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낙원이 자살기도를 한 지 38시간 후의 일이다. 그녀는 허리를 부여잡은 채 병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 오래된 허리디스크가 만성이 된 탓이다.
“계속 허리가 불편하시면 정형외과 협진을 받아보시죠. 원하시면 제가 요청을 해드릴 수 있어요.”
“아뇨…. 아직 참을 만해요. 지금은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사실 이건 굳이 고쳐야 할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디스크 같은 사소한 병을 고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까지 결심한 사람을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이 있을까. 주검을 가장 먼저 발견할 사람에게 느낄 송구함. 단정치 못하게 죽어간 스스로의 꼴에 대한 부끄러움. 나를 발견한 이의 삶에 오래 남을지도 모를 충격과 고통. 본인은 이미 이 세상에 없음에도, 죽음 이후의 일까지 걱정하며 벌벌 떠는 것이 낙원의 병이었다. 그녀는 평생 그녀의 이름과는 달리 낙원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왔다.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OO대학교 병원 신경정신과 폐쇄병동이다. 사람이 가장 많이 죽는 곳은 어디일까. 누가 어떻게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 죽은 자를 처리하는 것이 익숙한 곳.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 곁에서 그의 가족들이 종일 울며 비는 곳, 생에 대한 마지막 희망과 염원이 종종 무참히 무너지는 곳.
낙원은 바로 그곳에서 조용히 죽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폐쇄병동 또한 만만치 않다. 이곳은 그 어떤 죽음의 그림자도 들이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마저 감도는 곳이었다.
폐쇄병동은 네모나다. 이중 잠금장치가 달린 문을 통과하면 성인 다섯 명이 가로로 설 수 있을 만큼 좁고 긴 복도가 나온다. 복도 왼쪽에는 네모난 병실 네 개와 네모난 화장실이, 오른쪽에는 네모난 간호 스테이션과 네모난 집단치료실이 붙어 있다. 집단치료실에는 네모난 탁자 하나가 중앙에 놓여 있을 뿐 특별한 것은 없다. 이 병동에서 동그란 것은 시계를 제외하곤 어떤 것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곳에 들 수 있는 것과 들 수 없는 것은 엄격하게 나뉜다. 첫째, 여기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이거나 정신병적 징후를 전혀 보이지 않는 의료진뿐이다. 둘째, 쇠, 유리, 끈처럼 죽음을 연상시키는 물건들은 모두 금지다. 작은 샤프 하나, 머리를 묶는 고무줄 하나도 허용되지 않는다. 병동의 화장실 문에는 잠금장치가 없다. 대신 장애인 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 열림/닫힘 버튼이 달려 있다. 깜빡하고 누르지 않으면, 혹은 일부러 열어두면 누군가가 볼일을 보는 모습을 그대로 마주하게 된다. 샤워기는 당연히 없다. 어떤 환자가 샤워기 호스로 목을 맬지 모를 일이다. 브래지어, 민소매, 책의 가름끈.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짧은 끈마저도 이곳에서는 위험물이다.
입원 첫날, 짐 검사를 하던 간호사는 낙원의 책에 달린 끈들을 모조리 잘라갔다. 책 끈으로 어떻게 자살을 한단 말인가, 낙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병동 내 책장에 꽂힌 책들에는 멀쩡한 가름끈이 달려 있었다. 억울해도 이곳에선 따질 곳이 없다. 이곳은 그저 그런 곳이었을 뿐이었다. 몇 권의 책으로 흐르지 않는 것 같은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이곳의 시간은 끈적거린다. 공기에 엉겨 붙어 있다. 시간은 끔찍하게 게으르다.
병실의 한 벽면이 온통 창이다. 네모난 창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우울증 환자, 조현병 환자, 망상병 환자들의 약점은 빛이기 때문이다. 벽을 가득 채우는 창엔 꼼꼼히 쇠창살이 덧대어져 있다. 창문을 열고 닫는 것은 멀쩡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권리였다. 이곳에선 당장 사람이 문을 열고 뛰어내려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용케 쇠창살 사이를 통과한 빛의 그림자가 흰 이불 위에 진다. 병실은 6인실. 침대는 6개. 6개의 침대와 6개의 캐비닛. 온 병실이 훤하니 뻥 뚫려 있다. 병실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가림막 커튼 대신 CCTV가 있다. 간호 스테이션에 연결된 이 CCTV는 병실의 모습을 생중계하고 있다. 이상한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올 수 있도록.
이 죽음으로부터의 철옹성에서 권낙원은 과연 어떻게 자살할 수 있을까? 비결은 바로 가슴에 있다. 아니, 마음속 말고 젖가슴 말이다. 그녀는 아무도 몰래 브래지어를 하고 있다. 몰래 브래지어를 하고 있다는 말이 우습기는 하지만, 아무튼 인체에 치명적인 위험을 가할 수 있는 이 살상무기를 가슴에 차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무기를 소개해 보겠다. 속옷. 더 세세한 분류로 따지고 들어가면 패드가 없는 브라렛이다. 얇은 면 소재. 통기성 좋은 소재로 만든 천이 삼각형 모양으로 두 조각 붙어 있고, 나머지 부분은 이름만 들어도 털이 쭈뼛 솟을 만큼 무시무시한 ‘끈’과 ‘밴드’로 만들어져 있다. 가슴을 가리는 천 밑으로 브랜드명이 일렬로 쭉 인쇄되어 있다. 색상은 순백. 살상 무기에 가장 적합한 색이 아닐까.
이 흉흉한 것으로 그녀는 어쩔 생각인가. 이 길쭉한 흰색 천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일은 단 두 가지. 가슴을 가리거나, 목을 매거나. 이제 실행 날짜가 중요하다. 낙원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제 그녀의 죽음은 그녀가 얼마나 괴로운지와는 관계가 없었다. 그녀는 답을 내렸다. 약 4일 후 막냇동생 수덕의 대학 졸업식이 있다. 10살 터울의 남동생이 뱃속에 있던 날을 떠올린다. 따뜻한 방바닥. 낙원, 그녀의 동생 정원과 그녀의 어머니가 함께 누워 막내의 이름을 어찌하면 좋을지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엄마, 꼭 ‘수’가 들어가야 해?”
“그럼, ‘수’는 돌림자라 꼭 들어가야 해.”
“그럼 ‘수현’이 어때?”
낙원은 가장 세련됐다고 생각한 이름을 말했다. 옆에 누워 낙원의 손을 조물딱거리며 머리를 굴리던 정원은 샐쭉해져 말했다.
“아기도 ‘원’이 들어가면 안 돼? ‘수원’이로 하자.”
“그건 우리가 사는 동네잖아. 친구들한테 놀림당할 거야.”
낙원은 막내가 이름으로 놀림당할까 섬뜩해졌다. 안 그래도 그녀는 ‘권낙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고초를 겪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으로 조롱을 겪는 것은 그녀만으로 충분했다. 몇 달이 지나 막내가 태어나고, 어머니는 청천벽력 같은 이름을 낙원과 정원에게 전해주었다. 막내의 이름은 ‘수덕’이라고. 수덕이라고?! 지천에 널린 좋은 이름을 두고 어째서 수덕이인가! 낙원은 눈앞이 아찔해져 하루를 꼬박 울었다. 동생의 앞날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낙원의 우려와는 달리 수덕은 이름과 상관없이 건강하고 단단하게 자랐다. 그렇게 자라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게 되는 날까지 온 것이다.
그날 온 가족이 다 함께 모이기로 했었는데… 낙원은 갈 수 없을 것이다. 자살기도 후 폐쇄병동에 입원한 후로부터 ‘온 가족’이라는 말에 낙원은 더 이상 포함될 수 없다. 그녀에게 가족이란 증오와 사랑과 죄책감과 안쓰러움과 눈물겨움을 아무렇게나 섞어 한 덩이를 뚝 떼어낸 것 같았다. 그녀가 지금까지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유일한 이유이자,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도망치고 싶은 지겨운 것. 다른 사람들의 가족도 비슷할까. 병원을 가지 않고 고집을 부리며 한 달 동안이나 기침을 달고 사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듣기 싫어 문을 닫는 것. 걱정보다도 짜증이 성마른 고개를 드는 것. 그렇지만 새벽에 몇 번씩이나 기침을 하지는 않는지 방문을 열어보게 되는 것.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물겹게 지긋지긋한 것이 그녀에겐 가족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수덕의 졸업식 날까지는 죽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졸업식이 끝난 그날 새벽은 어떨까? 그전에 일을 실행했을 경우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의 잔치를 망치게 될 것이 아닌가. 더욱이 매해 졸업식 시기가 올 때마다 가족들이 슬픔에 젖게 되지는 않을지. 매년 기일이 온다고 해서 죽은 이를 그리워하기만 할 가족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들은 그리워하기보다 후회와 죄책감을 칼로 벼려, 그걸 쥐고 제 가슴을 난도질할 것이다. 차라리 죽은 이를 원망했으면 하지만, 그런 법은 배우지도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건 안 되지.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졸업식이 끝난 직후가 아니라 최소한 1주일은 지난 후로 정해야겠다. 연례행사와의 연결고리를 최대한 느슨하게 하되 낙원이 생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한계를 고려한 날짜였다. 여기까지 정리를 마친 낙원은 흉흉한 살상 무기를 끌러 벗었다. 차곡차곡 정성스레 개어 캐비닛 두 번째 서랍을 열어 팬티 속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완벽한 계획과 완벽한 도구가 준비되어 있다. 생존 본능을 거스르고 스스로 목숨을 버릴 궁리만 하는 정신병원 폐쇄병동 입원 환자 낙원은 그날 처음으로 기분 좋게 자리에 누웠다. 조금 웃었던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