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루앙파라방 1

by 박미미

무앙싸이에서 기차를 타고 18시쯤 루앙파라방에 내렸을 때는 이미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 사람들이 빠르게 흩어지는 역 광장에 서서 멀리 고요에 깃든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하루를 달려 도착한 여기가 루앙 파라방이었다.

혼자만의 조용한 감상이 깨진 것은, 빈 지갑이 만져졌기 때문이었다. 숙소로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고 버스를 타려면 현금이 필요했다. 역의 구석에 있는 인출기에서 낍을 인출하고 나오니 그 많던 사람들은 이미 빠져나가고 없었다. 몇 대 남지 않는 버스의 기사들이 마지막 남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나는 콧수염이 난 사내에게 숙소의 주소를 보여 주었다. 그는 여행자의 긴장을 알고 있었다. 아무런 문제 없다. 는 몸짓으로 타라고 한다. 구글 지도를 켜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도로를 오르내릴 때마다 숙소와 거리는 멀어지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숙소 앞에 데려다 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던 기사는 결국 자신의 차고지에 나를 떨구어 놓았다.


숙소로 향하는 버스에서 내가 본 것은 드문드문 보이는 건물의 불빛이었다. 관심 있게 도시를 보려 했는데 어두워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못 본건 아니었다. 세상이 암흑천지였으니 어둠만은 정확히 본 것이다. 이제까지 다녀 본 관광지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펍 스트리트나 호이안, 하롱베이는 밤이 더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곳은 계곡 따라 하나씩 지어놓은 펜션이 있는, 우리나라 산길을 가는 기분이었다.

차고지에서 내려 구글 지도를 봤을 때 숙소까지 1km가 조금 넘는 거리였다. 24시간을 슬리핑 버스와 좁은 밴에서 얼마나 움츠려 있었던가? 몸을 펴고 걷고 싶었다. 낯선 여행지일수록 그곳의 길을 걸어 봐야 한다. 길은 실핏줄 같이 뻗어 있어서 도시의 작지만 진솔한 부분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걷다 보면 도시는 어느새 익숙해지고 나는 서서히 동화되어 간다. 과장도, 숨김도, 흘림도 없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체화된다.


숙소로 가기 위해 차고지의 낮은 언덕을 넘어 큰 도로에 올랐다. 구글 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으로 안내했다. 몸을 틀어 몇 미터 가지 않았을 뿐인데 어둡다. 큰 폭의 길에 가로등 하나 없다. 노면이 고르지 않아 캐리어의 바퀴 소리가 요란하다. 금방이라도 나사가 풀려 바퀴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오토바이 한 대가 시궁창의 쥐처럼 라이트를 희번득거리며 빠르게 지나갔다. 순간적으로 조용하면서 괴기스럽고 외로운 공포가 뇌를 스쳐 갔다. 낯선 곳이 아니라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 도시를 홀로 걷는 그런 기분이었다. 한 덩어리씩 웅크리고 있는 어둠과 흐려서 갑갑한 황색 불빛들이 거리를 부유했다. 등이 내걸린 식당은 안으로 갈수록 침침했고 그 속에는 그림자보다 더 실체가 불명확한 무언가가 느리게 움직였다. 좁은 골목의 늘어선 집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동굴을 지키는 한 마리 짐승처럼 어김없이 남자들이 윗옷을 벗고 있었다. 나는 사람이 보일 때도, 사람이 한참 동안 보이지 않을 때도 캐리어의 손잡이를 꼭 쥐어 잡았다.

더듬듯이 지도를 보며 30분 만에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예약 사이트에서 봤던 이미지와 느낌이 달랐다. 들어가는데 경비가 막아선다. 휴대폰으로 예약 사이트를 열어 그에게 보여 주었다. 막아서는 그의 행동이 아주 단순했기에 한번 에 내가 예약한 숙소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임무에 충실한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고 낯선 사람에게 현지인이 해줄 수 있는 아량도 베풀어주지 않았다. 돌아서서 나오다 집을 나서는 젊은 여자와 마주쳤다. 그녀가 관심을 보이며 내 휴대폰을 봤지만 역시 위치를 알지 못했다.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는 바쁘게 떠나갔다. 이제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과연 이 근처가 맞는 것일까? 구글 지도가 맞기는 하는 걸까?
다시 예약 사이트에서 주소를 복사해 구글 지도에 붙여 넣었다. 새로운 방향키가 생성되면서 다른 길로 안내했다. 반쯤은 희망을 갖고 길을 따라가다가 절망했다. 처음 그 자리로 다시 오고 말았다.

어둠은 나에게 도시의 극히 일부분만 보여 주었다. 내가 선 자리가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것만큼 두려운 것은 없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의 어두운 밤에 홀로 거리에 버려진 것 같은 비참함이 들었다. 배고픔, 피로, 외로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여행을 시작한 지 이틀만이다. 그저께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사라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세상을, 외국을 만만하게 생각했던 나의 오만을 반성했다. 다 던져 버리고 그대로 길에 앉아 울고 싶었다.

여기에서 무너져 내릴 수 없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숙소의 주소가 아닌 이름으로 검색하려 했다. 하지만 상실한 의욕은 다시 채워지지 않았다. 힘이 없어서 영어로 된 긴 이름을 외우고 칠 자신이 없었다. 예약 사이트에서 숙소를 캡쳐한 후 챗지피티에게 사진의 숙소 이름을 추출하라고 했다. 그리고 복사해서 구글 지도에 붙여 넣었다. 내가 걸어왔던 반대편으로 방향키가 가리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희미한 간판이 내걸린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영업을 하는 곳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어둡고 조용했다. 2층으로 된 건물은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등이라고는 입구의 카운터와 간판에서 배어 나오는 옅은 안개 같은 led가 전부였다. 그중에 내가 들어가서 방 하나에 불이 켜졌다. 이 건물에 묵고 있는 사람이 나 혼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관광지의 소란스러움이 없는 이곳은 외국이라서가 아니라 비정상적이라서 두려웠다. 너무나 조용한 숙소는 경계심을 불러일으켜서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불안한 상상을 하며, 내일도 루앙파라방에 머물게 된다면 숙소를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고된 몸이 의식을 밀어내며 잠에 빠져들었다.


작가의 이전글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