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안정감을 줄 수 있을까요?(1)

생계형이지만, 꿈꾸는 한약사입니다.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설계를 했다. IMF직후 어렵게 구한 직장이기도 했고, 건축설계는 전문직이라는 부푼 기대로 원 없이 일하며 살았다. 퇴근은 2~3일에 한 번씩, 야근은 주 6일, 주말근무는 당연하게~

3년 차가 되어가니 이젠 야근도 지긋지긋하고,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월급 모아봤자 푼돈이고, 열심히 해봤자 여자는 결혼하고 출산하면 잘리는구나. 건축설계가 내가 생각하던 전문직이 아니었구나.

이렇게 나는 20대의 전공과 경력을 뒤로한 채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나의 20대가 자동삭제 된 것이다.


전문직이면 평생 먹고사는 건 걱정 안 하고 사는 줄 알았다. 물론 한약사라는 직업이 흔치 않고, 불안한(?) 전문직이라 더 쉽지 않은 거겠지만, 안정적 직업이라는 건 이제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30년 전 까지는 집안에 전문직 한 명 있으면 외벌이로 충분히 생활하고, 집도 사고, 건물도 사며 생계에 부담 없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판에 들어오면 그들 나름의 리그가 치열하고 또 기존에 자리 잡은 선배(?)들 틈을 파고들 수가 없어서 쉽지 않다. 약국도 이미 좋은 노른자 위치는 경력 있고, 자본 있는 분들이 터 잡고 계시니 아웃사이더로 돌다가 기회를 보고 그 사이 자본력이 없으면 그냥 그렇게 시간만 가는 거다.


한때는 세상 돌아가는 거 모르고, 한약사니까 평생 직업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착각하며 지냈다. 한약 잘 짓고, 고객에게 성실하면 경력이 차곡차곡 쌓여 나에게 마일리지로 남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전에 더 중요한 문제가 생겼다. 버티려면 생존해야 한다는 거다. 나 혼자 한약국에서 책 보고, 약 잘 지으면 뭐 하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면 혼자 취미생활로 한약공부 하는 거지.


한약을 주로 취급하는 한약국 특성상 환자가 한 명도 오지 않는 날도 있다. 이런 날이 며칠 지속되면 불안함과 의기소침함이 극대화된다. 그러다 '약 잘 짓는다 소개받았다'며 멀리서 오시면 자부심이 솟아난다.

일희일비하는 일상의 모습이 내가 봐도 한심하다. 어찌어찌 한약사 노릇 16년 차에 내가 내린 결론은 '혹시 한약국이 망하더라도 나는 망하지 않도록 해야겠다'이다. 나 자체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면 한약국 매출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어디에서든 어떤 모습으로든 날 지킬 수 있을 테니까. 흔들리는 내 모습을 보는 게 세상 안쓰러우니 우선 나를 지켜야겠다. 직업이 안정감을 주는 게 아니고, 나의 생각과 마음이 안정감을 준다.


직업적으로 개인적으로 성장을 해야 생존할 수 있고, 생존을 해야 성장이 가능하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감히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한약 공부하는 거 무료해서 유튜브로 올렸더니 그것도 내 삶의 하나의 목표이고 꿈이 되었다. 성장하기 위한 나의 도전들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중도 포기하든... 날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라 기대한다. 생계형 한약사이지만, 내가 여전히 꿈을 꾸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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