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인해 우연으로 어느 선장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보게 되었다. 짧은 영상이라 전후 사정을 잘 알지 못하지만 지금까지 기억할 정도로 인상 깊었다. 특히 그분(선장)의 시 한 편이 젊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말이었다.
어느 날 작은 배를 몰고 있던 선장에게 영상을 촬영하던 피디라는 사람이 인터뷰를 하면서 원래 꿈이 뭐였는지 물어보았다. "선생님의 원래 꿈은 뭐였어요?"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은 숙연하게 만들었다. "왜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 싶니까 저는 원래 국문학과에 가고 싶었습니다." 무슨 사정인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에 반전이 있듯 시 한 편을 읊으셨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선장이 창조한 시 한 편을 잊지 못한다. 그 한 편의 시는 고된 사막 같은 인생 속에 내리는 비와 같았다.
영상을 보고 곰곰이 생각했다.
우리 사회는 공평하지 않다. '빈부격차'가 막연하게 일어나고 있고 정치인들은 선거기간에 표를 얻기 위해 미사여구와 같은 화련 한 언변으로 달콤한 정책이라는 해결점은 내놓지만 여전히 사회는 그대로 유지된다. 또한 고도로 발달된 문명과 SNS는 스스로의 삶을 비교하게 만들어 자기 자신이 비참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리 잘 살더라도 또는 아무리 못 살다라도 끝내 우리 삶을 마무리하기 마련이고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행복이라는 수치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러한 사실 속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잘 먹고 잘살고 가 아니라 진심으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사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집 근처에 북한산이 있다. 조금만 걸어가도 그 크기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무 한 그루의 모양나 종류 및 이름은 모른다. 전체를 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이와 마찬가지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 나무가 그 나무이다. 그러지만 빈 들에 꽃이 핀다면 그것은 사람의 시선을 집중 시 킨다. 결론을 말하자면 주변 환경에 의해 본인의 정체성이 설명되지 않는다. 때로는 그 선장의 시처럼 아무것도 없는 빈 들에 꽃이 피듯, 그 꽃이 더 화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