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초_한 남자. 알랭 드 보통 장편소설.

읽고 쓰고, 생각하자!



사랑의 기초_한 남자

지은이: 알랭 드 보통

옮긴 이: 우달임

초판: 2012년 5월


(P14) 사랑은 간절한 바람,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상태, 어떤 열병과도 같은 것, 끊임없는 성적 판타지,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유일무이하게 타당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느낌을 뜻했다. 헬렌 빌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는 사실이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데 걸림돌이 되진 않았다. 오히려 이런 상황으로 인해 감정은 더욱 특별하고 강렬해졌다.


(P19)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고 그 사람을 소유할 수 있으리라는, 연인들의 첫 번째 기대가 실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깨닫는 순간, 그 사랑은 최대의 시련과 맞닥뜨린다는 사실을.


(P22) 에로티시즘이란 결국 벌거벗은 몸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욕망하고 있다는 심리적 기대감에서 비롯되는데, 어쩌면 스키복과 모자로 꽁꽁 싸매고 나란히 리프트에 앉아 산기슭을 오르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P42) 결혼생활하는 부부들은 화장실 타일을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남에게 사과할 때 구사해야 할 억양에 이르기까지, 삶의 전 영역에 걸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자에게 줄기차게 의견을 제시한다... 오븐 접시를 닦는 일이나 장모/시어머니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는 올바른 방법을 놓고 언쟁을 벌이는 부부를 보고 놀라서는 안 된다... 평균적인 부부들은 커뮤니케이션, 요리, 미학, 교육, 정치, 패션, 섹스, 재정에 이르는 온갖 영역에서 끊임없이 상대에게 자신의 이상을 관철하려 든다.


(P43) 사회적 관계의 모순 중 하나는, 우리가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보다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결국은 훨씬 더 잘해주게 된다는 사실이다. 말만 많고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 직장 동료들은 하루종일 성심성의껏 대하다가, 저녁에 집에 와선 잔소리를 평소보다 조금 심하게 했다거나 열쇠꾸러미 챙기는 걸 깜빡했다는 이유로 솜씨 좋고 상냥한 아내를 매몰차게 면박 주는 남자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P50)벤은 자기 기분이 어떤 논리에 따라 변하는지 파악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수면부족이라든가 당분 과다섭취와 같은 명백한 생물학적 원인에 의해 기분이 바뀌기도 했지만, 대개의 경우 그 변화 경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인간이란 짭조름한 생리식염수 속을 떠도는 변덕스럽고 불연속적인 의식의 흐름에 불과하다.


(P56) 정신분석은 이에 대해 가혹하지만 타당한 의견들을 내놓았다. 우리가 사랑에서 기대하는 것은 행복이라기보단 친밀함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단순하게 그 자체로 좋은 것보다는 평범한 것을 더 선호한다. 왜냐하면 우리들 대부분은 이상적인 방식으로 양육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P65) 조금 과장하자면, 우리가 자본주의로 알고 있는 것은 부르주아가 발명했거나 적어도 그들의 강력한 옹호와 지지 덕분에 발전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낭만적 사랑도 부르주아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주의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우리는 낭만적 사랑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으로 얼마나 성공하고 얼마나 많이 투자하고 생산하는가를 기준으로 존재를 가차 없이 심판하는 시스템 속에서, 더구나 이처럼 종교를 저버린 시대에 우리의 정신이 버텨낼 수 있으려면 비물질적인 가치에 초점을 맞춘 다른 평가방식이 절실해진다.


(P74)'부모 되기'란 겉보기엔 전혀 대수롭지 않은 일들, 가령 학교 숙제를 도와주거나 아이가 만든 레고 공항을 칭찬해 주는 순간에도 마천루의 기초를 다지는 작업만큼이나 까다롭고 고된 작업을 매일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P80)이 달콤한 삶. 그리고 배후에서 전개되는 어른의 고달픈 삶. 이 둘의 대비를 인식할 때면 벤의 눈가는 축축해졌다... 그가 눈물 나는 이유는 슬퍼서가 아니었다. 세상의 아주 많은 것들이 아름답지도 순수하지도 않건만, 유년기에 속한 어떤 특별한 것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순수하기 때문이었다.


(P85) 부모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금세 화를 내지만, 아직은 부모 때문에 화내는 건 아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단지 원초적인 보살핌과 즐거움뿐이다. 부모의 기질이나 습관적인 행동을 통해 엿볼 수 있는 많은 복합적인 모순들에는 별 감응이 없다. 자비로운 생물학적 설계 덕분에 우리는 부모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게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의 부모가 진짜 미친 인간들이라는 걸 그대로 명확히 깨닫기 시작한다.


(P87)벤이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것은 아빠를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아빠가 엄청 대단하지도 지독히 끔찍하지도 않은 사람임을 알게 되고, 언젠가는 아빠를 한쪽으로 말끔히 치워놓고 자기들의 삶을 살아가길 바랐다.


(P138) 결혼에 대해 엘로이즈가 품었던 기대 가운데 어떤 것들이 지나치게 순진했듯이, 외도에 대한 벤의 소망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생활이 안기는 실망에 대한 해결책으로 외도를 생각하는 것은 결혼이 우리 존재 자체의 실망에 답이 되어줄 거라는 생각만큼이나 미성숙한 것이다.


외도의 근본적 '오류'는 결혼의 경우와 동일하게 그 속에 담긴 이상주의에서 비롯된다. 비뚤어지고 가망 없어 보이는 일에 말려드는 것 같지만, 사실 외도는 마음속의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외도가 결혼의 불충분한 요소들을 마술적으로 정리해 주고, 잘 지어낸 알리바이로 복잡 미묘한 기대들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는 신념을.


(P164)벤은 극적인 운명을 원했다. 그런데 자신이 이미 그런 운명을 가졌음을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을 잘 지켜내는 것, 온전한 정신상태와 생활할 수 있는 경제력을 유지하고, 결혼생활에서 살아남고, 아이들이 잘되는 것, 이런 계획들은 노르웨이 시인의 서사시만큼이나 영웅이 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를 그럭저럭 계속해나가는 단순한 일. 이것이 진짜 용기이며 영웅주의다. 헬리콥터 안에서의 짧은 순간, 그리고 그 뒤로도 가끔씩 우리의 영웅 벤은 이 과제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너무 솔직하고, 너무 그럴듯한.....

극 사실주의적인 글을 읽다 보면 이게 소설인가? 다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랑에 빠지고(그렇다고 착각하고), 결혼을 하고, 삶을 지탱하면서 겪는 평범한 사람의 생각들.


결혼을 앞두거나 특히 아직 콩깍지가 벗겨지지 않은 사람들이 이 글을 본다면,

지질한 남자의 자기변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너무 당연하고 너무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다.


남자의 관점에서 썼다지만, 인간적으로 이해될 정도의 디테일함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이 정도 글은 써야~ 글 쓴다고 하는구먼~~


사람을 관찰하고,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고, 또 생각해 보고...

집요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글들을 읽다 보면 묘하게 철학책을 읽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한국사람들이 특히 알랭 드 보통 책을 좋아한다는데...

나도 한국 사람이라 그런 건가?

치명적이다. 약 오를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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