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책(20): 베니스편

물의 도시 베니스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by 향지소피아



배가 베니스를 감싸고 있는 얕은 라군 위를 가르며 나아가자, 베니스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수평선 위로 늘어선 건물들은 땅에 단단히 뿌리내린 도시라기보다, 물결 위에 잠시 머물러 있는 수상의 궁전처럼 보였다. 파도는 잔잔했지만, 그 위에 실린 도시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가까워질수록 건물의 색이 분명해졌다. 옅은 분홍, 누런 황토, 바랜 벽돌색이 물빛과 섞이며 부드럽게 흔들렸다. 교회 돔과 종탑은 하늘을 찌르기보다, 물 위에 균형을 맞추듯 서 있었다. 베니스는 처음부터 ‘도착’보다는 ‘접근’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도시였다.


배 위에서 바라본 두칼레 궁전과 산마르코 일대의 파사드는 장엄했지만, 위압적이지는 않았다. 돌의 권위는 물에 의해 한 번 걸러지고, 그 결과 베니스는 웅장함보다는 우아한 긴장감을 풍겼다. 바다는 이 도시의 토대이자, 동시에 언제든 흔들 수 있는 존재임을 잊지 않게 했다.


수상버스의 갑판 위에 앉아 있을 때, 나는 이미 베니스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아직 베니스에 속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 도시는 한 발을 들이기 전에 먼저, 물 위에서 생각하게 만든다.


베니스 입성전의 모습


괴테 역시 이 도시에 방문했고, 한달여 동안 머물렀다. 그는 산마르코 광장에 섰고, 극장에서 비극과 희극을 감상하며, 베니스 곳곳을 탐색하며 다녔다. 수세기가 흐른 뒤, 나 역시 베니스에서 그가 바라보았을 풍경을 떠올리며 산마르코 광장에 서게 되었다. 같은 장소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간은 잠시 접히는 듯했다.


나 또한 곤돌라를 탔고, 수상 택시에도 몸을 실었다. 물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던 그 순간, 시선 한쪽에 낯선 기둥들이 들어왔다. 하얀 봉 위에 푸른 줄이 나선처럼 감겨 올라가는 모습. 마치 한국에서 오래된 이발소나 미용실의 상징처럼 서 있던 그 기둥은, 베니스의 장식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장식이 아니었다. 그 기둥은 게토, 곧 유대인이 거주하던 구역을 알리는 표식이었다. 물의 도시 베니스 한가운데에서, 또 하나의 경계가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물길은 열려 있었지만, 인간은 사람을 구획했다.

지독한 차별과 편견, 그리고 야만의 역사를 이곳에서도 마주쳐야 하다니. 괴테가 예술과 연극을 보았던 도시에서, 나는 배제와 낙인의 흔적을 보았다. 베니스는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 아래에는 늘 이런 균열이 숨어 있었다.


산마르코 광장과 산마르코 캄파닐레(종탑), 뒤로 산마르코 대성당의 돔이 겹쳐 보인다.

산마르코 광장에서 고개를 들면, 종탑 뒤로 대성당의 돔이 겹쳐 보인다. 오른쪽 건물은 두칼레 궁전이다. 베니스에서는 권력과 신앙조차 서로를 완전히 가리지 못한다.

괴테가 곤돌라를 탔을 때 목청 울림이 좋은 곤돌라 뱃사공이 노래를 들려주었는데, 그에 대해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인 뭔가가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중, 민음사, p154>

우리는 곤돌라 뱃사공이 아닌 수상 택시 위에서 우리를 인솔한 가이드님이 '산타루치아'를 불러 주셨다.






-수상택시를 타고 가이드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게토지역을 지나고 있는 모습-


베니스에 왔으니 자연스레 <베니스의 상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더군다나 아름다운 베니스에도 지독히 악의적인 게토지역을 보니 더욱 그러했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베니스 상인이 유태인이다.

물길로는 어디든 갈 수 있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왜 굳이 사람을 가두었을까. 베니스는 자유로운 상업의 도시였지만, 그 자유는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았다.


<베니스 공화국의 두칼레 궁전, 여기서 베니스의 상인 샤일록이 재판을 받았을 것이다. 이 ‘법정’은 추상적 공간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보면 바로 두칼레 궁전 안에 있던 공화국의 최고 재판소를 가리킨다. 두칼레 궁전은 단순한 궁전이 아니라 총독의 집무 공간, 원로원, 최고 법정, 국가 재판이 열리던 장소 를 모두 품은 권력의 복합 건축물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이 재판을 받게 된 이유는, 그가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주며 맺은 계약을 문자 그대로 집행하려 했기 때문이다. 계약서에는 상환 기한을 넘길 경우 안토니오의 몸에서 살 1파운드를 취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고, 샤일록은 법이 허용한 권리를 주장하며 이를 요구한다. 그러나 베니스의 법정은 그 요구가 생명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이를 범죄로 판단하고, 오히려 샤일록을 기소한다. 결국 그는 계약을 지키려 했다는 이유로 재판정에 서게 되며, 법의 형식은 유지되었지만 정의는 인간에게서 멀어지는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셰익스피어는 왜 이 작품을 썼을까. 그리고 왜 유대인 상인 샤일록을 그토록 악의적인 인물로 그렸을까. 이것은 단순한 극적 장치였을까, 아니면 당대 사회가 공유하던 시선을 무비판적으로 반영한 결과였을까. 셰익스피어에게 정말 인종차별적 시선이 있었던 것일까, 혹은 그는 그 차별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극단적인 인물을 창조한 것일까.


확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샤일록이라는 인물이 단순한 악당으로만 읽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대인에게도 눈이 있고, 손이 있고, 감정이 있다”는 그의 독백은, 오늘날 읽을수록 오히려 베니스라는 도시의 잔혹한 질서를 고발하는 목소리처럼 들린다. 차별은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탄식의 다리

이 다리는 베네치아 두칼레 궁전과 옛 감옥을 연결하는 폐쇄된 다리로, 17세기 초에 건설되었다. 재판을 마친 죄수들이 감옥으로 이동하며 창 너머로 마지막으로 베네치아의 하늘과 물을 바라보았다고 전해져, 그들의 한숨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화려한 장식과 달리 그 기능은 냉혹하여, 베네치아가 지닌 아름다움과 권력, 기억의 폭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탄식의 다리 앞에서



베니스의 게토를 보고 난 뒤에, 나는 <베니스의 상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무대 위의 갈등은 허구였지만, 그 배경이 된 도시는 실제였고, 차별은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는 상상의 도시가 아니라, 이렇게 물과 돌 사이에 실재했던 도시였다.


그래서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셰익스피어는 차별을 재현한 가해자였을까, 아니면 그 시대의 균열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 관찰자였을까. 베니스의 게토 앞에서, 그 질문은 쉽게 닫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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