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루앙파라방 2

by 박미미

깊은 잠을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언제나 그렇듯 길을 걸어 본다. 정리된 길과 깨끗한 거리가 맑은 날씨 덕분에 선명하게 보였다. 태양에서 보낸 빛이 대기의 어떤 저항도 없이 온전히 내려앉았다. 세상이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만큼 진실 된 것은 없다. 어제의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졌다. 만약 낮에 루앙파라방에 도착했다면 한눈에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한적한 거리가 마음을 여유롭게 했다. 나무 아래에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숙소의 벽에 붙은 사진에서 쾅시 폭포를 알게 되었다. 검색을 하니 꽤 유명하다. 오늘은 여기에 가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숙소에서 오토바이를 렌트하면서 짧은 영어로 “one day more“ 라고 말하니 다행히 알아듣는다. 즉석에서 하루 일정이 늘어났다.


숙소에서 조금만 벗어나니 대로변이다. 가끔 차의 경적이 울리기는 하나 대체로 평화롭다. 급할 것도, 바쁠 것도 없다. 오토바이로 천천히 라오스를 느끼며 폭포로 향했다. 도시에서 조금 벗어나니 비포장 길과 포장길이 번갈아 바뀐다. 한 시간 정도 지나 쾅시 폭포의 입구에 도착했다. 오토바이를 두고 걸어가야 한다. 그냥 오르려다 노점에서 수박과 옥수수를 사서 벤치에 앉았다. 아침 식사 대용으로 옥수수를 한입 베어 물고 나서 실망했다. 한국의 옥수수와는 맛이 달랐다. 아니 맛이 없다. 그런데 계속 씹다 보니 알맹이에서 담백한 맛이 느껴진다. 생각해 보니 이제까지 한국에서 먹은 옥수수는 양념의 맛이었다. 그러니까 밍밍하지만 씹을수록 감칠맛이 도는 여기의 옥수수가 진짜 옥수수인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우리는 인간으로 살지 않고 짠맛, 매운맛, 단맛으로 살지 않았던가? 여기저기 불필요한 걸 치장하고 자신은 숨긴 채 맛으로 살았다. 쾅시 폭포에 오면서 마주친 현지인들도 맛이 없었다. 그들은 무심하고 소심했다. 하지만 내가 부탁을 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나서서 뭘 해주기에는 부끄러운데 마음속에는 타인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 있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 있는 동안 라오스 사람들처럼 되기 위해 맛을 좀 씻어내어야 한다,

쾅시 폭포를 거슬러 올라갔다. 다행히 우기가 막 끝나는 시점이라 날은 좋으면서 수량은 풍부했다. 넓고 둥근 소가 층계를 이루며 위로 이어져 있었다. 바위에 부딪혀 잘게 부서진 물방울들이 짧은 순간 무지개를 만들고 사라졌다. 무게가 더해져서 울리는 폭포의 소리는 육중한 짐승의 포효였다. 나는 폭포의 맨살을 느끼기 위해 운동화를 벗고 물이 넘쳐흐르는 곳으로 걸었다.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완전히 등을 돌린 채 넓은 가슴으로 물을 쏟아내는 쾅시 폭포와 마주했다. 웅장하게 자리한 쾅시 폭포는 아래에서 보면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쏟아지는 포말은 천상에서 떨어지는 은빛 가루처럼 보였다. 전설 속 선녀가 내려오는 탕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자연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하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쾅시 폭포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도시설계와 미술을 공부했던 친구가 문자로 왓 시엉통 사원을 가보라고 한다. 점심을 먹고 햇살이 가장 뜨거운 시간에 사원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원이 있었기에 숙소의 위치가 나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루앙파라방에서 드디어 건물 같은 것들이 나타났다. 한눈에 중앙로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커피숍, 기념품 가게, 술집, 마사지 샾이 양쪽으로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오른쪽은 끊기고 왼쪽만 더 이어졌다. 거기부터가 사원이었다. 루앙(왕) 파라방(황금)을 대표하는 것처럼 사원들은 모두 금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출입이 자유로운 사원 몇 개를 지나쳐 매표소가 있는 사원에 도착했다. 그곳이 바로 왓 시엉텅 사원이었다. 표를 사고 들어가자 가장 큰 건물이 눈에 띄었다. 배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가파로운 지붕이 3단으로 층계를 이루고 벽은 금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아래쪽은 파란색 유리를 타일처럼 붙여 놓았다. 사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화려하여 왕궁처럼 느껴졌다. 후문이 바로 메콩강으로 맞닿아 있는 것을 보면서 사원의 아래쪽 파란색 타일이 메콩강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 라오스 민족은 메콩강을 숭상했을 수도 있다. 3단으로 된 가파른 지붕은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의 특수성 같기도 하고 종교적으로는 신의 권위를 세워 준 것 같기도 했다.

후문으로 나와서 황토색 메콩강의 유람선들을 바라보았다. 제법 유속이 있어 보이는 강 위에 배는 아무렇지 않게 떠 있었다. 갑자기 저 배 안에서 어떤 벌어지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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