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큼은 어린 시절 그대로
국민학교 다닐 때 옆 동네에 뽁아리라는 친구가 있었다. 배가 많이 나온 모습이 복어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 친구는 우리 동네에서 일명 '학교 짱'이라고 불렸다.
어린 시절 그 친구는 키가 작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사이에서는 인정받는 존재였다. 구슬치기든 벽치기든, 그 무엇이든 잘했다. 특히 '짤진이'라고 부르던 게임을 기가 막히게 잘했는데, 요즘 말하는 홀짝 게임이었다. 동전을 가지고 하는 일종의 도박 같은 놀이였지만, 그때는 그저 재미있는 게임일 뿐이었다.
뽁아리는 그런 게임의 달인이었다. 동전을 던지고 홀짝을 맞추는 게임에서 웬만해서는 지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더욱 그를 우러러봤는지도 모른다. 나도 그 친구와 함께 그런 놀이들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우리는 옆 동네 친구 사이였지만 늘 사이좋게 지냈다. 때로는 먼 동네 친구들과 싸울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뽁아리가 앞장서서 우리를 이끌곤 했다. 그 작은 체구로도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순진했던 시절이었구나 싶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모두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50대 후반이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뽁아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키도 훌쩍 자라 있었고, 어린 시절 그토록 튀어나왔던 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오히려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야, 너 진짜 많이 변했다!"
내가 말하자 뽁아리가 웃으며 대답했다.
"너야말로! 이제 네가 뽁아리네."
정말 그랬다. 어린 시절 날씬했던 내가 이제는 배가 많이 나와 있었다. 아마 술배일 것이다. 세월의 장난이란 이런 것일까.
지금도 가끔 그 친구와 술 한잔 하며 옛이야기를 나눈다. 머리는 많이 벗겨졌지만, 여전히 게임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그 친구. 어린 시절 '짱'이었던 면모는 여전하다. 다만 이제는 구슬치기나 짤직이 대신 다른 것들을 잘할 뿐이다.
"기억나? 그때 우리가 멀리 동네 애들이랑 싸웠던 거?"
"그러게, 그때는 진짜 순수했어. 동네 자존심을 위해 싸우기도 하고."
그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각자의 길을 걸어왔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때 그 어린아이들 같다.
어린 시절 학교 최고이었던 그 리더십이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야, 네가 그때 뽁아리였는데 이제는 내가 뽁아리네."
내가 불러온 배를 두드리며 말하자, 그가 크게 웃는다. 그 웃음소리가 어린 시절 그대로다. 비록 외모는 많이 변했지만, 그 친구의 본질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옆 동네 친구라는 인연으로 시작된 우정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구슬치기와 짤직이로 놀던 그 어린아이들이, 이제는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을 논하는 중년이 되었다.
먼 동네 친구들과 싸우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그때는 그렇게 살면서도 모든 것이 진지했고, 모든 것이 중요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순수했던 시절이었다.
뽁아리와의 우정을 보며 느끼는 것은, 진정한 친구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모는 바뀌고, 환경은 달라져도, 그 마음만큼은 어린 시절 그대로인 것 같다.
앞으로도 이 친구와 오래도록 우정을 이어가고 싶다. 70이 되고, 80이 되어서도 함께 술 한잔 하며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때도 여전히 "뽁아리야"라고 부르며 웃을 수 있기를.