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파라방3
왓 시엉텅 사원을 다녀와서 오토바이로 루앙파라방을 돌아다녔다. 루앙파라방은 잘 정비된 도시였다. 단조로운 건물들과 블록으로 형성된 거리는 직각이 잘 맞았다. 사거리를 돌아 가면 다시 사거리가 나오고 여러 번 그렇게 하면 원래 자리로 돌아 올 수 있었다. 이제 루앙파라방이 손에 잡힐 듯 만만해졌다. 빨래를 모아 세탁소에 맞기고 재래시장을 구경하러 갔다. 인구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 루앙파라방에 비해 제법 큰 시장이 형성돼 있었다. 시장을 돌아다니다 랑삿을 한 묶음 사서 왓 시엉텅 사원으로 갔다. 먹기 적당한 곳을 찾기 위해 사원을 한 바퀴 돌아서 내려오다가 메콩강이 잘 보이는 공원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테이블에 앉아 작은 감자 알맹이 같은 랑삿을 혼자 먹고 있었다. 그때 현지인으로 보이는 두 여자가 근처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들은 작은 목소리로 말을 주고받다가 내가 앉은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았다. 옆의 테이블이 비어 있었기에 그녀들의 행동은 뜻밖이었다. 그녀들은 나를 개의치 않고 가져온 것을 꺼내 먹었다. 여러 종류의 음식이 있었으나 내가 아는 것은 닭고기 뿐이었다. 웃으며 음식을 먹는 그녀들을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그중에 나이가 더 있어 보이는 여자가 닭고기 한 점을 내게 건넸다. 나는 웃으며 손사래를 치고, 대신 랑삿 한 몇 알을 내밀었다. 그녀들 역시 사양했다. 자세히 보니 그녀들이라고 하기엔, 한 명은 너무 어려 보였다.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였다. 특이하게 둘 다 타투를 하고 있었다. 그중 나이가 많은 여자는 귀 뒤로 넘어가는 목의 선에 별 몇 개를 그려 넣었고 소녀는 손가락과 쇄 골에 상형문자 같은 문양을 그려 넣었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먼저 챗지피티를 이용해서 휴대폰으로 인사를 하는데 그녀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내 휴대폰을 가져가서 자신들의 휴대폰으로 번역을 한 뒤 고개를 끄덕인다. 이상하게도 그녀들은 라오스어를 쓰지 않고 태국어를 썼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며 태국어로 번역해서 보여줬다. 그제야 그녀들이 알아듣는다. 인사를 하고 서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데 나이가 많은 여자가 적극적으로 소통에 호응한다. 그녀는 나에 대해서 알아낸 것들을 소녀에게 전달 했다. 그녀들의 나이는 31살과 18살이었다. 둘이 자매라고 했다. 언니도 어렸을 때는 귀여웠을 것 같았지만 동생과는 확연히 다른 얼굴이었다. 물론 동생이 큰 키에 날씬하기도 하고 이목구비도 뚜렷한 미인형의 얼굴이었다. 내가 믿기지 않는다고 하자 엄마가 다른 형제, 같은 아버지라고 했다. 언니가 내 직업을 물어 와서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하자 자기들은 메콩강 위에 떠 있는 가장 큰 배를 가리키며 저기에서 공연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상을 하나 보여 준다. 비슷한 또래의 소녀 셋이 전통 복장을 하고 줄을 서서 춤을 추고 있었다. 제일 앞에 있는 소녀가, 여기에 있는 소녀였다. 그녀들은 태국인이 아닌 라오스의 소수 민족이었다. 언니가 나서서 대화를 주도했지만, 주인공은 예쁜 동생이었다. 나와 언니는 사실 동생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자기 동생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렇게 만난 모든 남자들이 나와 같았을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사적 감정은 일지 않았다. 나는 사진 촬영을 허락받고 셀카모드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셋이 다 화면에 잡히지 않는다. 몇 번을 찍어도 구도가 엉망이다. 그때 언니가 자연스럽게 동생 옆에 나를 세우고 사진을 찍어줬다. 소녀는 자연스럽게 포즈를 잡고 매번 표정을 바꿔가며 사진을 찍어 주었다. 소녀는 아마 공연이 끝날 때마다 손님들에게 팬서비스로 이렇게 사진을 찍어 주었을 것이다. 소녀뿐 아니라, 언니도 그 상황을 흡족해하는 듯했다.동생은 내가 어디에서 묵고 있는지, 몇 살 인지 묻기도 했다. 관심을 가지는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입꼬리에 묘한 여운을 남겼다. 언니가 시간을 보고 일하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들도 나처럼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녀에게 휴대폰을 건네며 왓츠앱에 친구로 등록해 달라고 하자, 그녀는 아무 망설임 없이 받아주었다.
자매와 헤어진 후 저녁을 먹고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야시장에 갔다. 야시장은 중앙로와 이어져 있었다. 확연한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야시장은 중앙로까지만 열렸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다. 중앙로의 상점들도 불을 켜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두웠던 라오스의 밤이 환하게 불타고 있었다. 내가 루앙파라방에 도착한 날, 시간이 저녁 8시쯤이었으니 그때도 야시장은 열려 있었다. 거리상 숙소와 멀지 않은데, 이런 밝은 곳을 지척에 두고 혼자 어둠에 떨었다고 생각하니 우스웠다.
야시장이 시작하는 곳에 넓은 노천 술집이 있었다. 관광객들과 현지인이 한데 섞여서 술을 마셨다. 국적은 달라도 거의가 젊은 층이었다. 술집을 지나가면서 젊음의 에너지, 거침없는 자유에 살짝 흥분이 됐다. 그리고 낮에 보았던 자매가 생각났다. 그녀들은 배에서 춤을 추는 무희다. 행위 예술을 한다. 나는 성공하지 못한, 그래도 문학인이다. 문학과 예술은 같은 유의 양분을 먹고 자란다. 고독과 고뇌, 실패와 자기 파괴를 거듭하면서 하나의 완성에 이르게 된다. 그 힘든 과정을 알기에 나이 든 문학인이 어린 예술가들에게 술 한잔 못 사 줄 이유가 없다.
어떤 여자의 손에 이끌려 마사지 샵으로 들어가면서 그녀들에게 채팅으로 술을 사 주겠다고 했다. 퇴근 후 쉬고 있다던 그녀들은 잠시 의논하더니 진짜냐고 물어 왔다. 나는 술이든 밥이든 원하는 걸 사 줄 거라고 말했고 그녀들은 오리바베큐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내가 마사지를 받는 동안 그녀들은 먼저 술집에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마사지가 끝나는 9시쯤 술을 마시고 있는 식당 내부 사진과 위치를 보내왔다. 그런데 구글 지도가 연동되지 않는다. 그녀들에게 가게 상호를 알려달라고 해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말하지 않았다. 왓츠 어플로 그녀들에게 전화를 걸어 마사지를 해줬던 아가씨를 바꿔줬다. 하지만 그녀는 그곳의 위치를 알지 못했다. 마사지 가게를 나와서 마사지를 받기 전, 과일 쥬스를 팔았던 아가씨에게 그녀들이 보내 준 지도를 보여 줬다. 그녀는 화면을 확대하더니 대강의 위치를 파악해 냈다. 문제는 나에게 설명하지 못했다. 번역기를 돌려 가며 그녀가 한 말은 멀다. 는 말뿐이었다. 어영부영 하는 사이 30분 정도가 지났고 그녀들이 언제 올 거냐고 물어 온다. 난감했다. 이제 하루 된 도시에서, 이 밤에 구글 지도 없이 그녀들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다시 중앙로로 나와서 쉬고 있는 툭툭이 기사에게 지도를 보여 줬다. 그는 위치를 쉽게 찾아냈다. 나는 재빨리 내 구글지도를 켜서 좀전의 그 위치를 찍어달라고 했다. 그는 시간이 늦어서 가더라도 영업이 끝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 문제다. 먼저 약속을 지켜야 한다. 영업이 끝나더라도 술값은 내가 내는 것이 맞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이 채팅이 계속 온다. 급한 마음에 메시지가 여러 번 울리고 나면 한번 확인한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그녀들의 채팅을 캡쳐해서 챗 지피티에게 보내 한글로 번역을 한다. 읽고 나서 한글로 답장을 쓰면 챗지피티가 태국어로 번역을 하고 나는 다시 복사해서 그녀들에게 보냈다. 게다가 핸드폰 거치대에서 핸드폰까지 분리하는,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가는 내내 이 행동을 반복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핸드폰만 보면서 앞으로 가다 보니 갑자기 사방이 조용한 곳으로 들어왔다. 큰길에서 벗어나 비포장 언덕을 올라서 온 건 기억이 나는데 고개를 들고 나니 방향 감각이 없다. 시내에서 꽤 벗어난 시골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둡기도 하지만 집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녀들이 보내 준 술집 사진은 밝았다. 그런 가게라면 불빛이라도, 아니, 사람 소리라도 새어 나와야 하는 게 맞다. 위치를 알 수 없는 곳에서 개들의 컹컹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막다른 길에서 돌아 나오기도 하고 낭떠러지를 가까스로 피하기도 했다. 가축의 분변 냄새가 고여 있는 곳을 지나면 오리인지 닭인지 모를 짐승이 무리 지어 울어댔다. 만약 툭툭이 기사가 찍어 준 곳이 이 근처라면 범죄에 당하는 건 아닌지 겁이 났다. 여기서 납치라도 되면 끝이다. 내가 여기로 온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오게 된 경위를 생각해 보니 꼭 범죄영화에서 흑심을 품은 나쁜 아저씨가 인과응보를 당하는 이야기 같다.
그래도 고생 끝에 구글 지도가 알려준 곳에 도착했다.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이었는데 빈집인지 폐가인지 사람이 없었다. 툭툭이 기사가 잘 못 알려준 것 같았다. 그나마 범죄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지도도 보지 않고 무작정 밝은 곳을 향해 오토바이를 몰았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에 나와서 채팅을 확인했다. ‘왜 오지 않는데’ ‘오기는 할거야?’, ‘안 올 거지?’, ‘왜 채팅을 안 봐?’,‘너 온다고 술과 안주를 시켰는데 어떡해’ 말의 강도가 조금씩 높아졌다. 그녀들의 행동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약속을 어긴 사람은 나였으니까. 한번 만난 인연이라도 소중하다. 현지인들에게 거짓말이나 하는 실없는 외국인이 될 순 없었다. 시간은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낮에 돌아다닐 때는 작은 도시였는데 헤매고 나니 가늠이 되지 않을 만큼 커 보였다.
오토바이의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현실적으로 그녀들을 찾는 걸 포기했다. 포기하고 나니 갈 곳이 없다. 숙소도 가기 싫었다. 텅 빈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방금 영업을 끝낸 술집에서 청소하는 어린 점원들이 보였다. 점원을 보면서 그녀들이 나를 믿고 지갑 없이 오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점원에게 그녀들이 보낸 지도를 보여 주었다. 점원이 내 휴대폰을 만지는 도중에 구글 지도가 연동이 되면서 선명하게 거리가 표시되었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 그녀들이 있었다. 절을 하듯이 점원에게 인사를 하고 속도를 내서 그녀들에게로 갔다.
술집은 외진 곳에 있었다. 비슷한 두 개의 술집이 모두 간판이 없다. 그녀들은 두 번째 술집에 있었다. 약한 붉은빛이 감도는 실내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소리가 비슷한 강도로 울렸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에 헤어진 가족처럼 크게 내색하지 않으면서 반가움에 마주 보고 웃었다. 눈에 띄는 사람은 단연 동생이었다. 착 달라붙는 드레스는 가슴의 골에서 시작해서 허벅지 바로 위에서 멈췄다. 날씬한 몸매를 강조해서 더 성숙하면서 섹시하게 보였다. 깊게 파인 등 전체에는 머릿결이 흩날리는 여자의 타투가 고혹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진한 여인의 체취가 묻어났다.
의자에 앉으면서 온몸이 땀에 젖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제야 심한 갈증이 찾아왔다. 언니가 따라 주는 맥주를 연거푸 몇 잔을 들이켰다. 한국에서는 술을 거의 먹지 않을뿐더러 많이 마시지도 못한다. 기껏 맥주 한 병이 주량인 내가 동생과 건배까지 해가며 몇 병을 마셨다. 동생은 내가 왔을 때 이미 많이 마셨음에도 조금도 거부하거나 빼지 않는다. 그럼에도 멀쩡하다. 언니는 얼마 남지 않는 닭고기에서 살을 발라 내게 먹으라고 내민다. 한국의 여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술이 들어가니 긴장이 풀려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흔한 식당 테이블에 현지의 젊은이들이 많이 앉아 있다. 안쪽 벽의 가운데에 TV가 놓여 있고 모자를 쓴 어떤 남자가 화면을 보며 빠른 리듬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여러 색의 조명이 번갈아 가며 동그란 원을 만들어 냈다. 선술집같이, 좀 불편하고 엉성했다. 방음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술집뿐만 아니라 거리 전체가 시끄러웠다. 그럼에도 용납이 되고 인정이 되었다. 젊음은 불완전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갖추어지지 않고 조금 부족한 것이 바로 젊음이다.
언니가 자리를 옮겨서 한 잔 더 하자고 했다. 주량이 넘었음에도 이상하게 술에 취하지 않았다. 계산하고 거리에 나와서 하늘을 올려 봤다. 달빛이 밝아서 어둠이 푸르렀다. 거리에 내려앉은 푸른 어둠은 전에 내가 이곳에 왔었던 것 같은 기시감이 들게 했다. 오토바이와 달빛, 노랫소리와 소녀를 보며 뭔가 어렴풋이 잡힐 것 같았다.
소녀가 언니의 오토바이에 걸터앉아 먼저 출발하고 내가 따라갔다. 바람이 청량하다. 알콜의 방울들이 모공을 뚫고 나와 거리로 흩어졌다. 거침없이 시원하다. 내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내 귓가에 선명하게 들렸다. 가슴이 북처럼 진동하며 피부를 튕겨 낸다. 이 느낌 생소하지 않다.
2차로 도착한 곳은 나이트클럽이었다. 밴드가 있는 무대까지가 건물이었고 홀은 기둥과 지붕만으로 지어서 개방성이 좋았다. 자연의 빛과 공기가 들어와서 답답함이 전혀 없었다. 무대에서 밴드가 라이브로 공연을 했다. 많지 않은 손님 중에 동생의 나이쯤 되는 소녀들이 제법 있었다. 라오스라도 한국의 나이트클럽에서 볼 수 있는 무대 장치들은 다 갖춘 듯했다. 한순간도 사람이 자기 빛깔로 보이지 않았다.
언니에게 내가 계산할 테니 먹고 싶은 것, 다 시키라고 큰소리쳤다. 잠시 뒤 아주 큰 생선찜이 통마리로 들어왔고 볶음밥과 튀김류도 들어 왔다. 맥주는 아예 큰 얼음통에 담아서 왔다. 우리는 공연을 보며 맥주를 마셨다. 가녀린 동생은 혈색 하나 바뀌지 않고 흐트러짐도 없이 술을 마셨다. 오히려 언니가 양을 조절하는 것 같았다. 언니는 공연 무대에 오르기에 나이가 많아 보였다. 아마 은퇴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동생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동생을 세심하게 대했고 모든 것을 동생에게 맞췄다. 그녀들이 춤을 추러 가자고 손을 이끌었지만 나는 사양했다. 어디에서든 춤을 춰 본 적이 없다. 잠시 뒤, 다른 노래가 연주될 때 그녀들이 춤을 추러 나갔다.
홀의 가운데, 밴드의 바로 앞에 스테이지가 있었다. 나이트클럽의 규모에 비해 다소 작아 보였다. 이미 스테이지에는 비슷한 또래의 소녀들이 나와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들은 자연스럽게 그 안으로 끼어들어 갔다.
라오스의 나이트클럽에서 추는 춤은 독특했다. 혼자서 추는 춤이 아닌 집단으로 추는 군무였다. 우리나라의 강강 수월래처럼 모두가 원을 그렸다. 하지만 손은 잡지 않고 앞사람을 따르며 움직이기에 마치 큰 원이 돌아가는 것으로 보였다. 발은 가볍고 경쾌하게 내딛었고 손은 허공에서 우아한 곡선을 그렸다. 무엇을 받쳐 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추앙하는 같기도 했다. 모두가 비슷하게 춤을 췄지만 유독 동생의 춤사위는 달랐다. 그녀의 발은 절제되고 세련되었으며 시시각각 바뀌는 표정의 변화는 매번 새로운 사람처럼 다채로웠다. 가늘고 긴 손으로 그려지는 곡선은 유려한 도자기의 어깨선을 닮았다. 나는 그녀의 춤에서 예술가의 면모를 보았다.
12시가 되어 나이트클럽은 끝이 났다. 라오스가 내게 허락한 시간은 여기까지였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기시감이라고 느꼈던 것은 사실 오래전 나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밤이 아니었다. 나의 청춘이었다. 32년 전, 지금의 동생 나이였을 때 나는 거칠었고, 무모했고, 내일이 없었다. 술을 마시고 오토바이를 타고 푸른 빛이 도는 밤을 질주했었다. 그녀들과 함께하면서 퇴화 된 줄 알았던 날개의 흔적을 느꼈다. 나의 자유 본능을 일깨워 하루만이라도 통제에서 벗어나 불법을 저지르고 질서를 파괴할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웠다. 지폐 한 장 없이 텅 비어버린 지갑이 애처롭지 않다. 그녀들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젊음을, 잃어버린 시간을 내게 선물해 줬다. 그것으로 됐다.
어떻게 숙소로 돌아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오토바이를 흔들거리며 탔을 것이다. 고성방가를 질렀는지도 모른다. 단 한 가지는 또렷하다. 그녀들이 보낸 메시지였다. 나이트클럽에 키핑해 놓은 맥주를 오늘 밤에도 같이 마시자는 내용이었다. 나는 ‘알겠다.’라고 답하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문 사이로 루앙파라방의 빛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방비엥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야 했기에,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나는 그녀들에게 채팅을 남겼다.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마웠다고.
나에게 루앙파라방은 이제 18살 청춘의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맛과 향이 좋은 맥주가 보물처럼 숨겨져 주인을 기다리는 은혜로운 도시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