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무너진 영화 커뮤니티에 대한 단상
<익스트림 무비>(소위 "익무")를 처음 접한 건 2022년 5월 말이다. 박찬욱 감독의 오랜 팬이던 나는 칸 영화제의 소식을 보다 자세히 알기 위해 익무에 들어가 봤다. 정보 전달은 소문대로 빨랐다. 칸 영화제에서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가 차지하는 위상들을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었고, 비단 칸 영화제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영화들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은 익무의 빠른 정보전달을 통해 용산 아이맥스관을 비롯한 좋은 관의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도 했다. 필자는 굳이 좋은 자리를 선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신경은 쓰지 않았지만.
익무는 그뿐만 아니라 시사회도 많이 개최했다. 필자가 익무에 처음 가입했을 땐 시사회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시사회 안내문을 본 후 익무 활동을 정말 목숨 걸고 했었다. 메가박스나 CGV를 비롯한 많은 사이트가 신청자에 한해 완전 랜덤으로 돌리는데, 익무는 랜덤이 아니었다. 레벨이 높으면 당첨 확률이 올라가긴 하지만 레벨은 낮아도 활동량이 많은 사람이라면 당첨이 가능했다. 나 또한 지난 6월 23일에 진행한 <헤어질 결심> 익무 단관 시사회에 당첨되어 남들보다 6일 정도 먼저 볼 수 있었다. 굉장한 경험이었다. 시사회 자체가 처음인데, 그 영화가 하필 개인적인 올해 최고 걸작 헤어질 결심이고, 심지어 끝나고 박수까지 나오는 시사회라니. 영화가 끝나고 박찬욱 감독과 김종철 편집장이 눈앞에서 직접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나는 잠시나마 고3의 힘겨운 입시 생활에서 도피할 수 있었다. 이후 정우성과 이정재가 참석한 헌트 GV, 비상선언 4DX 시사회, 풀타임 시사회, 놉 용산 아이맥스 시사회까지 꿈같은 나날들을 보냈다. 익무 덕분에 박찬욱, 박해일, 탕웨이가 사인한 포스터를 받았을 때도 있었고. <놉> 같은 경우는 10일 전인 지난주 목요일에 봤는데, 그 또한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기본적으로 "용아맥"의 어떤 압도감이 있었고, 영화 시작 전에 조던 필 감독이 영상으로 익스트림 무비 회원들과 "다크맨"김종철 편집장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열광했고, 영화까지도 굉장했다.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간 지 며칠이 지나자, 익스트림 무비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익스트림무비에는 처음부터 작디작은, 하지만 치명적인 틈새가 있었다. 그 틈새가 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하지만 운영진들은 틈새의 존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유저들을 바보로 생각했던 걸까. 그 틈새는 어느새 커다란 균열이 되어 익무의 종말을 불러왔다. 시각적 쾌감만 자극하려 개연성을 고려하지 않고 만든 롤랜드 에머리히의 막돼먹은 재난 영화처럼 어느 날 갑작스럽게, 하지만 스펙터클하게 나타났다. 새로운 운영 정책을 발표하던 김종철 편집장의 의지 넘치는 그 입장문은 다음 날 사과문이 되어 다시 나타났고, 영화에 대한 정보들로 가득 차 있던 익스트림무비의 영화수다 게시판에는 운영진들을 향한 조롱으로 가득 찼다. 급기야 운영진들은 영화수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모든 조롱성 글들과 익무의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글들, 심지어는 탈퇴한다는 단순한 글까지 모두 다른 게시판으로 옮겨 버렸다. 익스트림무비가 독재 운영을 하고 편향된 글들을 핫 게시판에 올려놓고, 그런 건 신경쓰지 않았다. 그 정도 사건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운영진들의 친목은 사과하고 넘어가면 끝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운영진들과 몇몇 유저들의 저질스러운 게시글을 보고 난 순간 운영진들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깨져 버렸다. 그때만 해도 난 운영진들을 바꾼다면 익스트림무비를 재건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간과했던 건, 운영진들은 절대 바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본인들이 전혀 뉘우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아직도 모든 비판성 글이나 논란이 언급된 글들을 다른 게시판으로 옮기고 있다. 작성자를 포함해, 운영진을 비판하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가 정지당한 유저들 또한 많다. 1분에 수십 개까지 올라오던 익스트림무비의 영화수다 게시판은 이제 10분에 한 개 올라올까 말까 한다. 그것들 또한 운영진들이 올리는 게시물들이 태반이다. 물론 논란에 상관없이 아직 활동하는 유저들도 많지만.
브런치로 옮긴 당일에 작가 신청을 넣었고, 3일 만에 당첨됐다. 자주는 아니지만 열심히 글을 써서 올리는데, 아무래도 좋아요와 댓글이 활발한 익스트림무비에 비해서는 글 쓰는 맛이 좀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익스트림무비 유저들이 만든 "무비코리아"라는 대행 사이트에도 가입하여 브런치에 쓴 글을 올리기도 하는데, 어떻게 해도 익스트림무비에서 활동할 때의 그 쾌감은 잊지 못할 듯하다. 하지만 인생에는 언젠가 떠나보내야 할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익스트림무비에 글을 올리고, 운영진들이 댓글로 칭찬해주고, 나는 그걸 보고 바깥으로는 싫어해도 내심 기분이 좋아지고. 이렇게 된다면 언젠가는 글 쓰는 재미를 완전히 잃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쾌감은 좀 줄겠지만 익스트림무비 대신 브런치에서 보다 품격 있는 글들을 쓰고, 익스트림무비에서 못한 소통들은 영화 톡방에서 나누고, 브런치에 올린 글들을 무비코리아에 옮겨 적으면 익스트림무비에서 경험했던 쾌감들이 어느 정도 커버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익스트림무비는 나에게 후회의 산물이다. 차라리 6월에 가입하지 말걸.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하지 말걸. 헤어질 결심 시사회에 신청 넣지 말걸. 운영진들도 속으로는 후회하고 있을까? 그들의 수십 년 경력이 무너지고 있는 지금, 그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