 드 파리>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이유는 상징과 기호가 많은 작품을 좋아하는 저의 개인적 취향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작품은 이제껏 그래왔듯 오랜 시간 가만히 놓여있을 겁니다. 다만, 시대의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이 바뀌며 <노트르담 드 파리>는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여백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제시하는 공연으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