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태국

by 박미미

버스는 승객들이 더 올 때까지 한참을 더 기다렸다가 출발했다. 가득 찬 버스에는 현지인으로 보이는 몇 명을 제외하고 거의가 배낭여행족이었다. 툭툭이에서부터 같이 온 예쁜 여학생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여대생이라면 고등학교 2학년인 큰아들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 궁금했다. 어떤 목적으로 배낭여행을 오게 되었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이 여행에서 뭔가 느낀 점이 있는지 물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저씨가 번역기 돌려 가며 어린 사람과 대화하기에는 모양새가 나지 않았다. 이 자리에 내가 아닌 아들이 있어야 했다. 아들은 영어도 제법 될뿐더러 젊음은 적의가 없어서 서로에게 쉽게 마음을 열기 때문이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을 다녀보면 배낭을 맨 서양의 젊은이들은 쉽게 만난다. 그런데 한국의 젊은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내가 가는 곳이 동남아 위주라서 다들 유럽으로 가는 것인지, 아니면 열심히 학교에 다니느라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다. 젊을 때의 여행이 인생을 바꾸기도 하는데, 학교에 너무 억눌려 있어서 안타깝다. 여학생에게 간단하게 인사 정도 하려고 눈치만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다들 짐을 챙겨서 내리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1시간 30분 정도 왔다. 아직 태국이 아닐 텐데. 의아해하며 사람들을 따라 내렸다. 버스는 대로변에 정차했고, 승객은 전부 내렸다. 우리가 내린 곳은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이었다. 버스 승객 모두가 우돈타니로 간다고 생각한 건 나의 착각이었다. 승객 중 젊은 배낭여행족들은 비엔티안이 목적지였다. 그들은 쉽게 자기들의 목적지를 찾아갔고 국적을 알 수 없는 동남아 사람들 몇 명과 나만 남았다. 버스 기사의 안내로 근처 출장소 같은 작은 건물로 갔다. 여기에서도 목적지는 나누어졌다. 나만 태국행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하노이 행이었다. 어떻게 그 많은 버스의 승객 중에 혼자만 태국인지 웃음만 나왔다. 다르게 생각하면 이상하지도 않다. 내 인생이 원래 그랬다. 나의 길은 대로가 아니라 언제나 골목길이었고 무리에 끼지 않고 언제나 혼자였다. 지금 이 여행처럼 말이다. 하노이행 사람들이 떠나가고 잠시 뒤 나는 누군가에 의해 승용차에 태워졌다. 라오스 사람들은 다 좋은데 묻지 않으면 설명을 잘 안해 준다. 그들의 마음에는 ‘알아서 해 줄게. 걱정하지 마.’ 같은 게 있는 것은 느낌으로 안다. 그래도 혼자인 여행객은 두렵다.
승용차는 5분 정도 달려서 터미널에 도착했다. 낡은 버스의 기사에게 나는 인도되었고 헬퍼가 QR을 통해 태국 전자 입국신고서를 작성하라며 내 휴대폰에 띄웠다. 입국 신고가 조금 까다로워 보였지만 챗지피티도 있고 시간이 넉넉해서 걱정은 되지 않았다.
버스가 출발하고 전자 출입국신고서를 작성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마지막 부분에서 막혀 고생하고 있었다. 현재 나에게 있는 수단과 방법으로는 도저히 완성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몇 칸 앞자리에 타고 있는 한국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버스를 탈 때부터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모두가 현지인이거나 같은 동남아 계열 사람들이었는데 유독 그들만 달랐다. 무채색 가운데 화려한 색이 있는 것처럼 단번에 그들이 한국인이라는 걸 알아냈다. 하지만 그것은 시각이 아니라 청각으로부터였다.
40대 전후의 나이에 남자는 키가 컸고 여자는 키가 작았다. 20cm 정도 차이가 날 정도로 대칭이 맞지 않았다. 그들이 부부라는 것은 확신했는데, 여자가 한국인인지 태국인인지 지금도 모호하다. 암튼 그들은 나의 존재를 몰랐던 듯하다. 그랬기에 버스가 쩌렁거릴 정도로 욕을 할 수 있었을 테니까. 나는 살면서 이런 공공장소에서 아무렇지 않게 욕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것도 불순물이 없는 순도 높은 욕이었다. 여자가 어떤 실수를 했고, 그것 때문에 금전적 손실을 입은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남자가 주장했다. 여자는 변명조차 없었다. 남자의 강압적인 태도에서 나오는 욕은 여자의 자존감을 파괴하려 들었다. 듣는 나조차 자괴감이 일 정도였다. 여자는 남자의 감정을 받아내는 도구에 불과했다. 여자가 가끔 어떤 부분에서 남자의 주장을 부정하려 들다가 더 상스러운 욕을 듣기도 했다. 궁지에 처한 그녀를 위해서도, 난처한 나를 위해서도 대한민국의 위신을 위해서도 내가 나서야 했다. 일단 공공의 적인 남자를 겨냥했다. 남자에게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밝히자, 그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중하게 출입국신고서 작성을 도와 달라고 하자 이내 표정이 펴졌다. 아니 밝아졌다. 의외로 그는 친절했으며 흔쾌히 도와줄 의사를 내비쳤다. 휴대폰을 가져가며 적극적으로 도와주려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남자는 할 줄 몰랐다. 나에게 친절하게 휴대폰을 가져가서 여자에게 작성하라고 명령했다. 여자가 작성을 마저 하고 자세하게 설명까지 해 줬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알 수 없었으나 발음은 매우 정확했다.
한국인이 한 명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 남자의 욕설은 사라졌다. 난 아직도 나를 도와준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못했다. 고맙다는 인사마저 남자가 채 가 버렸기 때문이다. 짧은 순간의 만남에서 내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남자의 방식이다. 그가 나의 부탁을 들어줄 때처럼 모든 일을 여자에게 떠넘겼을 것이다. 여자의 노력으로 잘 되었을 때는 자신이 덕이었고 잘못되었을 때는 지금처럼 여자의 탓으로 돌린 것처럼 보인다. 비겁하고 무능하다.
우돈타니 터미널에서 인도의 높은 턱을 대형 캐리어가 넘어가지 않아 낑낑거리는 여자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늦었지만 여자분께 직접적으로 도와주지 못한 사과와 출입국신고서 작성을 도와준 것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터미널에서 나와 거리를 돌아다니는 그랩을 보며 마음의 안정을 느꼈다. 현금이 없었기에 구글 맵에서 ATM을 검색했고 화살표는 내가 선 자리 바로 뒤 편의점을 가리켰다. ATM은 편의점의 코너 면에 있었다. 번역기 돌려 가며 한번 만에 바트 인출에 성공했다. 여행 중에 기분 좋은 순간이 그 나라의 현금을 인출 했을 때다. 현금이 있어서 현실적으로 안심이 되기도 하지만 현금을 인출 하는 절차를 통해 이 나라에 와도 된다는 인증을 받은 것 같아서이다.
태국은 처음이지만 현금이 있고 그랩이 보이기에 이제 두렵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현금으로 구매한 콜라와 에너지 바를 먹으며 그랩을 타고 우돈타니 공항으로 갔다.

우돈타니 공항은 그냥 시골에 있는 공항이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늦은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샀다. 하나인지 알고 계산했는데, 점원이 접시에 있던 6개 전부라고 말한다. 내가 당황해하자 2개는 먹으라고 접시에 올리고 4개는 포장을 해 주었다. 점원의 친절한 태도와 깔끔한 포장에 기분이 좋아졌다. 공항에서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그녀에게서 태국이 친절한 나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서 대기실에서 꽤 오래 기다렸다. 점원이 포장해 준 샌드위치를 다 먹었을 때쯤, 멀리서 체크무늬 반바지와 빨간 티셔츠를 입은 항공사 직원들이 매표소로 들어오고 있었다. 베트남을 거점으로 삼고 비엣젯 항공만 타고 다녀서 그런지 자국의 항공사를 보는 것같이 기뻤다. 꼭 항공사 승무원이 우리나라 사람 같기도 하고 내가 베트남 사람 같기도 했다. 이동의 편의를 위해 기내용 캐리어와 노트북이 든 백팩이 내 짐의 전부였다. 그런데 항상 백팩이 문제였다. 노트북 가방은 되는데 백팩은 규정상 기내에 가져갈 수 없었다. 캐리어와 백팩 둘 중 하나는 수화물로 보내야 한다. 한국에서 출국할 때는 캐리어가 가벼워서 백팩을 캐리어에 넣고 노트북을 들고 탑승했다. 하지만 지금은 백팩에 노트북 이외의 짐이 꽤 들어 있어서 그렇게도 하지 못한다. 체크인을 하면서 항공사 직원에게 ‘사와디 크랍’ 이라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여성 직원분도 앉은 채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해줬다. 그녀는 티켓을 끊으며 출신국이 어디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를 물었다. 업무가 아니라 사적인 질문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즉흥적인 호의가 여행자의 긴장을 풀어 준다. 나는 한국인이며 라오스에서 거쳐 왔다고 말했다. 이 사소한 대화로 인해 그녀와 나 사이에 국경의 벽이 허물어지는 게 느껴졌다.
캐리어는 6.8kg이어서 간신히 통과했다. 백팩의 무게를 재기 위해 벗으려고 하는데 그녀가 노트북이 들어있는지 물었다. 그렇다. 라고 대답하니 그냥 통과하라고 한다. 옆의 남자 직원이 두 번이나 가방의 무게를 재려고 행동을 취했으나 그녀가 말렸다. 그렇게 그녀 덕분에 별 탈 없이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방콕의 숙소를 어디에 잡은 건지도 몰랐다. 나의 여행이 그렇듯 언제나 즉흥적이어서다. 챗지피티가 번역을 잘못해서 태국 전자 출입국신고서를 입국 3일 전에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포기했다가 자기 나라에 여행 오는데 이렇게 까다롭게 할 수 있나 싶어서 다시 검색한 결과 3일 전이 아니라 3일 전부터 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3일 전부터 입국하는 시점까지 언제든 된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해서 급하게 경로를 확인하고 비행기를 예매했다. 전자 출입국신고서에 숙소 정보도 넣어야 했기에 숙소 또한 급하게 잡았다.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고 공항과 숙소가 떨어져있다는 것 정도만 인식했다.
우돈타니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방콕의 수완나폼 공항과 숙소의 거리를 봤다. 자동차로 50분 정도의 거리였는데 챗지피티가 러시아워 시간대라서 훨씬 더 걸린다고 했다. 물가가 높은 태국에서 돈을 아낄 필요가 있었다. 대체 운송수단을 물으니까, 전철을 추천해 줬다. 수완나폼 공항에서 입국 검사를 받으며 전철을 타기로 마음을 먹고 챗지피티에게 정보를 달라고 했다. 공항 라운지에서 나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설명을 해줬으나 입체적이지 않아 어려웠다. 대신 노선과 환승역, 요금은 참고할 만했다. 역은 공항과 바로 연결돼 있어서 다른 곳으로 빠질 길은 없었다. 공항에서 나와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니 역이었다. 공항역은 서양인들이 많이 있는 것 빼고는 한국의 지하철역과 다르지 않았다. 자동 발매기에서 환승역인 파야타이로 가는 노선을 확인하고 동전모양의 티켓을 끊었다. 처음 타 본 태국의 전철은 깨끗하고 조용했다. 여덟 정거장의 끝이 파야타이였고 종점이어서 나는 아주 쉽게 내릴 수 있었다.
목적지인 나나역을 가기 위해 BTS를 타야 했다. 카드 모양의 티켓을 끊고 잠시 기다렸다가 BTS를 탔다. 공항철도의 종점에서 BTS를 탔기에 잘못될 일은 없었다. 그래도 걱정이 돼서 객차 안의 노선 지도와 정차할 때마다 벽에 붙은 역의 이름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맞기는 한 것 같은데 그래도 한번 확인이 필요했다. 마침 내 앞에 현지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있어서 짧은 영어지만 용기 내어 물었다.
“Next station, Nana Station.” 남자가 듣고도 관심이 없다. 다시 한번 더 물었다. 그제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괜히 물었나 싶었다. 남자가 질문을 회피하면서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그때 멀리서 젊은 아가씨의 눈이 반짝거렸다.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는 표정으로 미소 짓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긍정의 표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캐리어를 밀고 그녀가 앉아 있는 곳으로 갔다. 가까이에서 봤을 때 한국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얼굴의 윤곽과 피부의 색, 입은 옷조차 한국스러웠다. 옆에 엄마로 보이는 중년 여성과 대화하는 걸 듣고서 현지인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다음, 그다음 역이 나나역이라고 알려 주었다. 제법 거리가 있었음에도 내가 남자에게 말을 건넬 때 들었다는 것은 관심 있게 보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불안한 눈빛과 표정으로 떨고 있어서 눈에 띄었을 수 있다. 그녀에게 나는 한국에서 왔으며 알려줘서 고맙다고 Thank you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나나역에서 내릴 때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눈인사를 하고 내렸다.
사실 한국에서도 지하철을 잘 타지 못한다. 아주 가끔 서울에 갈 때마다 지하철의 출구를 잘못 찾기도 하고 반대로 타기도 했다. 그런 내가 처음 온 나라에서 처음 타는 전철을 너무 쉽게 이용했다. 스스로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콕의 전철은 조금 특이했다. 한국 같은 지하철이 아니라 지상철이었다. 철로가 도로 위를 지나갔다. 역 역시 도로 위에 있어서 개방성과 시인성이 좋았다. 나나역에서 내려다보는 방콕의 밤은 화려하고 황홀했다. 아니 현란했다. 복잡하고 시끄럽고 무질서했다. 오토바이와 자동차, 심지어 사람까지도 과충전 되어서 통제가 되지 않는 장난감 같았다.
나나역에서 호텔까지 도보권이어서 캐리어를 끌고 걸어갔다. 큰 도로에서 골목길로 접어들었음에도 광원이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과 음악과 불빛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비싼 숙소에 도착했다. 이름 그대로 호텔이었다. 넓은 데스크에 직원이 3명 정도 상주했고 로비에는 문을 열어주거나 짐을 옮겨주는 남자분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묵었던 곳에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비싼 곳이지만 방콕에서는 가장 싼 가격이었다.
7층 객실을 배정받고 짐을 던져 놓은 채 저녁을 먹으러 바로 나왔다. 오랜만에 한식이 먹고 싶어서 찾아간 식당은 코리아타운 안에 있었다. 나는 밖에서 내부가 훤히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서 삼겹살을 먹었고 김치찌개를 서비스로 받았다. 한국인 여사장이 태국에 하나뿐인 코리아타운이라고 말해주었다. 여기 나나역 인근이 방콕의 중심지쯤 되는 것 같았다. 급하게 잡은 숙소치고는 위치가 너무나 좋았다. 방콕에 첫날이라 코리아타운 근처만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왔다.
여행하면서 욕조가 있는 객실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사막에서 물을 발견한 것처럼 신기해서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으며 손으로 몇 번을 만져보았다. 물이 넘쳐흐르자 피곤한 몸을 욕조에 뉘였다. 노련한 마사지사의 숙련된 손길보다 더 빨리 몸이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태국에서의 고단한 하루는 이렇게 끝이 났다.

새 소리에 잠이 깼다. 밖은 이미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으러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맞은 편 나무에서 까치 정도 크기의 새가 울고 있는 게 보였다. 아래를 보니 밤사이 마법이 풀린 것인지 거리가 너무 깨끗하다. 꼬치와 쥬스를 파는 노점이 몇 개 있을 뿐이었다. 파티가 열린 궁전처럼 근사했던 bar는 절간처럼 조용했다.

여행을 가면 늘 찾는 곳이 현지의 시장이다. 11시 쯤 시장에 가기 위해 그랩 바이크를 불렀다. 복잡한 도로를 보면서 그랩 바이크를 부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출퇴근 시간대가 아님에도 길이 많이 막혔다.
20분 정도 지나 도착한 곳은 방콕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규모부터가 달랐다. 구경하면서 한 바퀴 돌았는데 다리가 아팠다.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곳이라 관광객이 기념으로 살만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 바퀴 돌면서 전통 빵 같은 걸 사서 점심으로 때우고 과일 파는 곳에서 두리안과 망고, 야자를 후식으로 먹었다. 햇볕이 뜨거워 더 이상 시장에 있기 힘들어서 오토바이 그랩을 불러 방콕 국립 박물관으로 갔다.
그랩 바이크는 시간은 단축시킬지언정 더위는 피하지 못했다. 땀을 흘러가며 방콕 국립 박물관에 도착했다. 전체적인 규모는 경주 박물관과 비슷했다. 수도인 방콕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라 기대를 많이 했었다. 하지만 관람을 할수록 실망감만 들었다. 국립 박물관치고는 너무 볼 게 없었다. 물론 설명해 놓은 글을 읽지 못하니 이해에 한계가 있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더라도 박물관은 시각적으로 어필되는 것들이 있다. 처음 전시관에서는 재현품도 많았고 재현품이 아닌 것은 거의 다가 불상이었다. 불교 국가인 것은 알지만 국가의 박물관이 아니라 어느 종교의 홍보관 같았다. 자연스럽게 경주의 국립 박물관이 떠올랐다. 경주 국립 박물관처럼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의 유물은 찾을 수 없었고 불교를 제외한 다른 문화의 흔적도 볼 수 없었다. 신라 금관의 화려함이나 금동불상의 섬세함, 회색 토기의 절제된 선 같은 것은 없었다. 멀리 타국의 박물관에 오고 나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얼마나 찬란했는지 깨달았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자긍심을 가져도 될것 같았다.

숙소에서 더위를 피해 쉬다가 태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어두워진 거리로 나갔다. 어제 갔었던 코리아타운을 한 번 더 둘러보고 나와서 넓은 공터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곳을 발견했다. 밤이 되면 거리 전체가 시장이 되니 야시장이라고 하긴 그렇고 상설 시장쯤으로 부르면 될 것 같았다. 흰색의 천막들만 쳐져 있는 것으로 봐서 나름의 규격과 법칙이 있는 듯했다. 노상에 열린 시장이지만 있을 것은 다 있었고 무엇보다 깨끗했다.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고 과감하게 거리를 누볐다. bts가 지나가는 철로 아래에 있는 넓은 도로는 이 도시의 중앙로였다. 철로 따라서 역이 있으니,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불빛이 사위어지기 시작할 무렵 아직 활활 타오르는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나는 불빛을 쫓는 한 마리 곤충이 되어 있었다.
조금 전 길에서 내려왔던 만큼 거슬러 올라갔다. 홍수가 난 것처럼 사람들이 골목에서 길가로 범람하고 있었다. 나는 골목이 나올 때마다 안으로 들어갔다. 하나의 골목이 하나의 테마인 것처럼 일본풍 주점이 늘어선 곳도 있었고, 네온이 화려하고 음악이 시끄러운 bar로 채워진 광란의 골목도 있었다. 유일하게 어두웠던 골목에선 짧은 치마와 가슴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여자같은 사람들이 호객 행위를 하기도 했다. 방콕의 거리를 걸으며 놀란 것은 거의가 외국인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서양인들이었다. 만약 눈을 감겨서 방콕의 bar가 있는 골목에 내려놓고 라스베거스라고 말해도 믿을 정도였다. 예전에 다녔던 베트남의 호이안이나 캄보디아의 펍스트리트나 얼마 전에 지나온 다낭, 방비엥, 루앙프라방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다른 곳은 배낭여행을 하는 젊은이들이 주를 이뤘다면 방콕은 나이가 든, 노후를 즐기기 위해 온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경제가 훨씬 더 잘 돌아가는 인상을 느꼈다. 그럼에도 베트남이나 라오스에는 없었던 노숙자를 보게 된 것은, 화려한 조명의 어두운 이면 같았다.
다리는 힘이 풀려오는데 방콕은 더 밝아지고 있었다. 무한한 에너지원이 이 도시 어딘가에서 감춰져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사람들이 지치지 않을 수 있을까 싶었다. 강한 체력으로 여행을 밀고 왔지만 더 이상 무리였다. 아쉽지만 방콕의 밤과 헤어져야 했다. 다시 도로를 건너가며 나나역에서 멈췄다. 와인잔에 비친 불빛같이 아름다운 도시를 두 눈에 담으며 길게 숨을 들이켰다. 이질적인 공기의 질감이 폐로 들이닥쳤다. 설명은 할 수 없어도 가슴은 느꼈다. 살아가면서 이런 공기가 맡아진다면 그때 다시 방콕을 찾겠다고 다짐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아침에 눈을 떴음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누워서 사치를 부리다 방콕의 마지막이 아쉬워 운동 삼아 호텔 주변을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노점에서 파는 꼬지와 망고 쥬스를 아침 대신으로 먹었다.
이제 여행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저녁쯤 베트남 다낭에 도착해서 내일을 보내고 모레 새벽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가야 한다. 오늘 일정은 이동뿐이며 시간도 느슨하다. 12시까지 꼭꼭 채워서 체크아웃을 하고 왔던 역순으로 전철을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이미 한번 해봤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입국할 때는 바빠서 관심 있게 보지 못한 공항이 출국장에 들어서면서 엄청나게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유 없이 공항을 돌아다니고 필요한 것도 없으면서 편의점을 기웃거렸다. 탑승 시간이 다 돼서 1도 아니고 2도 아닌 꼭꼭 숨겨 놓은 1-1 게이트를 어렵게 찾아내서 비행기를 탔다. 연착되거나 돌발 변수가 생기지 않는다면 19시 안에는 한 시장에 도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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