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이었다.

남이다(1)

by 김은석

그는 관리사무소를 그만두고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그의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전기공사를 했다.

그의 부친은 그에게 배관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따라 하라고 했다.

도면도 없었고, 배관의 종류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배선을 하면서도 전선의 종류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보고 만지고 겪으며, 배우라는 말 없이 시키는 것. 그는 그의 부친의 가르침을 힘겹게 따라갔지만 군말은 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처음으로 드라이버를 맡긴 날, 그의 부친은 자신의 아들이 긴장으로 떠는 손을 보고 드라이버를 빼앗았다.

그가 그의 아버지 밑에 있으며 펜치를 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가 처음으로 그의 아버지에게 칭찬받은 날은, 전기 하고는 전혀 무관한, 콘센트 박스를 묻기 위해 벽을 깬 곳에 시멘트로 땜빵 미장을 한 날이었다.


한 달의 시간이 지나고 3월의 말.

[가공배전 자격증 한번 따 볼래요?]

한 회사의 사장이며 부친의 지인인 xx전기의 남 사장으로부터의 전화에 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남 사장에게 물었다.

“가공배전이요?”

[네. 옥내공사뿐만 아니라 옥외공사도 같이하려면 꼭 필요한 자격증이라 미리 준비해 두면 좋을 거예요. 어때요? 해 볼 생각이면 도와줄게요.]

그는 주변을 향해 휙휙 시선을 돌리더니 조용한 음성으로 답했다.

“조금 생각해 볼 시간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신청은 한 달 전에 해야 돼서 일주일 내로 접수해야 돼요. 빨리 확답해 줘요.]

“네. 내일 제가 연락드릴게요.”

그는 전화를 끊고 검게 변한 폰의 화면을 가만히 내려보았다.

왼손을 들어 검지 손가락으로 폰의 화면을 톡톡 두드리던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죽으러 가는 길인데, 갈려고 하네요.”


저녁 시간, 식탁 앞에 앉아 식사를 하던 그는 맞은편에 앉은 자신의 부친에게 말했다.

“아버지.”

대답 없이 고개를 드는 부친에게 그가 말했다.

“xx전기에서 가공배전 자격증 신청 해준다는데, 다녀올까요?”

그는 입을 다물었고, 이내 부친의 말이 들려왔다.

“할 수는 있고? 내 밑에서나 잘 따라다녀.”

그는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아버지는 한 마디를 보탰다.

"하든가 말든가, 너 하는 건데, 왜 내한테 묻냐"

그는 씁쓸한 표정이 되어 무미건조한 음색으로 말했다.

“... 네.”


이튿날, 그는 xx전기의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공배전 자격증 과정이 어떻게 되나요?”

[전선 꼬고 풀고 별 다를 건 없어요. 아, 승주작업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승주 작업이요?”

[전봇대 오르는 거예요. 고소공포증만 없으면 괜찮아요.]

“저기, 사장님.”

[네?]

“조금은 생각을 해 봐야 할 듯합니다. 그 자격증은 좀 미룰 수 없을까요?”

[음... 별 수 없죠. 그렇게 해요. 일 열심히 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xx전기의 사장 목소리에는 고저도 없었고 다그치는 초조함도 없었지만, 그는 쿵쾅 거리는 자신의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중얼거렸다.

“목숨줄 잡았네요.”

그는 고개를 휘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부친은 그에게 네가 할 일은 없다며 혼자 나가버렸었다.

그는 하염없이 걸었다.

그는 자신의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을 찾아 하염없이 걸었다.

저녁을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운 그는 모두가 잠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갔다.


6개월이 지난 9월,

xx전기의 남 사장의 전화를 다시 받은 그는 부친에게 말하지 않고, 하겠다는 말과 함께 남 사장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속옷과 양말, 상하의 몇 벌 만을 가방에 담은 채 그는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 좌석에 앉은 그가 폰을 켜고 버튼을 누른 후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어머니,”

[어, 와?]

“저 가공배전 시험 보고 올게요.”

[가공 뭐?]

“가공배전이라고, 전봇대로 올라가는 일을 배우는 거래요.”

그는 그의 어머니가 숨을 삼키는 소리를 들었다.

[... 누가 배우라던데?]

“... xx전기 사장님이요.”

그의 어머니가 깊은 한숨을 쉬며 그에게 말했다.

[하... 지금 어디니?]

“시외버스 탔어요.”

[왜... 하... 솔직한 이유는 말하고 가라. 왜 가는데?]

그의 어머니는 한숨을 쉬다가 뭔가 떠오른 것이라도 있다는 듯, 그를 다그쳤다.

그는 잠시 웅얼거리더니 짓씹듯 소리를 씹으며 뱉었다.

그 소리가 말이 되고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되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내 그는 원하는 말을 그의 어머니에게 전하고 말았다.

“... 아버지 회사는 사기당하고 부도나서 접었고,”

다급한 그의 어머니의 음성이 그의 말에 꼬리처럼 붙었다.

[식아, 그건.]

“그런데도 지인 덕분에 직원으로 일 하고 있지만,”

그의 어머니의 음성이 눅눅해졌다.

[식아, 엄마 말 들어봐.]

“저는 옆에 있어 봤자.”

[말 끊지 말고. 응?]

“학교에서 배웠던 것 말고는, 아버지 옆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밖에 못 돼요.”

그의 음성 또한 물에 젖은 듯 눅눅해졌다.

[식아.]

“... 기술이라도 좀 배우고 올게요. 그래야, 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아요.”

그의 말에 그의 어머니는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


(난 이해 못 하겠다. 뭐가 그리 심각한 건지.)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지나가고,

[... 그래.]

“응. 엄마.”

[몸... 조심하고.]

“네.”

[다치지, 말고.]

“응.”

[꼭, 전화하고.]

“응.”

[조심히... 알제?]

“네. 내일, 또, 전화할게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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