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이었다.

회색(9)

by 김은석

아침 7시

그는 몰려오는 잠이라도 떨치기 위해 커피를 한잔 뽑아 마시며 흡연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전기과장이 선객으로 와 있었다.

“빨리 오셨네요?”

그의 말에 전기과장이 돌아보더니 손을 흔든 후,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에게 라이터를 던져주며 과장이 물었다.

“많이 했냐?”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이제 7개 동 끝냈네요. 5개 동 하고 지상 지하, 도면 표시하고 전체 도면에서 각 동 과 공동구역 시설 확대 도면 작성해서 하자 표시.. 하면 할수록 일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한 동에 얼마 정도 시간 걸렸는데?”

“대략 2시간 정도요? 물론 도면 작업 빼고요.”

“5개 동 2시간 잡고, 도면 작업 예상으로 5시간 잡으면 10시간?”

“장담 못하죠. 하하.”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해봐. 하자 인계는 내일 아침 10시까지로 소장이 늦춰줬으니.”

“네. 저 근데...”

“응?”

“약을 안 챙겨 왔네요. 어제저녁 건 그냥 건너뛰었는데, 아침 것까지 건너뛰면 힘들 것 같아요.”

“으이그. 지금 갔다 와. 그리고 한 2시간이라도 쉬다 와라. 간 김에 샤워도 하고. 소장님껜 내가 말해 둘게.”

그가 헤실 웃으면 과장에게 답했다.

“네. 그럼 이대로 갔다 올게요.”

“응? 차 없어?”

“저 운전 못 하는데요?”

“아, 그래. 자전거는 어디 있는데?”

그는 과장의 말에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은 아파트 단지 후문을 향해 있었다.

새벽에 야참을 사기 위해 나갔다가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진 그는 자전거만 그곳에 세워뒀었다.

“멀리도 세워 놨다. 갔다 와라.”

“네. 다녀오겠습니다.”


그는 집에 도착해서 대문을 열었다.

퀴퀴한 담배냄새가 가득한 공간에 뱀이 허물을 벗듯 옷을 벗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시린 물줄기가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와 가슴을 적시고 아래로 떨어졌지만 그는 몸을 뒤로 빼지 않았다.

그의 눈은 감겨 있었고 두 손만 허우적거렸다.

머리에 비누칠을 하고 그 거품으로 세수까지 하고 나서야 그는 흠칫 어깨를 떨더니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에서 몸을 뺐다.

온수로 레버를 돌린 그는 다시 샤워기 아래로 들어가 몸을 씻고는 대충 몸을 닦은 후 욕실에서 나왔다.

먼지가 쌓인 이불 위에 몸을 던지며 쓰러진 그는 코를 고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폰에서 전화벨 소리가 끊어지고 다시 울리기를 두어 번, 그는 이불 위에서 튕겨져 나가듯 몸을 일으켜 폰에서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가 두 통이 있는 것을 보고 있을 때, 띠링하고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화면에 떠오른 팝업 창을 확인했다.


-내가 해보려고 했는데, 못 하겠다. 빨리 와라. 밥 사주께.


그는 폰의 팝업 창들을 지우고 시간을 확인했다.

정오가 조금 넘은 시계를 보고 그는 바닥에 널 부러진 옷들을 세탁기에 집어넣은 후 건조대에 걸어놓았던 옷을 입고는 집을 나섰다.

자전거에 올라탄 그의 고개가 슬며시 내려오더니 흠칫하고 떨린 어깨가 그의 뒷목을 당기고 이내 경직된 그의 몸이 자전거와 함께 옆으로 쓰러졌다.

자신의 무릎을 감싸며 바닥을 구른 그는 악 다문 앞니 사이로 공기를 빨아들이며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낸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고, 페달 위에 다시 발을 올렸다.

그는 아파트가 보이자 자전거를 세워 다시 한번 자신의 옷을 털어냈다.

관리사무소의 건물이 보이고, 흡연장을 본 그와, 흡연장에서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던, 자전거를 타고 있는 그를 본 사무소의 직원들이 서로에게 손을 흔들 때,

그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잠깐 의식이 끊어졌었지만, 그는 어금니를 깨물고 흔드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다시 발작을 하고 의식을 잃은 것은 하자 서류 마감을 위해 하룻밤을 새운 뒤였다.

아침 9시에 퇴근하여 하루의 휴가를 받은 날,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와중이었다.


그는 어두운 새벽 하얀 눈이 쌓인 길 위를 보며 입에 물고 있던 담배에서 니코틴을 빨아들여 자신의 폐에 삼킨 후 중얼거리며 소리를 뱉었다.

“내일 또 x고생하겠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날의 새벽 3시.

그는 지하 주차장을 뛰고 축축하게 젖은 등에서 느껴지는 시림에 몸서리를 치고는 담배를 끄고 사무실로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 돌렸다.

손발이 축 처져 있던 그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생각나네... x팔.”

입술을 스윽 닦아낸 그의 손등 위로 말라붙은 피 딱지가 묻어 나왔다.

등 뒤로 내려오던 차 한 대가 불빛을 비추며 그에게 인사했다.

“그렇게 아프면 오늘은 쉬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는 씨익 웃으며 답했다.

“맡은 일은 해야죠. 오늘은 제가 당직입니다.”


아침이 되고 직원들이 모두 출근한 후, 짧은 회의와 인수인계를 마친 후, 그는 퇴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 주임아.”

소장이 그를 불렀다.

“박 반장에게 들었는데, 어젯밤 일 있었다며?”

그는 중얼거리듯 답했다.

“... 간질 발작으로 략20분 정도... 기절했습니다.”

“본 사람은?”

“입주민 사이에 지하주차장 출입 다툼이 있어서 중재 중이었습니다.”

“그때 쓰러졌다?”

“네. 대략 20명 정도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경찰도 왔다 갔다며?”

“네. 입주민 중 신고 한 사람이 있었나 봅니다.”

“잘 돌려보냈고?”

“네. 박 반장님께서 빠른 대처 해주셨습니다.

“너는?”

그가 소장의 말에 눈을 끔뻑거렸다.

“네?”

“몸 괜찮냐고?”

그는 헤실거리며 괜찮다고 답했다.

소장은 혀를 한 번 차더니 그를 보며 웃었다.

“에휴... 그래. 고생했다. 퇴근이지? 들어가서 푹 쉬어.”

“네. 퇴근하겠습니다.”

그는 사무소를 나와 자전거를 끌고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눈으로 미끄러워진 길을 조심스레 딛으며 걷던 그의 귀로... 말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람이 지랄병 걸린 사람이야?


그는 목에서 우둑 소리가 날 정도로 급하게 고개를 돌렸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애들 보면 어쩌려고 저런 사람을 쓰는 거야.


다시 한번 그의 고개가 반대쪽으로 꺾였다.

하지만 말이 들렸던 곳에는 역시 아무도 없었다.


-신고하면 병원에서 안 데려가나


-관리 사무소라는 게 병신들만 모아놓은 곳인가 보지.


-보지 마. 보지 마. 옮을라. 애들한테 가까이 가는지 지켜봐.


-소장한테 전화 좀 해야겠네.


-대표는 뭐 하는 거야. 일 똑바로 안 하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의 얼굴색이 파랗게 질려갔다.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데, 무수한 소리들이 그의 귀를 덮자, 그는 부리나케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밟았다.

후문으로 나온 그의 뒤로 멀어지는 소리에 그는 어금니를 다물며 빠득하고 이빨을 갈았다.

집에 도착한 그는 숨을 돌리며 몸을 씻고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늦은 오후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다시 자고, 새벽에 일어나 요기를 때우고 다시 자며, 잠으로 하루를 보내고 출근을 한 그는, 하늘을 보며 허탈이 웃어버렸다.


소리가, 멈추지를 않았다.


주간 근무를 버티며 퇴근한 그는 식사도 하지 않고 잠에 빠졌고,

다시 출근을 한 그는 당직을 하는 24시간 동안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다음날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야 겨우 잠에 들었다.


그는, 소장의 앞에 서서 말했다.

“소장님.”

“응? 왜?”

“그만두고 싶습니다.”

그는 소장 앞에 있는 책상 위에 사직서를 올려놓았다.

“... 일 하고 싶다며.”

“죄송합니다.”

“사과는 됐고. 일 해라.”

소장은 그의 사직서를 치우며 대답했다.

“휴가 좀 쓸래? 쉬다 올래?”

“......”

“왜? 무슨 문제인데?”

“간질이, 조절이 안 됩니다.”

“그거 원래 조절 안 되잖아. 약만 먹으면 횟수 준다며?”

“약을 먹어도 횟수가 너무 잦아서, 폐가 될 듯합니다.”

소장의 눈가에 짙은 주름이 생겨났다.

“하... 내가 이래서 직전(직업 전문대학)을 안 쓸려고 했는데. 넌 다른 줄 알았다.”

“죄송...”

소장의 표정이 냉정해지며 그를 노려보았다.

“사과하지 마라. 듣기 싫다. 휴가 줄 테니 좀 쉬다 와. 그래도 안되면 그때 써.”

“... 네.”

그를 붙잡던 소장은 그로부터 한 달 후 다시 쓰러진 그를 발견한 입주민의 민원으로 그의 사직서를 수리해야 했다.

1년 하고 3개월.

그는 처음으로 가졌던 직업을 그만두고 자신의 월세집에서 소주와 맥주와 담배를 쌓아두고 2개월을 박혀 있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간 그의 나이는 서른넷.

더 이상 그의 귀에는 말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겨울인 지금 들릴 리 없는 풀벌레의 울음소리와 매미 소리, 개미들의 바닥을 기는 소리가 그의 귀를 막았다.

그는 제 자리에 멈춰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푸른 하늘을 보며 두 눈을 비볐다.

그리고, 그는 중얼거렸다.


“하하... 회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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