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던 시절에 대한 짧은 글
힌남노.
우리나라로 날아오고 있는 태풍의 이름이다. 이 태풍의 영향력이 어디까지일지, 지금은 상상이 안된다. 한국에 올라올지도, 어쩌면 지고 있는 이 글이 마지막이 될지도. 또는 그냥 아무 일도 없이 막대한 피해만 남기고 간다거나, 그냥 스쳐 지나가기만 할 수도 있다. 태풍은 이렇듯 운명처럼 다가온다. 운명 또한 다가올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니까. 이 강력하고 불가항력적인 현상은 단지 등굣길에 찝찝한 기분을 선사할 수도 있겠지.
태풍.
나의 기억 속에 가장 강렬히 남은 태풍은 201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상륙한 볼라벤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으니까 뭐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무슨 국가적인 재난인 줄 알았다. 뉴스에서 부풀려 보도했던 건지, 내가 어린 시절을 부풀려서 기억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우리 집도 다른 집과 마찬가지로 창문에 청테이프를 X자로 붙이고 하는 등 볼라벤으로부터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대비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강렬한 바람 때문에 창문도 깨졌었지만 그건 기억이 희미하다. 대신 가족들을 도와 청테이프를 붙이던 나의 모습은 선명히 떠오른다. 그때 난, 신기하게도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꼴에, 초딩이, 재난 영화 얼마나 봤다고, <해운대>의 설경구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 영웅적인 시민으로 거듭나는 뻔한 전개를 난 상상했다. 설경구가 하지원을 구하고 사랑을 이룬 것처럼 나도 그 당시 좋아했던 여자애를 데리고 영웅적으로 탈출에 성공해 가족들과 만나는 상상을 잠시나마 했었다. 창문이 깨지는 그 순간에도 두근두근거렸을 것 같다. 이제 재난이 시작되는구나! 하고. 나는 나의 상상 속에서 재난 영화의 멋들어진 주인공이 몇 번이나 되어 이 동네를 종횡무진 누비며 가족들을 구하고, 친구들과 좋아하는 여자애, 그리고 모르는 시민들을 구한다. 사상자는 많았지만 나의 소중한 사람들은 다 살았고, 그렇게 나만의 영화는 해피 엔딩이다.
단역.
무릇 재난 영화에서는 거대한 재앙이 어느 순간부터 천천히 다가와 덮친다. 영화의 단역들은 죽어나가기 바쁘다. 탐 크루즈 같은 주인공들은, 우리나라의 경우는 설경구와 송강호 같은 주인공들은 겨우겨우 회피하거나 먼발치에서 목격한다. 나는 언제나 탐 크루즈, 설경구, 송강호였다.
얼마 전 힌남노가 한국 근처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볼라벤 때와 비슷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의 영화가. 오랜만에 떠오른 기억에 나는 곧 옛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곧 소름이 끼쳤다. 너무 커버린 것일까, 나의 영화는 커다란 허점이 존재했다. 나는 탐 크루즈나 송강호가 아닌 그저 죽어나가는 단역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 인생 누가 알겠는가. 죽어나갔던 단역들도 시민인데, 탐 크루즈가 뉴스에 나와 인터뷰할 때 자막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상자 명단에 내 이름 석 자가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국가적인 재난 상황이 만약 진짜 다가온다면 나는 더 이상 두근댈 수 있을까. 당장 살아남기도 힘들 수도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진짜 죽어나갈 텐데. 자기 인생에서 주연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이토록 허무하게 죽을 텐데. 나 또한 그렇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재앙은 이토록 끔찍하다. 나는 더 이상 재난의 도래를 상상하며 두근댈 수 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의 몇 안 되는 장점은 철이 든다는 것 아닐까. 이런 경솔한 상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