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낙원이 자살기도를 하기 한 달 전의 일이다.

by 강리

이것은 낙원이 자살기도를 하기 한 달 전의 일이다. 새벽 6시, 그녀는 어슴푸레 빛이 스며드는 푸르고 서늘한 새벽 속에서 눈을 뜬다. 핸드폰을 확인한다. 10분만 더 자고 싶은데… 하지만 그럴 수 없는 노릇이다. 그녀가 출근해야 하는 카페는 걸어서 30분,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있다. 7시까지 출근을 하려면 지금 당장 눈을 떠야 한다. 따릉이를 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사정이 달랐겠지만, 지금 당장 천 원조차 없는 낙원은 꼼짝없이 발로 걸어야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행 잔고를 확인해 보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은 그녀가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 천 원조차 없는 비참함. ‘가난이란 인간에게 오로지 비참한 포즈만을 허락하는 것.’ 누군가는 가난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썼다. 낙원은 어젯밤 컵라면을 샀다. 먹을 것도 돈도 없으니 그녀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빤했다. 그녀는 컵라면을 계산대에 올리기 전까지 은행 잔고를 다섯 번씩 확인했다. 1,670원. 컵라면이 1,500원이니 어쨌든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낙원의 머릿속에서는 잔고가 부족하다는 경고음이 울린다. 이 경고음은 결제가 끝나기 전까지 울린다. 결제가 완료되면 낙원은 짐짓 태연한 척을 하며 컵라면을 챙겨 나간다. 돌아가는 그녀의 손가락이 덜덜 떨린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여전히 낙원은 사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다.


그렇게 오늘도 낙원은 비참한 포즈로 눈가에 짓무른 눈곱을 훔치고 젖은 걸레 같은 몸을 일으킨다. 일을 하러 갈 시간이다. 낙원은 매일 목을 매달 나무를 고르며 똑같은 길을 걷는다. 카페로 향하는 길엔 커다란 숲이 있었다.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이 연두색이다, 초록색이다. 수백 그루 아니 수천 그루까지도 될 것 같았다. 새벽 어스름 구름 사이로 옅게 내리는 빛에 나무가 반짝인다. 나뭇잎 색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연두색, 초록색, 연녹색, 진녹색, 풀색, 연갈색, 청록색. 눈에 보이는 색에 어울리는 단어를 찾으며 낙원은 이 말들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색에 이름을 붙이고 가장 튼튼한 나무를 찾는 것이 버릇이 된 지 반년. 이 나무들 중에 낙원을 위한 나무는 어디 있을까. 그녀는 매일 목을 매달 나무를 찾으며 걸었다. 조금도 울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어, 낙원이 왔어?”


낙원이 매일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은 여의도 한복판에 있는 작은 카페로 단골손님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네 다방 같은 곳이다. 낙원이 이곳에서 일을 한 지도 3개월째, 그새 새로운 단골손님도 생기고 인사를 주고받게 된 손님도 꽤 생겼다. 사장이 우스갯소리로 예쁜 아르바이트생 덕분에 단골이 늘었다고 했을 때 낙원은 웃었다. 진짜 그런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며 맞장구까지 쳤었다.

그녀가 하는 일은 간단하다. 가게 문을 열면 처마 앞을 빗자루로 쓴다. 지난밤 인간 말종들이 가게 앞에 흘리고 간 담배꽁초와 가래침을 치운다. 낙원은 생각한다. 애먼 영업장 앞에 담배꽁초를 아무렇지 않게 버리고 가래를 긁어 뱉는 인간은 어떤 인간인가? 아마 평범한 보통의 인간일 것이다. 우리 옆에 서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타고, 출근을 하고 일을 하는 평범한 인간. 어째서 수치심이 없는가. 낙원은 그 사실이 소름 끼친다. 이내 본인의 죄를 샅샅이 뒤적이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인간 말종과 다름없이 살았던 날들이 떠오른다. 추한 인간을 볼 때마다 그 모습이 나와 얼마나 닮았는지를 지독하게 검열하는 것. 이 세상을 떠나기로 다짐하는 것에 아주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그 사람 결국 자살했다며.”


출근 시간의 바쁜 러시가 한 차례 지나고 사장이 툭 낙원에게 말을 던졌다. 그들은 종종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 통하는 곳이 있고 성격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둘은 터놓기 껄끄러운 진심을 어렵지 않게 나누곤 했다. 이 근처 회사에서 떠돌던 소문을 시작으로 사장이 입을 열었다. 여의도의 작은 운용사에서 한 상무 이사가 죽었다. 횡령이라 하기엔 너무나 적은 돈을 훔치려다 하루 만에 법무 부서에 걸렸다고 한다. 감사 일정이 정해지고 조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하루가 안 되는 시간에 그는 자기 차에서 번개탄을 피워 죽었다.


“그러니까요. 회사 돈을 횡령했다가 걸렸다던데요.”

“아니, 그것 하나 걸렸다고 왜 죽어? 다 쓰고 나 죽지. 감방을 가면 얼마나 가 있다고. 아님 횡령한 돈을 써서 보석으로 풀려나도 되잖아.”

“글쎄요… 죽는 것보다 더 괴로웠던 일이 있었던 것 아닐까요.”


낙원은 웃으며 대답했다. 사장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왜?’ 하는 입모양으로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내린다. 죽음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언제나 그들이 좋아하는 놀이였다. 사장은 본인의 말을 이어나갔다.


“뭐하러 죽어? 몇 년 감옥에서 썩다 나오면 될 것을. 죽을 정도의 일이냐고 이게. 살인을 했어, 살인 미수를 했어? 겨우 횡령?”


한 인간이 죽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말이 덧붙어 있어야 하는가? 어떤 이유가 있어야 삶과 죽음을 맞바꾸었을 때 손해가 나지 않고 ‘이만하면 됐군’이라며 흡족해할 수 있는가. 씁쓸함을 지우지 못하고 낙원이 대답했다.


“살기에는 너무 수치스러우니까요.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덜 무서웠던 거겠죠.”


겨우 횡령 같은 것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을까. 얼마나 주저했을까. 그따위 횡령 하나를 하려고 얼마나 오랜 순간 비참했을까. 얼마나 절박했을까.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스스로에게 얼마나 절망했을까. 삶은 때때로 우리에게 기어이 비천함을 선택하라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라고 강요한다.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잖아요. 근데 그걸 온 세상이 알았다는데 어떻게 살아. 나는 못 살아.”


여기까지 말을 마친 낙원은 사장의 시선을 슬쩍 피하고 말았다. 은연중에 진심이 삐죽 튀어나온 탓이었다. 사장은 그런 줄 아는지 모르는지 ‘어엉’ 하는 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카운터를 툭툭 두드렸다.


“그래도 죽으면 아프잖아.”

“네?”


푸흡, 난데없이 해맑은 사장의 말에 낙원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왜, 맞잖아. 사장도 함께 웃는다. 싱겁다. ‘아프잖아.’라니. 수치심에 죽을 수도 있고 아픈 것이 싫으니 살 수도 있는 것이다. 낙원은 웃었다. 하루 중 낙원이 웃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럼 사장님은 아프지 않게 죽을 수 있는 버튼이 있다면 누를 거예요?”

“만약 힘들 때 같았으면 고민도 안 하고 바로 누를 거야.”

“진짜요? 그럼 남은 부인이랑 아들은 어쩌고요?”


놀라운 대답이었다. 평소 아내와 아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아끼지 않던 사장이었다. 그런 가족을 두고 선뜻 죽음을 선택하다니.


“무슨 상관이야? 죽으면 끝인데. 내가 힘들어 죽겠다는데! 어차피 살 사람은 알아서 다 살아.”


사장은 난 내가 제일 중요해라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죽으면 다 끝인데, 살 사람은 다 살아.


이기적이고 솔직하고, 어떻게 보면 천박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천박하고 가벼운 것이 반드시 필요할 때가 있다. 진중하고 올곧은 것만 따라가는 일은 숨이 찬다. 그녀는 이미 충분히 버겁고 모든 것이 너무 무겁다. 그러니 이것은 낙원이 들어본 말 중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가끔 그녀도 죽음 앞에서 머뭇거렸다. 끔찍하게 엉겨 붙는 우울의 아귀에서, 벌어도 벌어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아가리에서 탈출하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어린 두 동생의 뽀얀 얼굴이 둥실, 늙은 아버지의 지친 얼굴과 작아진 손이 둥실 떠올랐다. 내가 이들을 두고 떠나면 나만 바라보고 있는 저들의 삶은 어쩌나. 내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기에 죽어서도 끝나는 것이 아니면 어쩌나. 나의 도피가 저들의 지옥이 되어 나 또한 그 지옥을 영영 떠돌게 되는 것은 아닐까.


죽음을 생각하고 이별을 떠올릴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보고 싶어지는 동생의 얼굴이 둥실둥실 떠오르던 밤. 밤낮없이 침대에 누워 몸을 일으키지도 눕히지도 못하고 눈물만 줄줄 흘리던 날들. 그런 낙원에게 살 사람은 산다는 말은 구겨져 내동댕이쳐 두었던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말이었다. 그러니 죽으면 다 끝이라는 말은 한 줄기 구원처럼 느껴졌다. 내가 죽어도 내 뒤에 살아갈 사람들의 인생은 계속된다는 것. 그들은 평범하게 웃기도 하고 때때로 슬퍼하기도 하며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죽으면 끝, 살 사람은 산다는 말을 혼잣말로 되뇌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사장이 낙원을 물끄러미 쳐다보길 얼마 지나지 않아, 어색한 목소리 애매하게 미소 짓는 얼굴로 사장이 말을 한다.


“낙원 씨. 근데, 죽지 마.”


우리 카페는 어떡해 하고 껄껄 웃는 사장에게,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삼키고 낙원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 제가 왜 죽어요.”

“그치? 정말 안 죽지?”

“예예. 죽을 땐 미리 알림 넣어드리고 갈게요.”

“응. 나도 죽을 때 미리 가게 문 열어두고 갈게. 가게 좀 부탁해.”


하하하.

하하하하.


낙원은 웃었다. 가슴 속에 어렴풋한 섬뜩함과 뜨겁게 울컥이는 무언가를 느끼면서. 내가 죽으려는 것을 미리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돼. 폐를 끼치지 말자. 하지만 언젠가는 이 카페를 그만두어야 하는 것을 알기에 낙원은 그만큼 가슴이 미어졌다. 그래. 결국 이런 괴로움을 벗어나는 방법은 죽음뿐이다. 죽음의 냄새를 풍겨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사장님. 그때, 죽지 말라고 해줘서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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