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베트남. 라오스. 태국 <2편>

by 박미미

여행 2일차(2025.10.10.)


왓츠 어플로 12go에서 전화가 왔다. 영어로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어서 끊어버렸다. 다시 챗으로 장문의 메시지가 왔고 챗지피티가 예약 정보라고 확인해 줬다. 여행 을 준비 하면서 왓츠 어플을 미리 깔아둔 게 적절했다.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아서 사실 깔아 놓고도 잊고 있었다. 하지만 왓츠는 여행 내내 12go와 소통을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늘 저녁 20시 30분에 하노이에서 출발하는 슬리핑버스를 타야 한다. 그리고 밴과 기차로 최종 목적지인 라오스의 루앙파라방에 나를 데려줘야 한다.’ 그것이 예약의 내용이었다.


하노이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체크아웃을 하려는데 비엣젯항공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13시 40분 비행기가 15시로 변경되었다고 했다. 다행히 출발 전이라서 호텔 옆 삽에서 마사지 받고 14시 넘어서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또 20분 더 연착이란다. 비행기 탑승 후에도 시간을 끌다가 실질적으로 이룩한 시간은 16시가 다 되어서다. 챗지피티가 조언해 준 대로 시간을 넉넉히 잡아서 다행이었다. 아쉬운 점은 하노이를 잠깐이라도 구경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행기 탑승 전 마지막 점검을 하는데 챗지피티가 라오스 입국 시 대사관에서 미리 여권에 스템프를 받았는지 묻는다. 비자 대신인데 스템프가 없으면 육로로 라오스를 갈 수 없다고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 비행기를 탑승할 이유가 없다. 일단 라오스 여행 카페에 들어가 비자에 대해 문의했다. 그리고 검색하는데, 공항에서는 탑승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급한 마음에 손이 떨려 글자가 자꾸 틀린다. 내가 검색한 결과 라오스는 30일 무비자였다. 챗지피티에게 다시 확인을 지시하고 고민을 했다. 라오스에 가지 못할거라면 그냥 다낭에 남을지 아니면 하노이로 가서 저번 여행 때 가보지 못한 사파로 변경할지 결정을 해야 한다. 챗지피티가 라오스 영사관 정보를 길게 펼쳤고 나는 비자를 전담하는 부서로 전화를 했다. 탑승 줄에 서서 한발 한발 옮겨 가며 전화를 들고 있었다. 다행히 영사관의 담당자가 전화를 받았다. 빠른 발음으로 질문을 하면서 목소리가 꽤 커졌는데도 담당자가 침착하게 무비자 입국이 된다고 확인을 해줬다. 큰 숨이 쉬어졌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항공사 승무원이 티켓과 여권을 보여달라고 한다. 전화기를 귀에 댄 채로 여권과 티켓을 보여주고 비행기에 겨우 탑승할 수 있었다. 가야 할지, 돌아서야 할지 기로에 선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챗지피티가 가져온 첫 번째 잘못된 정보였다.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미딘 버스터미널로 변경되었다고 왓츠에서 채팅이 왔다. 챗지피티가 기존 터미널 근처라서 일정에는 영향이 없다고 했다. 정상 운행이 되었더라면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에서 근사하게 커피를 마시는 사치를 부릴 수 있었다. 아니 조금만 일찍 도착했더라면 버스를 타고 미딘 버스터미널로 갈 수 있었는데 안타까웠다. 17시 넘어서 할 수 없이 그랩을 잡았다.

19시에 미딘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는데 규모에 놀라고 규모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 한 번 더 놀랐다. 여기에서 인접 국가로 갈 수 있으니 국제버스 터미널인 셈이다. 이 거대한 곳에서 내가 가진 것은 휴대폰에 들어 있는 예약 문자가 전부였다.


터미널에 오면 누가 마중이라도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분주하게 목적지를 찾아가는 사람들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2go에서 결제를 하고 받은 예약 문자가 있기에 창구에 가서 당당하게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매표소 직원은 휴대폰을 멀뚱하게 보고 난 뒤 알아듣지 못할 말을 했다. 무관심한 표정에서 자기들의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눈치채었다. 챗지피티에게 예약 문자에서 이 상황에 맞는 정보가 있는지 다시 확인해달라고 했다. 플랫폼 번호, 운송회사 상호, 버스 번호 그 아무것도 없었다. 힘 빠진 채로 매표소를 돌아가 보니 야드에는 버스가 넘쳐 났다. 플랫폼에는 버스가 뿜어대는 매연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지친 사람들의 표정에는 담배 연기가 먹구름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기분이 우울해졌다. 챗지피티가 작성한 항의 문자를 12go에 보냈음에도 답장이 없다. 다시 매표소로 걸어가다가 정복을 입은 터미널 직원과 마주쳤다. 급한 마음에 이것 좀 봐달라며 한국말을 했다. 마흔쯤 되어 보이는 그녀가 내 휴대폰을 들여다 보면서 Can you speak English? 라고 물었고 나는 I don’t know.라고 대답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와 할 수 있는 영어는 다 했다. 그녀의 얼굴에 살짝 웃음이 지나가는 걸 보았다. 문자를 집중해서 읽고 있는 그녀에게 통화버튼을 눌러줬다. 다행히 12go에서 전화를 받았고 그녀가 한참 동안 통화를 했다. 알아들을 수 없지만 대화가 오고 가는 틈이 매우 짧은 걸로 봐서 꼼꼼하게 묻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전화를 끊은 그녀가 웃으면서 어디에서 왔는지 묻는다. korea라고 말하자 따라오라고 한다. 다시 터미널로 들어가서 비어 있는 10번 게이트에 아이를 세우듯 나를 세웠다. 여기 있으면 20시에 버스가 온다며 손가락 여덟 개를 펴 보였다. 그녀는 그래도 못 미더운지 버스회사의 이름도 몇 번이나 알려 줬지만 까먹어버렸다. 발음이 너무 어려웠다. 상관없다. 어차피 타는 곳을 알았으니까 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고맙다는 내 말을 듣고 그녀는 쿨하게 자리를 떠났다. 이제야 12go의 시스템을 알게 되었다. 인솔자나 동행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혼자서 어플로 소통하고 움직여야 한다.


20시에 버스가 왔으나 기사는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 사전에 12go에서 버스 회사로 인원을 통보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내 휴대폰을 보고 나서 기사가 결정하는 것 같았다. 기사를 도와주는 헬퍼가 어디에다 통화를 하고 난 뒤 신발을 벗고 탑승하라고 했다. 그리고 손으로 쓴 영수증 느낌이 나는 종이를 내게 줬다. 현장에서 발권한 티켓이었다.


버스는 예약할 때 봤던 이미지 그대로였다. 조금 더 낡긴 했지만 같은 구조였다. 나는 2층 침대를 배정받았다. 침대는 신장이 172cm인 내가 다리를 펼쳐도 발끝이 닿지 않을 만큼 길었다. 1층은 2층 보다 너 넓어 보이는 걸로 봐서 2인실 같았다. 침대인데도 안전벨트가 있는 게 조금 신기했다.

에어컨이 얼마나 빵빵한지 추워서 밖에 나갔다가 버스가 출발할 때 탑승했다. 버스는 9시에 출발을 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승차감에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잠이 들었다가 2시쯤 속이 울렁거려서 잠에서 깼다. 지상에 굴러다니는 그 어떤 걸 타도 멀미를 하지 않았는데 슬리핑 버스에서 속이 뒤집어진 것이다. 잠은 이미 달아나 버렸다. 토가 나오려는 걸 겨우 참으며 여행기를 쓰려고 노트북을 꺼냈다. 하지만 버스가 얼마나 흔들리는지, 모음과 자음을 모아 글자 하나를 쓰는 게 돌을 쌓아서 탑을 세우는 것만큼 힘들었다. 한 글자를 완성하려면 돌이 서너 번은 무너졌다. 글을 쓸 게 아니라 휩쓸리지 않게 난간을 잡아야 할 정도였다. 흔들린다는 말로 그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마치 초식 공룡이 풀을 뜯다가 작은 동물을 삼키고 난 뒤 뱉어내려고 발악하는 것 같았다. 처음 타본 슬리핑 버스는 공간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우리나라처럼 평지가 아닌 산악지대에는 맞지 않았다. 고산지대의 불리함에다 근래에 태풍이 두 개나 이곳을 통과했다. 길이 좋을 수가 없었다. 구급차의 침대처럼 벨트가 있는 이유를 이제 알 수 있었다. 다시 탈 거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글쎄”이다.


12go에서 버스의 이동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주지 않았다. 소요 시간과 휴게소 정차 횟수를 모르기에 최대한 물을 마시지 않았다. 그럼에도 깨어 있으니까 소변이 마려웠다. 새벽에 버스가 작은 마을에 잠시 정차했다. 22인승 버스가 10명 정도만 태워서 경제성이 있을까 싶었는데 거점마다 화물을 실었다. 소변을 해결하려 내렸다가 돼지, 병아리, 조개 같은 생물을 싣는 것을 보았다. 도착지에서 알았는데 화물을 버스의 짐칸에 가득 싣고도 모자라 루프 위에까지 넘치게 올렸다. 버스가 사람의 이동뿐만 아니라 물류의 순환도 책임지고 있었다.


내가 받은 정보는 도착지가 디엔비엔 이라는 것뿐이었다. 중간중간 구글지도를 돌려가며 도착시간을 가늠하고 있었다. 버스는 거의 12시간 만인 8시 30분에 디엔비엔에 도착했다. 도착 전 12go에 내가 타고 갈 밴의 정보를 물었음에도 대답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긴장한 채 낯선 도시의 아침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때 화물을 내리던 헬퍼가 오라고 손짓했다. 혼자인 줄 알았는데 어디선가 앳된 아가씨도 걸어 왔다. 헬퍼와 밴의 기사가 대화를 하는데, 모두 표정이 좋지 않았다. 현지어를 모르니 사람들의 표정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짐작하기에 예정된 인원이 아니어서 그런 것 같았다. 헬퍼는 가고 기사가 밴의 문을 열었다. 그는 아가씨를 앞 열에 태웠고 내 자리는 없었다. 기사가 2열 문가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뒤에 가라고 하고 내가 그 자리에 앉았다. 그 남자는 군말 없이 3열로 가서 통로에 말통을 놓고 그 위에 앉았다. 여행자에 대한 배려인지, 비용의 차이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늦게 탔어도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밴은 시내를 지나가면서 서류봉투를 수령하기도 하고 작은 짐을 싣기도 했다. 읍 정도의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도로의 양옆으로 논이 펼쳐져 있었다. 논은 경지 정리가 된 듯 제법 반듯했다. 일부는 추수했고 일부는 누렇게 익은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가끔 논 사이에서 바짝 마른 소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바나나 나무 같은 잎이 넓은 식물들만 없으면 한국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여행 오기 전, 내가 사는 경주도 여기처럼 막 추수를 시작하고 있었기에 잠시 향수가 일었다. 벼를 벨 때 나는 젖은 풀의 냄새를 맡았다.


평야의 가운데에서 밴은 잠시 정차했다. 동남아 특유의 원뿔 모자를 쓴 아줌마가 손을 들었다. 기사는 아주머니와 흥정 같은 것을 하다가 2열의 문을 열었다. 자리는 이미 만석이었다. 아줌마는 자신이 가져온 자루를 2열의 통로에 포개어 올리고 그 위에 자신이 앉았다. 내 옆자리였다. 밴 기사의 권위는 대단했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따라 좌석이 바뀌었고 탑승 여부도 결정이 되었다. 그는 수시로 담배를 피웠고 맥주 같은 것도 마셨다.


드디어 12go에서 연락이 왔다. 어디쯤 가고 있는지 물어 왔다. 그들은 이 밴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모두 현지인이고 관광객은 나 하나뿐이어서 혹시 잘못 탑승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내가 타고 가고 있는 이 밴이 예정에 있던 운송 수단인지 물었다. 그들은 버스 회사와 같은 회사면 상관이 없다고 했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공항이나, 역, 터미널과 내가 타고 가는 운송 수단의 사진을 전부 찍었다. 흔적을 남겨 놔야지 사고가 생겼을 때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슬리핑 버스와 밴 사진을 챗지피티에 보내서 같은 회사인지 물었다. 챗지피티는다른 회사라고 했다. 12go에도 밴 사진을 보내 줬다. 다른 회사인데도 괜찮다는 답변이 왔다. 이곳에는 시내버스가 없기에 밴이 다니면서 사람들을 태워 간다. 같은 회사든, 아니든 태워만 가면 12go에서 결재를 해 주는 것 같았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보면 추적이 불가능 하기에 위험할 수도 있지만 시간을 아낄 수 있어서 효율적이기도 하다.


디엔비엔에서 한시간을 달려 베트남 국경인 타이짱에 도착했다. 밴에서 내려 단체로 출입국 수속을 밟았다. 의외로 베트남 출국심사가 까다로운 반면 라오스 입국심사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끝이 났다. 국경이 불과 100m 남짓인데 라오스에 넘어오니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졌다. 날은 또 얼마나 화창한지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여행의 작은 고비를 넘기자 긴장이 풀렸다. 어제 미딘 버스터미널에서 사 놓고 먹지 않았던 빵과 사탕을 앞자리 아가씨와 옆자리 아주머니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

챗지피티가 잠시 뒤 역에서 기차를 타고 고속철도 역으로 이동할 거라고 했지만 아무리 가도 산 만 보일 뿐 역은 나오지 않았다. 얼마를 더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역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챗지피티가 저지른 두 번째 실수였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내달리던 밴이 12시가 되어 처음 휴게소에 정차했다. 긴장과 성취를 오가며 배고픈 것도 잊고 있었는데 막상 휴게소에 오니 배가 고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공항이 아니라 육로로 국경을 넘다 보니 환전을 하지 못했다. 내겐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라오스 화폐인 낍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아주머니와 아가씨에게 배고프다고 빵을 돌려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플랜B를 가동했다. 식당 주인에게 트레블월렛 카드를 보여 주자, 짧게 No.card라고 한다. 그러면서 QR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맞다. 한국에서 GLN을 설치했었다. 휴대폰 카메라로 QR을 찍으니 결제가 안 된다고 뜬다. 휴게소는 인도계 은행과 제휴가 되어 있어서 우리나라가 제휴한 은행은 아예 되지 않았다. 플랜C도 막혀버렸다. 막막하다. 남들은 식당에 앉아 조용하게 식사하는데 혼자 굶어야 한다. 지갑을 보다가 집에서 탈탈 털어온 달러가 보였다. 6달러면 한 끼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다. 식당 주인에게 달러를 보여주며 음식을 달라고 했다. 그녀는 이제는 말도 안 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마지막 희망인 세계기축 통화 달러도 힘을 쓰지 못한다. 힘없이 돌아섰다. 그런데 불쌍해 보였는지 손에 든 달러를 달라는 시늉을 한다. 나는 기뻐서 눈에 보이는 닭 다리를 집어 들었고 그녀는 내 손에서 달러를 3장 빼내어 갔다. 배를 채우기에는 너무나 적은 양이었지만 단백질 보충은 할 수 있었다. 여행을 할 땐 항상 대안을 마련한다. 그럼에도 다 막혀 버리는 순간이 생기기도 한다.


밴은 다섯 시간을 달렸다. 그 말은 내 옆의 아주머니도 다섯 시간 동안 쌀자루에 앉아서 갔다는 말이 된다. 경사지고 급회전이 다반사인 비포장 산길에, 마초 같은 기사의 난폭한 운전까지 더해진 고난의 길을 아주머니는 잘 버텼다. 좌석에 앉아도 엉덩이에 뿔이 난 것처럼 아픈데 손잡이 없이 몸으로 균형을 잡기란 거의 묘기에 가까웠다. 남자들 사이에서 옷깃 하나 닿지 않으려고 수줍게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속으로 아주머니라고 불렀지만 나보다 나이가 어려 보였다. 동남아 특성상 나이가 들어 보여도 한국에 오면 새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도였다. 사실 자리를 바꿔 주려고 수십 번 고민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길이 험해도 너무 험했기 때문이다. 죄스럽고 미안해서 그녀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 왓츠로 17시 출발인 고속철도 티켓이 날아왔다. 고속철도 역이 있는 곳은 무앙싸이였다. 산길을 내려와 무앙싸이로 들어서자, 민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만 있을 뿐 한적한 시골마을 이었다. 기사는 작은 승강장 같은 곳에서 3명을 내려주고 조금 더 가서 간판 없는 식당에 차를 세웠다. 기사가 내려서 누구를 불렀다. 아무런 기척이 없자 그가 안으로 들어가서 어떤 남자를 데리고 나왔다. 남자는 낮술을 마시고 자다가 깼는지 화가 잔뜩 나 있는 얼굴이었다. 기사는 일절 설명도 없이 나 혼자만 내려놓고 그냥 가버렸다. 꼭 낯선 남자에게 나를 팔아넘기고 도망 가버린 것 같았다. 이제 의지할 사람은 낯선 남자뿐이었다. 그런데 낯선 남자는 물 한 병을 들이키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러대며 나를 식당 밖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샤시를 내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영화에서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전형적인 아이를 버리는 수법이다. 나는 이국의 땅에서 국제 미아가 되어 버렸다.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아스팔트에 서니 서럽다. 현금도 없고 택시를 호출하는 앱도 깔려 있지 않았다. 절망했다. 그때 툭툭이 한 대가 반대편으로 지나갔고 그 안에서 밴에 같이 탔었던 청년을 알아봤다. 잠시 뒤 툭툭은 돌아서 왔고 나를 수거했다. 복합 운송 수단에 툭툭은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선택의 여지 또한 없었다.


툭툭은 작은 차만 다닐 수 있는 좁은 길을 통과해서 무앙싸이역에 도착했다. 15시 기차가 막 떠난 뒤라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툭툭 기사는 그늘에 우리를 내려놓고 한국 돈 500원에 해당하는 요금을 요구했다. 하지만 나에게 낍은 한 푼도 없었다. 원래 예약에 포함되지 않은 운송 수단이며 이미 역에 도착했기에 못 준다고 배짱을 부렸다. 얼마 전까지 여기 오려고 애가 타지 않았던가? 내가 생각해도 간사하다.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이중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타협 없는 대화 속에 청년이 지갑을 열었다. 그는 베트남 사람이었는데 낍을 가지고 있었다. 내 대신 낍으로 그가 계산하고 나는 베트남 동을 그에게 주었다. 젊은 청년이 참 고마웠다.


검색대를 통과해서 역 안으로 들어서니 긴장이 풀렸다. 하루 종일 쫓기듯 하다가 처음으로 가지는 여유였다. 목이 말랐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주문하고 처음으로 GLN을 사용했다. 성공했다. 성취감과 자신감이 밀려왔다. 나 자신에게 매료되기까지 했다.


기차는 정시에 도착했고 나는 제일 앞에서 기차에 올랐다. 길고 긴 하루가 서서히 저물어 갔다. 나는 얼마 뒤면 목적지인 루앙파라방에 도착할 것이다. 느슨하게 풀린 근육에서 기대감이 힘줄처럼 당겨왔다.

작가의 이전글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