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책 (10)

몽마르트와 알베르트 까뮈의 <이방인>

by 향지소피아


여행 중 내 영혼을 저격한 소설 <이방인>을 조우하다.





몽마르트 가는 길에서 까뮈를 만났다.

프랑스 잡지 <L'Express>에서 까뮈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는 것을 광고하는 포스터이다. 알베르 까뮈(1913~1960)는 아프리카 알제리 태생이지만 , 1940년 이후는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1957년, 44세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문학적 창작이 인간의 양심을 밝히는데 기여했다'는 이유로 노벨상을 받게 되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죽었는지도 모른다.”


‘이방인’의 첫 구절이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아직도 기억나는 그 구절과의 대면은 매우 강렬했다.


건조하기 짝이 없지만 담고 있는 메시지는 고무적인 것이었다. 솔직히 그 대목을 나는 ‘오늘 아버지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죽었는지도 모른다.’로 환치 시켜보기도 했다. 고백하건대 불온하게도 그즈음 ‘아버지의 죽음’ 이란 간절한 몽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당시 아버지는 우리 가족들에게 두려운 폭군 같았다. 내 몽상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23년이나 지나야 했다. (부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런 그때의 내 마음을 이제는 용서하셨길!)



어떤 일에도 무관심하던 알제의 선박회사 직원인 청년 뫼르소는 어느 날 마랭고의 양로원에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는다. 오랜 연차 휴가를 쓰는 뫼르소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직장 상사에게 엄마가 금요일에 돌아가신 것이 자기 잘못은 아니라고 말 하려다가 만다. 유일한 가족인 엄마가 죽었는데 장례를 치르는 동안 뫼르소는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날에는 예전 직장 동료였던 마리를 우연히 만나 유쾌한 영화를 보고 알제의 바다가에서 해수욕을 즐기며 사랑을 나눈다. 이런 보편적이지 않은 부조리한 자신의 행동이 부메랑이 되어 벼랑으로 몰고 가게 될 줄은 뫼르소는 모른다.


뫼르소는 한 아파트에 사는 레몽이라는 사내와 친해지고, 사내의 변심한 애인을 괴롭히려는 계획에 별 생각 없이 동참하게 된다. 며칠 후 뫼르소는 레몽과 함께 해변으로 놀러 갔다가 그들을 미행하던 아랍인들과 마주친다. 그 무리 중에는 레몽의 옛 애인의 오빠가 있었고, 이들과 싸움이 벌어진다. 레몽의 부상으로 싸움은 일단락되지만 뫼르소는 아랍인 중 한 사람을 총으로 쏘게 된다.



재판에 회부된 뫼르소는 아랍인에게 총을 쏜 이유에 대해서 아랍인이 칼로 자신을 해하려고 했기에 방어 목적으로 쐈다고 하지 않는다.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라고 진술한다. 재판에 서게 된 이유는 아랍인 살인 건이었지만 갈수록 재판은 엉뚱하게 흐른다. 어머니 장례식 이후 뫼르소의 행동이 쟁점화 되고, 뫼르소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으로 지탄받는다.



가벼운 처분으로 풀려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뫼르소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모친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던 것이 결국 사형 구형으로 몰고 가게 된 것이다. 참으로 부조리한 결론이다. 사형집행을 받기까지의 얼마동안 뫼르소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이켜 보게 된다. 무관심했던 삶에 대해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흥미를 느끼게 된 뫼르소는 감옥에서 생각한다. 자신의 사형 집행일에 받는 사람들이 구경 와서 자신을 증오의 함성으로 맞아 주길 바란다고.


‘이방인’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건과 연류 되어 살인까지 저지르고 결국 사형까지 받게 되는 한 사내의 부조리(말이 안 되는) 한 생의 보고서였다.





몽마르트르 언덕 가는 길에 '사랑의 벽'을 잠시 들른다.


아베스 광장에 자리한 사랑의 벽이다. 여기는 파리의 낭만을 상징하는 장소 중 하나다. 파란색 타일로 이루어진 이 벽에는 전 세계 250여 개 언어로 쓰인 ‘사랑해’라는 문장이 반복되어 있다. 언어도, 문자도 서로 다르지만 의미만큼은 하나로 수렴된다. 벽을 가득 채운 고백들은 누군가에게 향한 특정한 말이라기보다, 인간이 가장 오래 반복해 온 감정의 기록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곳은 사진을 찍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잠시 멈춰 서서 읽게 되는 공간이 된다.



몽마르트르로 오르는 중이다. 새해의 겨울 아침이라 너무 조용했다.

나는 이 길을 오르면서도 계속 까뮈와 그의 작품 <이방인> 생각에 빠져 있었다.

내가 어떻게 <이방인>을 읽게 되었던가?



18세 봄이었다.

황량한 사막을 이정표 없이 헤매는 검은 실루엣, 그것이 그즈음 내 자의식이었다. 그런 시기에 인생의 방향등을 켜 준 소설 한 편을 만났다. 그 만남은 분명 내 인생의 ‘사건’이었다. 쏘는 듯한 황금빛 태양, 하얀 모래밭, 푸른 바다, 표정을 알 수 없는 무뚝뚝한 사내, 발화된 네 발의 권총 탄환 자국으로 구성된 한 점의 타블로이드판 추상화로 각인 된 소설! 공부에 흥미를 잃고 책읽기에 겨우 마음을 걸친 채 학교를 다니던 고등학교 2학년 봄이었다. 흰 해오라기가 날아 앉은 듯이 목련꽃이 봉오리를 맺은 봄밤, 야간 자율 학습시간에 국어 선생님이 추천 해주신 <이방인>을 펼쳐 들었다.


소설 ‘이방인’ 읽은 뒤 적잖은 감정의 파고에 휩싸였다. 알베르 까뮈의 독특한 시니컬한 문체, 내 자아의 거울을 보는 듯한 뫼르소라는 사내에 대한 비판과 연민, 아버지의 존재가 사라지길 갈망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 등이 마음을 휘저었다. 며칠을 몸살을 앓았다. 앓고 난 뒤에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이방인’에 대한 일종의 독후감상문 같은 것이었다. 초반에 끙끙 대다가 이윽고 벼락같이 써내려가게 되었다. 2주 만에 200자 원고지 60매를 채워서 ‘탈출광’이란 제목을 붙였다.


신학기 때부터 학교 게시판에 공고되어 있던 부산의 한 대학에서 주최하는 전국고등학교 대상의 현상문예의 마감 날짜가 코앞에 닿았던 것이었다. 거기에 원고를 보냈다.



한 달 후에 ‘탈출광’이 소설 당선작이 되었으니 당선소감과 사진을 보내라는 대학의 통고를 받았다. 처음으로 쓴 단편소설이 활자화된 대학 신문을 받았을 때의 기분이란! 그 해 2학년 2학기에는 인천대학교 고교생 현상문예에 단편소설 ‘추이’가, 3학년 2학기에 대구대학교 현상 문예에 단편소설 ‘돌개바람 우흐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었다.


‘이방인’을 읽고 영혼이 저격당한 나는 고등학교 시절, 소설 당선 3관왕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이후 33세에 단편 소설 ‘우리는 미국으로 갈 것이다’로 신인상을 받으면서 등단을 하게 되었다. 늘 소설 쓰기를 갈망했지만 엇박자였다.


소설로부터 위리안치 된 삶속에서 내게 소설은 불이었다. 어둠을 밝히는 등대불이거나 벌겋게 달아오른 화톳불이거나, 때로는 가슴을 지지는 인둣불이거나. 지금은 한번은 더 활활 타오르기를 기다리는 잉걸불일지도…….

등단 이후 그 동안 소걸음으로 40여 편의 중, 단편과 1편의 장편을 썼다. 아직도 나는 소설에 갈증을 느낀다.



소설쓰기라는 이정표를 제시해주고 내 속에 감추어져 있던 문예라는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올 수 있도록 촉발시켜 준 소설!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지만 이처럼 한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강렬한 소설이 또 있을까?



그렇게 강력하게 내 영혼을 저격한 <이방인>, 그리고 그 책을 집필한 알베르 까뮈, 한동안 나는 그에 경도되어 살았다.

그러한 그를 몇 십년이 흐른 뒤에,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뜨 가는 한 거리에서 조우하게 되다니! 나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을 안다고. 당신 때문에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고, 살 수 있었다고.



드디어 어지러운 기억과 함께 몽마르트르 언덕 정상에 올랐다.

사크레쾨르 성당이 안개 속에서 우리를 조용히 맞이해 주었다. 하얀 석재로 이루어져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신부 같은 모습이다. (이 성당은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다. 둥근 아치와 두꺼운 벽체, 안정적인 수평감이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창과 출입구는 뾰족한 고딕 아치가 아니라 부드러운 반원형 아치로 구성되어 있고, 건물 전체는 위로 치솟기보다 묵직하게 땅에 눌러 앉은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하늘로 상승하는 고딕 성당과 뚜렷이 대비되는 로마네스크 특유의 안정감이다. 중앙의 큰 돔과 여러 개의 작은 돔, 모자이크 장식은 비잔틴 전통에서 온 요소들이다.





그날 몽마르트르 가는 길은 18세의 나를 조우하는 순간이었고, 내가 무엇을 하고자 원한 사람이었던지를 일깨워 주던 시간이었다.


여행은 뜻밖의 곳에서 나를 만나게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소망을 품게 하기도 한다.

언젠가 그 바닷가에 가고 싶다. 알제의 바다! 까뮈의 고국이기도 하며, <이방인>의 배경이기도 한 곳이다. 그곳에서 18세의 나를 만나고 싶다. 뫼르소를, 까뮈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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