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낙원이 자살기도를 하던 당일의 일이다.

by 강리

이것은 낙원이 자살기도를 하던 당일의 일이다. 그날 토요일 저녁 8시 40분. 그녀가 마지막 남은 돈으로 샀던 복권의 추첨일이었다. 돈 때문에 죽으려는 것이 아닌데, 어째서 돈이 있으면 살 수도 있다 생각했을까. 그렇다면 그녀는 돈이 없어 죽는 것이었을까. 낙원은 기약 없는 행운에 자신의 생을 맸다. 멍청한 희망. 복권이 당첨된다면, 그 정도의 행운이 있는 삶이라면 더 살아도 된다는 허가라도 생기는 것일까. 당첨 번호를 확인한 낙원의 손이 떨림을 멈췄다. 몸이 차게 식는다. 그녀에게는 당연히 당첨의 운이 따르지 않았다.

사는 것을 그만두고 죽음을 선택한 지 반년. 그녀는 어째서 허튼 것에 희망을 걸고 본인이 단념한 길을 힐끗힐끗 뒤돌아봤던 것일까. 희망. 희망은 바랄 희(希)에 바랄 망(望) 자를 쓴다. 바라고 바라는 것. 우리는 그것을 희망이라 부른다. 하지만 바라고 바라는 것은 으레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보통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절망한다. 바라볼 것을 모두 잃어 아무런 희망이 없는 상태. 사전에서 정의한 절망의 뜻은 그러했다. 끊을 절(絶)에 바랄 망(望). 바라는 것을 끊어낸 인간의 상태를 우리는 절망이라 부르고 있다.


낙원은 드디어 마지막이 왔음을 직감했다. 더 이상 살아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마음이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이 삶이 휘두르는 대로 휘청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는 산뜻한 마음. 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 처음으로 일어나는 것이었다. 죽기 위해.

그녀는 왜 그렇게 죽어야만 했을까. 그녀는 죽음보다도 사는 것이 공포스러웠다. 삶이란 무릇 형태가 있는 법이다. 추악하거나 아름답거나 보잘것없거나 어찌 되었든 그려가는 궤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 살아가며 어떤 것을 추구할 것인가, 또는 추구하지 않을 것인가. 경멸할 것인가 경외할 것인가. 사랑할 것인가 증오할 것인가. 인간이 선택하는 모든 행보에 따라 무릇 그 형태가 결정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낙원의 삶의 형태는 어떠했는가.

낙원의 삶은 언제나 후회하는 쪽으로 흘렀다. 앞으로의 그녀는 삶에 기대되는 것이 없었다. 공포스러웠다, 후회할 것과 슬퍼할 것을 늘리기만 할 삶이. 그녀는 많은 일에 실패했다. 대부분의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소중한 것을 잃었다. 대부분의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태생적으로 맷집이 약한 인간이 있는 것이다. 그녀는 작은 실패와 상실에도 쉽게 쓰러졌다.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 죽음보다 더 무서웠다. 그 고통을 참아가며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이유를 버렸다.


그녀는 가장 먼저 핸드폰의 유심(USIM) 카드를 꺼내 잘랐다. 신고가 들어가면 핸드폰 위치 추적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 메신저를 탈퇴했다. 죽음을 준비하며 조사했을 때 타살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메신저와 문자 기록을 조회한다는 공포스러운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개인 계정들과 핸드폰을 초기화하고 나서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한 지 한참 된 서랍장을 열어 다른 사람이 손대기 애매한 것들을 집어 종량제 봉투에 넣었다. 그녀는 종량제 봉투를 살 돈이 없었다. 보통 종량제 봉투는 낱개가 아니라 묶음으로 팔기 때문에 금액이 만 원을 웃돌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지막으로 가는 길에 내 방을 지저분하게 두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인데, 종량제 봉투가 없어 죽지 못한다는 사실이 말이 되나. 한 가지 방법을 찾았다. 편의점에서 다른 물품을 사고 봉투에 담아달라고 하면 종량제 봉투 한 장에 담아준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녀는 천 원이 안 되는 과자를 하나 고르고 종량제 봉투에 담아달라 부탁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열 번이 넘게 잔고를 조회하고 있었다. 카드를 넣고 결제 완료가 뜨기까지 그 찰나의 순간.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심판을 기다렸다.


“완료되셨어요.”


점원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편의점을 나선다. 그녀는 종량제 봉투를 살 수 있음에 기뻤다. 그렇게 어렵게 얻어온 종량제 봉투였다. 그녀는 신중하게 쓰레기와 쓰레기가 아닌 것을 분류했다. 브래지어, 속옷, 스타킹, 양말. 이것은 쓰레기. 나머지 입을 수 있는 옷은 동생이나 친구들이 입을 수 있도록 잘 개어서 두었다. 머리카락과 먼지가 쌓인 바닥을 청소포로 구석구석 밀고 청소기를 돌린다. 마지막으로 젖은 청소포로 닦기까지 하면 바닥 청소는 끝이 난다. 빨랫대에 널려 있는 옷을 걷어 제자리에 접어 넣고 마지막으로 이불을 손으로 구석구석 펴준다. 낙원은 청소를 하는 내내 마음이 급했다. 혹시나 청소를 하는 동안 누군가 내게 연락을 하진 않았을지 두려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 책의 앞표지를 뜯어 몇 자를 적는다. “장례는 치르지 말아 주세요. 빚은 갚지 말고 상속 포기 하세요. 장기는 기증해 주세요.” 미안하다거나 나의 마음이 어떻다거나 삶을 되돌아보거나 하는 말은 적지 않았다. 겨우 변명뿐인 말이다. 그들을 등지고 도망치는 주제에 이해를 바랄 수는 없으니까. 유서라고 하기엔 애매한 행동 지침서를 쓰고 그 뒤엔 엄마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둔다. 다른 사진은 이미 오래전에 전부 버렸지만 엄마의 얼굴이 있는 사진은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으므로 가족의 몫으로 남겨둔다. 이제 집을 나선다. 직접 꼬아 만든 로프와 발판으로 쓸 접이식 책상, 머리에 뒤집어쓸 봉투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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