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대
“예슬아. 예슬이는 이름이 왜 예슬이인지 아나?”
예슬은 자신을 무릎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는 아빠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모르는데? 와 예슬인데?”
“류 자는 버드나무 ‘류(柳)’ 자에, 예는 예술의 ‘예(藝)’, 그리고 슬은 옥빛 ‘슬(瑟)’ 자다.
그래서 류예슬(柳藝瑟).
부드럽게 흩날리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세상의 거친 바람에도 부러지지 말고 흔들리며 노래하라는 뜻이다.
어떻노? 좋제?“
“응! 좋다!”
예슬은 아빠의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마냥 신이 나서 깔깔 웃었다.
“예슬아.”
가라앉은 아빠의 목소리에 예슬이 어깨를 흠칫 떨었다.
“와... 와? 그라는데?”
예슬은 아빠의 이어지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타.”
예슬은 머리를 붕붕 흔들었다.
“아, 아이다.”
예슬은 자신을 품에 안아 드는 아빠에게 솟구치는 두려움을 느끼며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어지는 아빠의 목소리에 예슬은 두 눈을 부릅뜨며 외치고 싶었지만,
“내 지켜 볼꾸마. 포기하지 마라. 사랑한다. 우리 딸.”
예슬은 목 안에서 비집고 나오지 못하는 소리를 퍼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거칠게 머리를 들어 올렸다.
무언가가 허벅지를 강하게 밀었고, 몸이 그 반동에 빙글 돌아서 머리가 문지방을 박았다.
“이 시팔년이! 가시나야! 누가 늦잠 자라데! 어!?”
예슬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한 손은 머리를 누르고 한 손은 허리를 눌러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
“이 씹. 이 년이 미칬나!”
퍼억하는 소리와 함께, 옆구리가 터져 나가는 듯 한 고통을 느끼며 예슬은 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웨엑.
꾸역꾸역 삼켰던 찐빵이 모조리 몸 밖으로 나가버렸다.
“니는 오늘 아침 읍다. 내 눈에 밥 묵는 거 들키기만 들키라.”
쾅.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눈앞에 쏟아진 토사물을 보고, 예슬은 울컥하고 올라오는 아린 감정이 너무도 괴로웠지만, 아직 그녀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명치가 왜 아픈지도 모르면서 가슴을 치는 자신의 손을 멈출 수도 없었다.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예슬은 힘겹게 물통을 날랐다.
시간은 아직 새벽이었고, 하늘엔 아직 별도 보였다.
영숙이 아지매는 열심히 가판대를 닦고 있었다.
영숙이 아지매는 예슬이 길어온 물을 양철 양동이 째로 들어 가판대에 부우며 걸레를 움켜쥐고는 힘주어 벅벅 닦아냈다.
“뭘 멀뚱이 서 있노! 물 길어와!”
아줌마의 호통에 화들짝 놀란 예슬은 부리나케 뛰어 다시 물을 길러 갔다.
하지만, 갑자기 비틀거리던 예슬은 그 자리에서 철푸덕하며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예슬은 숨을 고르고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예슬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그녀 자신도 모르게 오물거린 입은 한 사람을 불렀다.
“어무이예...”
하지만 그 소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 듣고 있었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등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낀 예슬은 힘을 이기지 못하고 개구리처럼 바닥에 널 부러졌다.
“이 가시나야!”
짝! 하는 소리가 수 없이 들렸다.
몸을 웅크리고 입술을 깨물며 숨을 참았다.
잘못했다고 빌면 조금이라도 덜 때려줄까.
말이하고 싶어도 숨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꼬르륵 거리는 소리는 왜 이리도 크게 들리는 걸까.
맞은 곳이 더 아픈 건지 꼬르륵 거리는 자신의 배가 더 아픈 건지.
예슬은 몸을 웅크리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끊어지려는 숨을 가늘게 이었다.
씩씩 숨을 몰아쉬던 영숙이 아지매는 손을 멈추며 웅크리고 있는 예슬을 내려다보았다.
“가게 지키고 있그라. 니 또 농땡이 피다 걸리면 진짜 끝인 기다.”
예슬은 숨이 막혀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엉덩이로 전해진 충격에, 바닥을 쓸어 미끄러진 몸이 상회와 가까워지자 그녀는 끙- 소리와 함께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널 부러져 있으면 또 맞을 테니까.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커 질대로 커져서 뱃속이 아파왔다.
서 있는 게 너무 힘들어, 가판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자 커다란 그림자가 머리 위를 덮었다.
“아가야, 와 이라고 있노?”
남자는 자신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리는 예슬을 보고 인상을 구겼다.
여전히 신발은 신기지 않아서 발 피부가 찢어지고 갈라져서 바닷물에 팅팅 불어있었다.
옷은 얼마나 굴렀는지 비린내와 구린내가 등청을 했다.
가관은 얼굴이었다.
얼마나 맞았는지 입술은 다 터져 있었고, 볼은 양쪽이 다 부어있었다.
눈도 부어서 앞은 제대로 보일지, 산발인 머리는 거지보다 더 한 꼴이었다.
으드득하고 이빨을 가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귀에 꼬르륵하고 배를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배를 움켜쥐고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주먹을 움켜쥐며 가빠지는 숨을 힘겹게 진정시켰다.
“아저씨. 여서 뭐 하는 기고. 볼일 없음 가소.”
남자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오로지 예슬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깨를 움찔 떨더니 벌떡 하고 몸을 일으키는 예슬을.
“다, 다녀오셨쯔예. 아즤매.”
입안도 부었는지 발음이 샜다.
“또 농땡이 부린 거 아니재? 냄시야. 쫌 씻으라 씻어.”
“죄, 죄솜흠댜.”
흠칫흠칫 어깨를 떠는 아이와, 수시로 손을 올렸다 내리는 여자.
그리고,
“이기 와 이라노.”
물통을 들어 마저 가판대를 씻으려던 아줌마는 물통의 손잡이가 빠져서 손에서 물통을 놓쳐버렸다.
바닥을 뒹구는 물통을 보며 영숙이 아지매는 조용히 중얼거렸고, 그 모습을 본 예슬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외쳤다.
“제!제가 아뉘라예! 머머머멀쩡했쯔예!!”
예슬이 팔을 들고 흔들자, 그 팔을 덮고 있던 옷가지가 팔꿈치 위로 올라갔다.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살이 전부 퍼렜다.
남자는 고개를 들고 허허하고 웃어버렸다.
아줌마는 이를 부득 갈고는 눈을 치껴 뜨고 예슬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손을 들어 예슬의 뺨을 내리치자 예슬의 목이 획 하고 돌아갔다.
예슬은 빌고 싶었지만 손목이 잡혀서 그럴 수도 없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서, 숨이 턱턱 막혀서, 어떤 행동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시팔년. 함 뒤지바라.”
높이 치켜든 아줌마의 손이 예슬의 망막에 비치고 예슬은 허망한 표정으로 입술을 오물거렸지만 어떠한 말도 되지 못했다.
“뭐 하는 짓이고!!!”
예슬은 공기가 부들부들 떤다고 느꼈다.
“니는 니 아도 이리 패나!”
손목을 잡고 있는 통증이 갑자기 사라지며 넓은 품에 안겨 들어갔을 때, 예슬은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거칠고 컬컬한 목소리가 공기를 떨게 하고 있었다.
“아를 빙시를 만들기가? 아님 직이 삐고 싶나? 미친년처럼 사람 산다고 할 때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와 아를 못 패서 안달이고?! 이 미친년아!!”
예슬은 아저씨의 품에 안겨 귀를 찢는 괴성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품속의 냄새를 맡았다.
쉰내와 구수한 냄새.
비린내도 났지만 무엇 보다 진한 냄새는 탁하면서 시원한 냄새였다.
‘울 아빠는 탁한 냄새밖에 안 났는데...’
예슬은 따뜻한 품속에 고개를 묻었다.
생선가게의 주인과 입씨름을 하던 남자는 자신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의 몸이 축 늘어지는 것을 느끼며 급히 아이를 안아 들었다.
손가락을 코 밑에 붙여 숨을 쉬는 것을 확인하고 귀를 가슴에 올려 심장이 뛰는 것을 확인했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풀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이가 무사한지 병원을 찾는 게 먼저였다.
남자는 영숙이 아지매를 노려보고 말했다.
“니는 나중에 보자.”
영숙이 아지매는 남자의 웃옷을 잡아 뜯으며 외쳤다.
“애새끼 놓고 가라! 그 년은 내가 직일기다!”
남자는 기가 찼다.
그리고 순간 스치는 생각에 피식 웃고 말았다.
“와? 바람 난 니 서방 애라도 되나?”
“...”
영숙이 아지매는 이를 뿌득 갈 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남자가 물었다.
“니, 소개쟁이 한테 얼라 받았제?”
아줌마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야이 빙시야. 사람이 그리 쉽게 찾아지는 긴 줄 아나? 소개쟁이가 뭐라카데, 니 찾는 사람이라 카더나?”
영숙이 아지매는 얼핏 떠오른 말을 중얼거렸다.
“일꾼 하나...”
남자는 어깨를 부들부들 떠는 영숙이 아지매를 보며 말했다.
“이 미친년아. 니는 쌩사람 잡은기다.”
남자는 몸을 홱 돌려 앞을 향해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예슬을 품에 안고 한참을 걸은 남자는 민간인 줄입 제한이라고 자신을 막아서는 남자에게 말했다.
“xx부대 출신, 예비역 병장 강형대입니다. 전역증 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