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낙원이 자살기도를 한 지 열흘이 지난 후의 일이다. 낙원은 병실의 침대에 누워 있다. 복도에서 들리는 다른 환자의 소음들. 간호사와 환자 사이에 오가는 고성을 들으며 낙원은 침대에 누워 있다. 폐쇄병동에서는 핸드폰을 사용할 수가 없다. 대신 복도 한복판에 붙어 있는 공중전화를 사용해 외부와 소통할 수 있다. 20년간 본 적이 없었던 클래식한 디자인의 공중전화. 전화는 하루에 세 번 사용할 수 있었다.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의 유일한 낙은 전화 시간이었다. 낙원은 어째서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생각했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듣는 이에게는 상처로 남으리라고. ‘그때 내가 징조를 알았더라면.’ ‘내가 그때 다른 말을 했었더라면.’ 남은 자들이 평생을 안고 가야 할 후회와 죄책감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낙원은 침묵을 택했다.
“짐 검사할게요.”
병동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짐 검사를 한다. 환자들이 어떤 ‘무기’를 갖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옆 침대에 누워 있던 환자는 일전에 에어컨 나사를 빼서 자해를 했었던 일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았었다. 그렇기에 짐 검사는 당연한 일이었다. 낙원은 앞 침대를 수색하는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그 옆에 앉아 있는 승연 씨도 보았다.
승연 씨는 낙원이 가장 무서워하는 환자였다. 대부분 환자의 병명을 짐작하고 있던 낙원이었지만 그녀만큼은 어떤 문제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귀 밑으로 싹둑 자른 칠흑같이 검은 머리. 새하얗고 작은 얼굴에 날카로운 눈은 마치 칼로 찢어 놓은 자국 같았다. 직선으로 오뚝하게 뻗은 코에 핏기가 없는 작은 입술. 오래된 일본 그림에 나올 것 같은 선으로만 이루어진 얼굴이었다. 그녀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기행을 일삼는데, 그 일례로 매일같이 손에 침을 뱉어 모으는 것이 있었다. 모은 침은 그대로 침대 시트에 떨어뜨리는데, 바로 앞 침대에 위치한 낙원은 매번 그 순간을 목격해야 했다. 그녀가 어느 정도로 공포에 휩싸였던지 하루는 승연이 밤새도록 그녀의 침대 옆에 서서 낙원을 내려다보는 꿈을 꾸기까지 했다. 승연은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실 누구와도 이야기가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승연의 부모는 언제나 승연에게 먹을거리와 깨끗한 옷가지를 매주 보내왔다. 그것들은 승연의 캐비닛에 쓰레기처럼 뭉쳐져 있었다. 낙원은 생각했다. 저 여자는 어째서 살고 있을까? 그녀를 책임지고 있는 가족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승연의 짐 검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때, 낙원은 불현듯 ‘살상 무기’의 존재가 떠올랐다. 그녀의 속옷 사이에 감춰 두었던 브라렛을 미처 치우지 못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그녀의 무기는 간호사의 손에 떨어지게 된다. 낙원은 손에 식은땀이 축축하게 배는 것을 느꼈다. ‘지금 꺼내서 내 몸에 차면 괜찮아. 모를 거야. 절대 모를 거야…’ 간호사가 뒤돌아 있는 사이 낙원은 재빠르게 브라렛을 꺼내 환자복 안으로 숨겼다. 그때, 승연과 눈이 마주쳤다.
승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낙원을 응시했다. 낙원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승연을 바라보았다. 승연은 지금 당장 간호사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낙원이 무언가를 뱃속에 숨겼다고. 하지만 낙원은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그 정도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숨 막히는 침묵 속에 간호사가 낙원의 침대로 왔다. 짐 검사를 시작했고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았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간호사가 문을 닫고 나간 뒤에야 낙원은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환자복 안, 맨살에 닿은 브라렛의 끈이 홧홧하게 가슴을 눌러왔다. 승연은 여전히 낙원을 보고 있었다. 낙원은 승연의 시선을 피하고자 창문으로 눈을 돌렸다.
낙원이 유일하게 병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정하루는 조현병 환자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아무런 병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 다만 자신의 귀엔 도청 장치가 있고 그것으로 외부와 소통할 수 있을 뿐이지 환청과 환시와는 거리가 멀다고 믿고 있다. 낙원은 하루가 좋았다. 하루는 밝았고 말을 할 수 있었고 상냥했다. 사랑스럽고 수다스러운 조현병 환자. 처음 병실에 입원했던 날 하루는 자두 사탕 두 개를 내밀며 “두 개예요. 한 개는 정이 없으니까. 한국인은 두 개.”라며 화사하게 웃었다. 그때부터 낙원은 하루가 좋았다. 하루는 편견이 없었다. 승연을 두려워하는 것은 낙원과 마찬가지였지만, 모두가 꺼려하는 환자와도 거리낌 없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하루가 상담을 다녀와 병실에 들어오자 낙원은 조금 전 브라렛을 빼앗길 뻔한 이야기를 하며 어떤 기지를 발휘했는지 영웅담을 늘어놓으며 한참을 깔깔거렸다. ‘정말 죽을 뻔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때였다. 승연이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
“재밌는 얘기 없어요?”
불쾌한 기행을 일삼는 사람, 장애인, 더러운 민폐 덩어리라고 생각한 사람. 도대체 어떤 이유로 살아있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느냐고 입을 열었다. 낙원은 그대로 굳어 하루를 쳐다보았다. 하루는 잠시 멈칫하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향한다.
“재밌는 얘기요? 글쎄요. 여기 앉아서 얘기할까요?”
낙원은 침대에서 하루가 바닥에 앉아 승연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넋 놓고 지켜본다. 그녀는 순간 가슴에 무언가 푹하고 찌르고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찌르고 간 자리는 너무나 깊고 공허해서 바람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하루는 승연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다. 매일 밥을 먹지 않고 복도 바닥에 누워 있는 승연에게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저는 콩국수 좋아해요. 콩국수 먹고 싶어요.”
콩국수. 그녀는 콩국수를 좋아한다. 그녀도 평범하게 콩국수를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그 말이 무에라고. 낙원은 순간 부끄러움이 몰려와 속절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고자 이불을 뒤집어썼다. 낙원은 그곳에 함께 가 앉고 싶었다. 승연과 하루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곳에, 승연의 발치에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하게 미친 낙원은 그저 부끄러움에 몸부림칠 뿐이었다. 삶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죽으려 한 처지인 주제에, 그녀는 감히 누구의 삶을 재단했던 것인가. 낙원은 언제나 자신의 삶이 부끄러웠다. 죽음이 임박한 병에 걸렸음에도 삶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어린아이들을 보며, 그들을 악착같이 보살피는 노인들을 보며 낙원은 자신의 생에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고자 했다. 하지만 삶에는 자격이 필요 없다. 생에는 허락이 필요 없다. 삶에는 그저 궤적이 있을 뿐이다. 그것을 짊어지고 가는 것은 온전히 본인의 몫일뿐 누군가의 시선은 공허한 것이었다.
낙원은 언제나 필기가 서툴렀다. 공책 한 줄에 몇 글자를 쓸 수 있는지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공간이 남지 않은 마지막 줄에 닿을 때면 낙원은 어김없이 긴장했다. 으레 다 담기지도 못할 문장을 넘치도록 적으려 애썼으니까. 호기롭게 시작한 첫 문장과 달리, 끝으로 갈수록 글자들은 옹졸하게 뭉그러져 쑤셔 박혔다. 비굴하게 위아래 칸의 빈틈으로 욱여넣어지던 글자들. 낙원은 누가 볼까 두려워 그 페이지를 북북 찢어내곤 했다. 그녀는 늘 그랬다. 자신의 인생도 지저분한 자투리로 남을 것이라 믿었다. 누구도 바라지 않은 칸 밖에 흩어진 낙서 같은 삶. 하지만 자투리로 남는 것이 뭐 어때서? 나도 그냥, 그 지저분한 자투리인 채로 남아있고 싶어. 나도 그냥 콩국수를 먹고 싶어. 아무도 바라지 않는 낙서 같은 삶이라도 콩국수를 먹고 싶었어. 낙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것은 낙원이 자살기도를 한 지 열흘 하고도 10시간 후의 일이다. 그녀는 공중전화 수화기를 든다. 심장의 두근거림으로 옷감이 오르락내리락할 정도로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는 막냇동생에게 전화를 한다. ‘졸업 축하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는 짧은 찰나에 수화기 밖으로 동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건강하게 잘 지내느냐, 졸업식은 잘 끝났다, 누나도 왔으면 좋았을걸. 그토록 듣고 싶던 목소리에 낙원은 울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누나, 나 영어 단어 외울 때 그때 생각났다? 왜 어렸을 때 누나가 게임하고 내가 옆에 앉아서 구경했을 때 있잖아. 그때 가끔 누나가 영어 단어 알려줬었는데. 자취방에서 혼자 토익 단어 외우는데 그때 생각이 나더라고.”
그럼 누나, 또 연락해. 밥 좀 잘 먹고. 퇴원하면 나랑 같이 운동하자.
동생의 목소리가 끊긴 뒤에도 낙원은 한참 동안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수화기를 타고 넘어온 온기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 병실로 돌아온 낙원은 환자복 안에서 살을 파고들던 하얀 브라렛을 천천히 끌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